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기사
"내 코? 한국에선 나오기 어려워" 한가인, 남다른 미모 자부심
배우 한가인이 남다른 외모 자부심을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지난 27일 공개된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 영상에는 한가인이 출연해 MC 재재와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두 사람은 한가인의 과거 활동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재재가 2004년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속 배우 권상우가 한가인에게 첫눈에 반한 장면을 보며 "납득이 간다"며 외모가 개연성이라고 하자 한가인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여 공감을 표했다. 한가인은 "(저 장면에) 왜 라는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며 (미모가) 저 정도...
"고졸 노동자의 현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우리가 세상을 바꿔야 합니다."
 
2021년 8월 29일. 민주노총 경기도본부에서 '특성화고노동조합' 경기지부장으로 선출된 윤설은 힘주어 말했다. 코로나 때문에 현장에는 최서현 위원장과 이은하 초대위원장 등 스무명 정도만 참석했지만 "고마워요, 수고해요"라는 격려가 넘쳐났다.

90년생 윤설은 울산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록밴드 활동으로 보냈다. 밴드연합회 회장을 맡아 '파이프'를 엮어 직접 무대를 설치하면서 록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자우림과 레이지본을 좋아했고 현대중공업노동조합이나 여성민우회 행사에도 초대받아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행복하고 즐거운 10대였다.
 
수원에서 대학을 마친 윤설은 학원강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청소년들을 볼 때마다 자신이 보낸 10대 시절에 비춰 괜히 미안했다. 봉사라도 하자는 마음에 이런저런 청소년 지원단체를 쫒아다녔다.

2016년 그때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정비를 하던 열아홉 살 김군이 숨졌다. 이듬해인 2017년엔 서귀포산업고의 이민호군이 생수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다가 기계에 끼여 숨졌다. 특성화고 아이들이 당한 이 사건이 윤설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그는 2017년 시민단체인 '특성화고 권리연합회'에 들어가 아이들의 멘토 노릇을 시작했다. 

특성화고 아이들을 인정하기까지
 
활동 초기 그는 아이들과 부딪혔다. 진로상담을 한다면서 윤설이 늘어놓은 얘기가 "그래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은 가야 하지 않겠니?" 같은 말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고졸 학력이 멍에가 됨을 알면서도 특성화고를 선택한 아이들은 '대학' 얘기를 싫어했다.

"어떻게든 대학은 마쳐야 한다"고 부모가 특성화고 진학을 반대한 경우도 있고 형편이 어려우니 네가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어야 한다고 떠밀린 경우도 있다. 어쨌거나 아이들은 열다섯, 중학교 3학년 나이에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특성화고에 대한 화려한 학교 홍보와 달리 대기업과 공공기관 취업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현장실습처는 최저임금에 걸쳐있는 사업장이 대부분이었고, 현장에 나가면 어른들의 반말과 욕지기를 들어야 했다. "공부 못해서 특성화고 들어갔냐, 지금이라도 맘 잡고 공부해라"라는 모욕도 당해야 했다.

아이들은 때때로 "대학보다 큰 인생공부를 하고 있다"고 윤설에게 말했다. 이 아이들을 만나면서 윤설은 생각을 바꿨다. 아이들의 특성화고 결정을 존중하고, 이 선택이 상처받지 않게, 특성화고를 나와도 차별받지 않고 안전한 일터에서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고. 그래서 윤설은 특성화고권리연합회 회원으로서 아이들을 옆에서 돕는 것을 넘어 당사자 조직에 직접 참여하기로 한다. 

마침 특성화고노동조합도 2020년부터 졸업생은 물론 고등학교 재학생까지 조직대상을 확대해 노동조합의 취지에 동의하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게 문호를 열었다. 윤설은 기꺼이 가입했고, 아예 경기지부장까지 맡게 된 것이다.
 
윤설이 지부장이 되고 가장 크게 맞닥뜨린 일은 홍정운 군의 죽음이었다. 당시 고3이었던 홍 군은 2021년 10월 여수에서 현장실습 중 물에 빠져 죽었다.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를 따라고 지시를 받고 이를 작업하다 그만 변을 당한 것이다. 물을 무서워하고 잠수자격증도 없는 아이였다.

윤설은 책임자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고 추모문화제를 열었다. 또 서명운동을 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이 문제로 가벼운 충돌도 있었다. 수원 삼일공고 앞에서 '재발 방지 대책 마련 8대 요구'와 '최저임금미달 현장 실습처 제보' 서명운동을 시작했을 때 몇몇 교사들이 다가왔다.

교사 중 한 명이 "학생들의 학적이 학교에 있으니 학생들에 대한 '소유권'을 우리가 갖고 있다. 허락 없이 서명받지 말라"며 행사를 가로막았다. 아침도 거르고 아이들 등교 시간에 맞춰 종종거리며 왔건만 이날 서명 작업은 중단되었다.

윤설과 경기지부 조합원들은 며칠 후 "학생들에 대한 소유권은 교사가 갖고 학생들은 자기 결정권이 없다니요?"라는 펼침막을 들고 항의 방문을 했다. 그는 삼일공고 교장을 만난 자리에서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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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이야, 치카하자!"

매일 밤 잠들기 전 내가 반려견 은이에게 건네는 말이다. 칫솔을 보여주면 은이는 살짝 으르렁 소리를 낸다. '싫다'는 의미다. 하지만 달콤한 반려견 전용 치약 냄새에 금세 혀를 낼름거리고 나는 그 틈을 타 얼른 은이의 입에 칫솔을 집어 넣는다. 그리곤 즐거운 푸념을 한다. '정말 내가 이렇게 살게 될 줄은 몰랐어. 밤마다 개를 양치시키다니.'
 
은이가 내 삶에 들어온 후 나의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은이가 홀로 있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외출은 가급적 반나절 이내로만 하고, 아무리 피곤해도 1일 1산책을 하며, 매일같이 은이의 응가를 관찰하며 건강상태를 살핀다. 이렇게 지낸 지 6년 6개월째에 접어든 요즘. 나는 내가 사용하는 언어마저 달라졌음을 느낀다.
 
인간이 만든 모든 세상에는 그 세상만의 언어가 있듯, 반려인의 세계도 그렇다. 반려인들의 커뮤니티에서 독특한 말들이 쓰이기 시작했는데, 이 중 몇몇은 널리 퍼져 반려인 사이에서 '표준어'처럼 자리 잡았다. 이 말들엔 반려인들의 애틋한 마음이 가득 담겨 있다. 우리 집에서 자주 사용하는 반려인의 언어를 소개한다.
 
'발사탕'은 그만! 
 
"은이야, 발사탕 그만! 발은 사탕이 아니야!"
 
우리 집에서 이 말이 들린다면, 그건 하루가 시작됐다는 의미다. 은이는 아침마다 식구들을 깨워놓은 뒤, 자신은 다시 침대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는 이불의 가장 푹신한 부분에 얼굴을 파묻고 '쩝쩝' 소리를 낸다. 자세히 보면 자신의 앞발을 시뻘게지도록 핥고 있다. 은이의 버릇 중 하나인데 이렇게 개가 발을 핥아대는 것을 '발사탕'이라고 한다. 마치 발을 사탕처럼 쭉쭉 빨아댄다고 해서 만들어진 말이다.
 
고양이에게 발을 핥는 행위는 자연스런 행동이지만, 개에게 발사탕은 건강하지 못한 버릇 중 하나다. 개들이 발사탕을 하는 이유를 전문가들은 대체로 다음의 두 가지로 파악한다. 간지러움을 유발하는 질환이 있어 발이 가렵거나 혹은 혼자 있거나 심심할 때 눈 앞에 보이는 발을 핥으며 위안하던 것이 버릇이 되어버리거나.
 
은이가 발을 핥는 이유가 둘 중 어느 쪽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알러지성 가려움 때문이라 생각은 하지만, 여행을 가거나 외출을 했을 때는 전혀 발을 핥지 않는 것을 보면 심심해서일 가능성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은이의 발사탕은 내게 늘 '미안함'을 유발한다. 알러지 관리를 잘못해준 것도 내 탓이고, 심심하게 놔두어서 버릇이 되게 만든 것도 왠지 내 탓인 것만 같다.

특히 습한 여름에 발사탕이 더욱 심해지는데 몇 해 전 장마철에 심한 발사탕으로 습진이 생긴 후부터 은이는 미용할 때마다 발의 털을 짧게 민다. 털이 긴 채로 침에 젖어 있으면 습진이나 피부염에 더 잘 걸리기 때문이다. 엊그제도 은이는 미용을 하면서 발등의 털을 밀어 올렸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그 발이 유난히 안쓰러워 보였다. 은이의 발을 볼 때마다 나는 이렇게 다짐한다. '발등털 밀어 올리게 해서 미안해. 엄마가 더 잘 케어해줄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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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이다. 세어보니 이번 설은 2020년 코로나 닥치고 네 번째 맞는 명절이다. 작년 가을만 해도 올해 설에는 드디어 일가들이 모두 모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안타깝게도 예상이 빗나갔다. 게다가 오미크론 위기가 또 코 앞이라 하니 여전히 코로나의 기세는 등등하고, 버텨야 할 시간이 아직도 더 남았나 보다. 

정부는 올해 설도 가급적 고향 방문을 자제하라고 했지만, 우리 가족은 지척에 사시는 부모님을 뵈러 가기로 했다. 시부모님은 우리 집에서 차로 40분 거리의 서울 외곽에 거주하고 계신다. 평상시에도 남편이 자주 들러 이것저것 보살펴 드리지만, 명절을 앞둔 나는 나대로 분주하다. 명절 선물은 물론, 부모님께 필요해 보이는 생활용품이나 드시면 좋아하실 법한 음식들도 신경 써 챙겨보기 때문이다. 

거리두기가 4인까지였던 작년 설에는 2인 1조로 시가를 방문했었다. 설 전날에는 나와 남편이 들렀고, 설 당일에는 남편과 아들이 방문했다. 코로나 속에 여러 번 명절을 맞다 보니 북적거리던 예전과 달리 이렇게 차분해진 명절 분위기에 점점 익숙해져 간다. 

코로나로 달라진 명절 분위기
 
코로나가 야기한 명절의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80줄의 시부모님이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 같은 기기를 활용하시는데 친숙해졌다는 점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왜 필요하냐고 반대하시던 와이파이와 증폭기를 막상 설치해 드리니 참 편리하게 이용하신다. 작년 설, 부모님 댁에서는 남편이 가져간 아이패드로 화면을 띄워 놓고, 집에서는 딸과 내가 거실 책상 위에 놓인 PC를 앞에 놓고 세배를 드렸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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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년 '호랑이 해'를 맞아 1926년생 호랑이띠 97세 박춘숙 어르신을 찾아뵀다.
 
"어머님이 눈도 좋으시고 귀도 밝으시고 다 괜찮아."
 
3남3녀 자녀 중 다섯째 선재식씨가 반갑게 맞이하며 귀띔했다. 지난 22일 오후 2시 찾아간 전북 순창군 순창읍 복실리(막골길) 야트막한 산 중턱의 자택은 그림 같은 풍경을 정원으로 품었다. 사방으로 펼쳐진 풍경은 '우와~' 하는 탄성을 자아냈다. 순창읍내가 한 눈에 시원하게 들어왔다. 날씨 좋은 날엔 저 멀리 지리산 노고단까지 훤히 보인단다.
 
집안으로 들어가 인사를 올리자 어르신은 "기자 양반이 뭐 하러 왔어?"라고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로 또렷하게 물었다. 나는 "호랑이띠 해라서 새해 소망 들으러 왔어요"라고 대답했다.
 
"맞제. 내가 호랑이띠제. 하하하."
 
어르신의 유쾌한 웃음으로 시작된 대화는 1시간 가량 이어졌다.
 
'순창군 할머니경로당 1호' 만드신 여성 운동가

순창군 유등면 창신마을이 고향인 어르신은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순창에서 나고 자라 결혼한 당신 또한 6남매를 순창에서 낳으셨다. 어르신의 언니오빠들은 일찍이 하늘나라로 떠나고 97세인 당신만 남으셨단다.
 
내가 "남매들 몫까지 대신해서 오래 사시는 것 같다"고 말씀드리자 어르신은 해맑게 미소 지었다. 어르신은 97년을 사시는 동안 가족을 돌보느라 한두 차례 잠시잠깐 순창을 떠났다 왔을 뿐 줄곧 순창을 지키고 계신다. 평소 일상을 여쭸다.
 
"주말에는 집에 있고 평소엔 노인복지센터에 가제. 서예도 배우고. 옛날에 함께 할머니 경로당 만드셨던 분들은 거의 돌아가셨어. 인자 거그 가면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아."
 
아들 선재식씨는 '할머니 경로당'과 관련해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순창에 순창읍노인회가 처음 생겼는데, 어머니가 '순창군 할머니경로당 1호'를 만드셨어. 순창군 최초의 여성 운동가였다고 할까, 젊으셨을 때 열정이 정말 대단하셨거든."
 
단답형으로 주고받던 대화는 순창군에서 처음 할머니경로당을 만들던 이야기에서 실타래 풀리듯 술술 이어졌다. 어르신에게 "할머니 경로당을 어떻게 만들게 됐느냐"고 여쭸다.
 
"할아버지들이 가부장적이셨잖아. 할머니들이 계속 방청소하고 설거지하고, 완전히 그래야 되는 걸로 으레 일을 시켰어. 할아버지들이랑 있으면 할머니들한테 맨 일만 시키니까 순창읍사무소에 가서 말을 했제. 할머니경로당을 따로 해도라고(만들어달라고). 근데 안 줄라고 혀. 그때는 내가 젊었제. 쉰 일곱여덟 먹었을 땐 게 몇날 며칠이고 쫓아다니면서 내가 뺐었제(성사시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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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맛집'을 다루는 신문 기사와 TV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시대다. 하지만, 거기서도 보기 쉽지 않다.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숨기고 싶은 자기 식당 '맛의 비결'을 말해주는 장면은.

한 숟가락 먹어보니 복어 맑은탕 국물이 일품이다. 담백하면서도 시원하다. 마주 앉은 가게 주인장에게 물었다. "이거 어떻게 만든 거죠?" 망설임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 그거요…."

그런데 국물 맛을 내는 방법을 설명하는 이야기가 과하게 길어진다. 노파심에 되물었다. "이렇게 자세히 설명하면 누군가 흉내내잖아요. 앞으로 가게 운영하기가 힘들 것 같은데…."

걱정하지 말라는 대답과 웃음이 돌아왔다. "말해줘도 아무나 못해요. 그러니 있는 그대로 써도 됩니다." 그래? 그렇다면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죽도시장 공영주차장 초입에 자리한 삼호복집·해물탕의 국물 만들기 비법은 이렇다.

먼저 잘 손질한 다시마와 멸치를 물에 넣는다. 그리고 팔팔 끓기 전에 불을 끈다. 왜냐? 지나치게 오래 끓이면 다시마에서 떫은 맛이 우러나고 끈끈한 액체가 나오기 때문.

멸치와 다시마를 건져낸 후엔 복어의 머리를 넣고 다시 3시간을 끓인다. 이후 복어 뼈와 찌꺼기를 건져내는 건 필수. 거기에 마늘과 생강을 넣고 끓이는 과정이 추가된다. 이제 끝이냐고? 아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국물에 무와 하얀 후추를 넣고 제맛이 나올 때까지 또 끓인다. 이렇게 하다보면 7~8시간이 훌쩍 지난다.

지금은 겨울이니 괜찮지만, 무더운 여름철을 상상해보라. 좁은 주방에서 새파란 가스 불을 그 긴 시간 동안 사용한다면…. 찜질방이나 사우나가 따로 없을 것이다. 거칠게 표현하면 거기가 바로 팔열지옥(八熱地獄)일 터.

비단 복어탕 뿐일까. 어떤 음식이건 제대로 만들어내기 위해선 이처럼 지난한 시간과 눈에 보이지 않는 지극한 정성이 필요하다.

웃으며 나가는 손님이 가장 고맙다는 '오너 셰프'

경북 포항 삼호복집·해물탕의 주인이자 주방장은 "내 이름을 신문에 쓰는 건 싫다"고 완곡하게 말했다. 들어주지 못할 부탁은 아니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식당을 운영하고픈 이들은 어디에도 있을 법하니. 요즘 젊은 세대는 '오너 셰프'라고 부른다. 가게의 주인이면서 요리도 직접 만드는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다. H씨(61)는 오너 셰프다.

앞에 언급한 복어탕 국물 만들기 비법을 알려주며 그가 말했다. "월급 받고 고용된 사람과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이 음식을 대하는 태도는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맞다. 그게 삼복더위에 개도 혀를 내밀고 헉헉대는 여름, 8시간 내내 뜨거운 불 앞에 기꺼이 서있을 수 있는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
 
H씨의 이력은 독특하다. 대학에선 말레이-인도네시아어를 공부(경제학 부전공)했고, 학교를 마친 후엔 대기업 해외영업팀에 입사했다. 중국 현지법인에서 3년, 국내에서 12년 근무하던 동안엔 보통의 또래 남자들처럼 음식과는 무관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 마흔이 넘어 왜 복어탕 가게를 연 것일까?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 회사를 그만두고 음식 장사를 하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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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속 명절 설날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설렘보다 걱정이 앞선다. 2020년 설에도 코로나19로 겁에 질려 부모가 자식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전화해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절대 오지 말라"라고 방문을 자제했다.

자식들의 거듭되는 당부에 어르신들은 "애들이 아무도 오지 말라고 하라고 혔어"라며 찾아온 우리에게도 손사래를 치셨다. 사회복지사인 나는 돌봄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방문 상담하는 일을 한다. 그렇게 조심하며 맞이했던 설 명절이 벌써 세 번째가 됐다.
 
명절을 일주일 앞둔 지난 25일 어르신 댁에 방문하니 현관 앞에 택배 상자가 놓여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니 식탁과 바닥에도 택배 상자가 어수선하게 놓여 있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어르신은 내용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그대로 쌓아놓기만 했다.
 
"이번 설에는 못 온다고 애들이 보내왔어. 애들이 뭐 보냈다고 알려줬는데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 이따가 뜯어봐야지."
 
눈이 잘 안 보여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며 뭐냐고 물어봐서 어르신 대신 택배 상자에 적혀 있는 내용물을 확인했다. 배추김치, 갓김치, 굴비, 사골육수 등 종류가 다양했다. 자식들이 아버지 혼자서 식사를 굶게 될까 봐 보내온 음식이며 생필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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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계속 전파되면서 우리 지역 내 분위기는 더욱더 침체 되었다. 시끌벅적한 명절은 올 설에도 기대할 수 없을 듯하다. 내가 다니는 복지관에서는 지역 내 긍정적인 명절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코로나19로 안전하게 지역주민과 함께 할 수 있는 나눔 행사를 기획하게 되었다.
 
전년도 설날에는 전 세대 떡국 한 그릇 나눔을 했다. 쌀독에 쌀과 정이 모이고 후원금을 보내주셔서 떡과 사골국을 집집마다 전달하였다. 따뜻하게 끓여 드릴 수는 없었지만, 집집이 전달하면서 웃고 덕담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올해는 그것마저도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이번 설에는 비대면으로 떡국, 사골국, 마스크, 엽서를 담아서 문고리에 걸어두기로 했다. 그러면서 집에서 쓰고 남아 있는 종이봉투를 모아보기로 했다.

"나운복지관에서는 코로나19로 명절을 혼자 보낼 이웃들에게 떡꾸러미(떡국떡, 사골국,마스크)와 함께 비대면으로 설 명절 인사를 합니다. 쓰지 않는 쇼핑백을 나운복지관에 전달해주세요! 기간:~1/19까지 크기: 25cmX35cm~"
 
우리는 두 장을 작성하여 지역 아파트 입구에 부착했다. 동네서점에도 부착해 광고를 해주셨다. 또 각자의 SNS에 올려주어 광고가 되었다. 친구들이 후원해 주고 지역주민들이 후원해 주고 복지관 앞에 쌀독 안에 쌀이 모이면서 우리 마음도 훈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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