머리 기사
Annual SolarWinds Study Reveals Opportunities for Business and IT Collaboration in Managing Enterprise Risk Driven by Internal and External Security Threats
SolarWinds (NYSE:SWI), a leading provider of simple, powerful, and secure IT management software, today released the findings of its eighth annual IT Trends Report. This year’s report, SolarWinds® IT Trends Report 2021: Building a Secure Future, released eight months after the broad and highly sophisticated SUNBURST cyberattack, is part of the company’s commitment to leading industry collaboration and transparency to prevent future cyberattacks and help technology professionals navigate the...
 
아이들이 머리가 크니 부모의 몸 상태를 살폈다. 조금만 아파도 아프다 말하던 아이들은 어느샌가 스스로 병원을 다니고 치유의 방법을 찾고 약을 먹고 있었다. 아이들의 눈에도 부모의 나이 듦도 보였고 부모의 건강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나이 들어가며 몸의 이상 징후는 순서를 가리지 않았다. 천천히 다가오지도 않았다. 어느 날은 허리가, 어느 날은 다리가, 눈이, 이가, 몸살이, 두통이... 그렇게 산발적으로 하나씩 또는 한꺼번에 자극이 왔다 가는 것을 반복했다. 그래도 그저 나이 듦의 표시로 읽었다. 대부분은 참았고 가끔 표정으로 드러났던 것 같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건강검진의 필요성에 대해 노래를 불렀다. 

40대에는 일 년에 한 번 정도였던 것 같다. 국민건강보험에서 보내오는 건강검진 안내문을 받는 시점에서 며칠 잔소리하고, 들으며 지나갔다. 그렇게 10년을 보냈고, 50대에는 조금 더 자주 집요하게 아이들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알아서 한다고 했다가, 내년에, 또 내년에 그렇게 미루던 것이 결국엔 견딜 수 없게 되어서야 검진을 받았고 큰 수술에까지 이르게 되어버렸다.

내심 자신감도 있었던 것 같다. 지독히 운 없어야 걸리는 병인 것처럼, 지독한 불운이 우리에게 찾아올 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워낙 건강 체질이라서 걱정할 거 없다는 말은 아무 근거가 없는 말이었다. 병증은 평소 힘을 잘 쓰고 안 쓰고와는 무관했다. 스스로 불운의 씨앗을 감지하지 직전에도, 병원에 들어가면 수술이 아니면 답이 없을 테니 아예 안 가겠다는 장난스러운 말로 아이들의 입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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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텃밭을 일구어 기부금을 마련한다. 그 두 번째 작물은 바로 옥수수였다. 지난 4월에 옥수수씨 140여 개를 심었는데, 모종으로 자란 건 10여 개 남짓이었다. 땅 좋고 공기 좋은 새 터전에서 강인한 작물 중 하나인 옥수수가 자라지 못하다니. 우리 부부는 그 이유를 금방 알아냈다.
 
좋은 땅이란, 본시 모두에게 이로운 땅. 작물만 잘 자라는 것이 아니라, 땅 속의 생물들도 잘 살 수 있는 땅. 유심히 보니, 땅강아지들이 눈에 띄었다. 그제서야 옆 두렁을 맡고 있는 할아버지 밭에 플라스틱 병을 세워 놓은 장대들의 속내를 알았다.

바람이 불면 장대 위에 있는 플라스틱이 소리를 내고, 그 소리는 밭 속의 생물들에게는 엄청난 천둥번개처럼 들릴 것이니, 그 밭에 올 수 없었을 거였다. 그런데 우린, 옥수수 씨를 갖다 뿌리니, 이게 무슨 복 씨인가 싶었을 것이다.
 
이번에는 모종 50여 개를 심었다. 뿌리를 파먹는 생물은 없었는지, 금새 옥수수대가 생겼다. 어릴 때는 옥수수를 보통 강냉이라고 불렀다. 해마다 옥수수 수확 후 옥수수의 껍질을 벗겨놓고 보면 왠지 강냉이라는 표현이 더 정겹게 되살아난다.

농사를 지을수록 배우는 즐거움 또한 큰데, 올해는 옥수수 수염이 암술대이며 껍질 밖으로 자라나서 꽃가루를 받는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았다. 수염이 암꽃인 거였다. 자세히 보니, 옥수수대 꼭대기 위로 수꽃이 피어나고 그 아래 암꽃이 있어 옥수수(강냉이)가 만들어졌다. 삶에서 관찰과 질문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기도 했다.
 
학원 방학 이틀을 두고, 하루를 옥수수 수확에 써야겠다 결심했다. 인터넷 지식박사가 수확 시 골라야 할 옥수수의 모양, 색깔 등을 알려주었다. 옷을 차려입고 보니, 어느새 나는 옥수수 농부가 되었다. 옥수수 한 대에서 평균 3~4개 정도의 옥수수가 열리니, 오늘은 몇 개나 딸까?
 
남편은 언제나 나에게 작물의 수확을 딸 기회를 먼저 준다. 특히 첫 수확의 기쁨을 내가 만끽하길 원해서 본인은 열심히 관리한다고 말한다. 내가 알고 있는 잘 익은 옥수수를 설명했다.
 
"보세요. 이렇게 진한 갈색 수염이 있잖아? 이 수염의 색이 일단 진하고 옥수수 이삭을 손으로 만졌을 때, 단단하게 알이 찬 느낌이 들어야 돼요. 그리고 한번에 홱 하고 꺾었을 때, 잘 익은 무 나박김치 먹듯 사박하고 똑 떨어지는 느낌이 있어야 돼. 그냥 내 느낌이에요."
 
옥수수를 거두다 보니, 분명 수염 색이 약간 서운한 것들도 있었다. 그래도 옥수수 이삭을 젖힐 때 나는 소리가 왠지 농부의 승리인 듯 즐거웠다. 70여 개의 옥수수이삭을 거두었다. 오늘 이들의 목표는 감자 완판에 이어 옥수수 완판의 자리에 서는 거였다. 기부금 마련 작물 제 2탄.
 
옥수수를 따 놓고 상자에 담다 보니, 왠지 허전해서 오이, 가지, 방울토마토, 고추, 깻잎 등을 따서 골고루 담았다. 우리집 가지는 그늘이 많아서 졸망졸망했는데, 옆밭 가경이네 가지는 매끈하게 키도 크고 생겨서 부러웠다. 그런데 때마침, 가경이네가 가지와 오이를 모두 기부하겠다고 전화를 주었다. 역시 하늘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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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리스트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어릴 때 소원이 있었다. 생머리를 길게 길러보는 것. 바람에 찰랑 흩날리는 머릿결을 가져보는 것(샴푸향이 퍼질 것만 같다), 무심히 쓸어올리면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고운 긴 생머리를 가져보는 것.

순정만화에나 나올 것 같은 이런 머릿결은 내 어릴 적엔 로망과도 같은 것이었다. 지금이야 매직펌이라는 신기술로 잘만 관리하면 아무리 거친 모발을 가진 사람도 자연스러운 생머리를 연출할 수 있다지만 그건 요즘 얘기지, 내가 어렸을 적엔 언감생심 그런 머릿결은 그저 동경의 대상이었다.

게다가 엄마 취향이라는 것이 있지 않나. 내 헤어스타일을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나이가 되기 전에는 엄마가 예쁘다는 헤어스타일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우리 세대의 룰이었다. 고로 나는 늘 짧은 머리를 고수했었다. 다행히 숏컷이 너무나 안 어울려 짧은 단발머리까지는 허용이 되었는데 그것도 묶을 수 없는 길이의 단발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의 친언니는 숏컷이 너무나 잘 어울렸던 탓에 어린 시절부터 중년의 지금까지 숏컷 헤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두 번 머리를 길게 기른 적이 있었지만 본인의 눈에도 타인의 눈에도 숏컷만한 것이 없다 보니 이제는 고민없이 짧은 머리, 그 한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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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머리를 감을 때마다 하수구가 까맣게 될 정도로 머리카락이 빠진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나가는 게 아니라 늙어가고 있는 걸 실감하는 날들을 보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뭘 시작하기에는 늦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나이 들어가는 내 얼굴은 나조차도 낯설게 느껴진다.

군산 흥남동에 있는 미원경로당에 지역예술가 단체인 미술공감채움 선생님들과 마을 사업을 가면서 내 시선에만 갇혀있으면 내 삶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들과 대화를 하면서 시간이 흐른 후의 내 모습을 상상하고 오늘의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연명치료 안 한다고 동사무소에 신고했잖여."
"동사무소에다 그걸 신고해요?"
"그려. 호스 꼽고 누워있는 거 안 한다고 신고하믄 등록증도 나온당게."


김 할머니와 내가 나눈 대화다.

"당하면 당하는 대로 살았어"
 
김 할머니는 21살에 결혼해서 85세가 될 때까지 64년을 한동네에서 살았다. 자식 5명을 키우고 그 자식이 자식을 낳는 것도 한자리에서 지켜봤다. 자신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에서 노년을 맞이하는 것만큼 큰 복이 있을까. 나는 그 나이쯤 병원이 아니라 내 집에서 살고 있을까. 아무래도 자신이 없었다. 건강도 받쳐줘야 하고 많은 걸 견디고 나서야 찾아오는 안식일 것 같아서였다.
 
"당하면 당하는 대로 살았어. 무슨 일이 있어도 그냥 사는 거여. 그때는 아무리 힘들어도 자살하는 사람은 없었어."
 
그 시절에는 오두막에 살아도 이웃 간에 정이 있었고 무엇보다 푸근한 자연의 품 안에서 마음만은 넉넉하게 살아왔다. 지금 같은 코로나가 생기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시절이었다. 팍팍한 살림이라 이웃에게 큰일이 생겨도 금전적으로 도와주지는 못했지만 대신 아파하고 울어주면서 그렇게 함께 그 시간을 통과해왔다.
 
이번에는 옥 할머니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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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러 왔어요?"
"봉사하러요."
"사회복지사야?"
"네?"
"1급이야?"
"아, 네"

 
복지관 무료급식도시락을 받아든 어르신이 뒤돌아서 익숙하지 않는 나를 보며 물었다. 사회복지사로 일을 하고 있기에 아니라고 부정하지도 않았다. 어르신에게 맛있게 드시라는 인사를 하고 일행이 있는 곳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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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작은 동네 암사동, 신석기 시대의 유물이 그대로 남아있는 선사유적지로 유명한 곳이다. 서울치고는 고즈넉한 분위기인 이곳에 언젠가부터 좀 더 활기찬 목소리들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바로 도시재생 앵커시설인 '상상나루래'가 들어선 것이다. 

'상상나루래'는 암사동의 도시재생 앵커시설로 주민 누구나 대관이 가능한 공간이며, 주민을 위한 각종 문화 강좌를 운영 중이다. 또한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를 기획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행사는 바로 매달 열리고 있는 플리마켓이다.
 
'상상나루래 플리마켓'은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 '암사 도시재생 상상나루래' 1층 카페의 장소를 빌려 여는 암사동의 자그마한(그렇지만 매우 알찬!) 행사이다. '암행어사 축제기획단'이란 이름 아래 암사동 주민이 모여 직접 운영하고 기획한다. 
 
단발성이 아닌 지속가능한 주민 공동체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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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결과를 가져왔던 해결법이나 일부의 사례를 들며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덮어 버리려고 할 때가 있다. "우리 할아버지가 담배를 80년을 태우시고도 100세까지 사셨어! 그러니까 괜찮아!", "지난번에 절에서 108배 하고 시험 잘 봤는데, 내일은 도서관 말고 절에 가야겠다", "아... 예전엔 밤새 마셔도 괜찮았는데, 체질이 변했나? 소맥이 좀 순한 것 같던데 주종을 바꿔 봐야겠네..."
 
혹시 방금 고개를 저었다면 한 번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언젠가 나도 그런 적이 없었는지. 고백하건데 나는, 어제도 그랬고 엊그제도 그랬고 지난주도 그러했다. 주식 투자자에게 이런 류의 착오는 흔하다. 보통 자기 합리화와 낙관주의라고 하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구하기도, 위험에 빠트리기도 한다.
 
모든 것이 같을 수 없음에
  
 
반도체에 투자해서 재미도 보고 아픔도 많이 겪었다. 철강은 안 그럴까. 2차 전지와 플랫폼 기업은? 생각해보면 산업별로 기웃거리며 직접 겪고 나서야 그들의 진짜 모습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건 이게 다르고 저건 저게 다르고 이것과 저것은 요게 비슷하면서 고게 다르다는 걸.
 
그런 경험이 있기 전까진 모든 것을 '퉁'쳐서 생각했다. '어차피 다 같은 주식 아닌가?(퉁~) 우리은행이랑 카카오랑 다를 게 뭐 있어?(퉁~) 실적만 보면 되지(퉁~)'. 더 알고 싶지도 고민하고 싶지도 않은 귀찮음으로 인해 투자가 힘들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아무리 논리 정연한 이야기를 듣고 많은 사례를 굽어 봐도 소용이 없다. 꼭 겪어봐야 안다. 왜 겪고 나서야 알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선 알아내지 못했지만, 중요한 사실은 하나 알게 됐다. 주식이란 꼬리표를 달고 있지만 모든 것이 크든 작든 '다름'을 가진다는 사실이다.
 
한 때, 사이클 산업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경기에 민감하게 움직인다는 종목에 투자해서 속앓이를 많이 했다. 그 좋다던 반도체는 왜 날이 갈수록 떨어지는지, 신차가 출시되어 기대된다고 하는데 왜 기대감만큼 주가는 오르지 못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나 하나 속이자고 온 세상이 떠든 것만 같았다.
 
산업재와 소비재의 공급과 수요, 산업의 규모와 각 제품의 매출 기여도 등에 대한 낮은 이해 수준은 해당 산업에 대한 투자의 실패로 이어졌다. 한 때 재미를 본 것도 그저 운이 좋았던 것. 내가 잘해서 번 줄 알았는데, 뒤늦게 깨닫고 상당히 많이 아쉬웠다. (크... 실력은 언제 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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