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기사
Algorand and BridgeTower Capital Announce Strategic Partnership
BridgeTower Capital, a global private equity firm, focusing on traditional private equity investments and blockchain and DeFi markets, announced today a partnership with Algorand. Algorand, the creator of the world’s first pure proof-of-stake foundational blockchain, is a leading blockchain technology company accelerating the convergence of decentralized and traditional finance. BridgeTower will use Algorand’s technology as the underlying blockchain solution to issuance of the BridgeTower...

시인과 수필가로 활동 중인 이영월씨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명언을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는 인물이다. 최근 73세란 적지 않은 나이에 80여 편의 작품이 실린 2번째 시집 <하늘 길 열리면 눈물의 방>을 출판한 것도 대단하지만, 그가 지나온 시간을 찬찬히 뒤돌아보면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정도다. 지난 15일 그를 만났다. 

"11명의 형제 중 셋째로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그렇게 많았습니다. 알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는데 공부를 마음껏 해보지 못한 탓에 평생을 응어리로 간직하고 살았죠. 그래서 늦은 나이에 공부에 도전했고, 그것이 글쓰기로 이어진 것 같네요."

늦은 나이에 다시 책을 집어 든 사람치고 사연 없는 사람이 있을까마는 13년 전 환갑이란 나이에 중·고등학교 검정고시에 도전한 그의 이야기는 남달랐다.  

15년이란 긴 세월 동안 남편의 병상을 지켜야만 했던 현실은 그에게 별다른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저 하루하루의 일상을 시와 글로 노트에 남기는 것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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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기다리던 모란꽃이 오늘 드디어 피었습니다. 화왕(花王), '꽃 중의 왕'이라 그런지 아니면 새색시의 수줍음 때문인지 시나브로 피는군요. 봄이면 산과 들에 온갖 꽃이 피어납니다. 매화, 복사꽃, 개나리, 진달래, 수선화, 모과꽃, 철쭉꽃, 목련꽃.... 그 하고많은 꽃 중에 모란은 어찌 '왕'의 자리에 등극하였을까요?

그것도 삼국시대에 이미 '화왕'으로 뽑혔으니 천년도 훨씬 넘게 장기 집권입니다. 이만하면 퇴임할 때도 되었으니 화상(花相: 꽃의 재상)인 '작약'에게 옥좌를 내줘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긴 모란꽃은 '자리에 절대 연연하지 않는다'며 매년 작약 꽃에게 바통을 넘기곤 합니다. 하지만 여태 자신을 대체할 적당한 후계자가 없다며 완전히 물러나진 않는군요. 
  
 
신라의 뛰어난 문장가로 알려진 설총은 '화왕계'(花王戒)란 글을 남겼습니다. 신문왕이 심심해할 때 들려준 우화랍니다. 이 이야기에서 모란은 왕으로 등장합니다. 이야기는 대강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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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에 대한 책을 읽다보면 2층은 피하라는 말이 나온다. 1층이나 탑층은 선호에 따라 일부러 찾는 사람이 있지만 2층을 일부러 찾는 사람은 없다는 이유였다.

안다. 알지만 2층을 샀다. 2020년 7월 11일. 내가 집을 갈아타려고 찾던 아파트엔 매물이 그거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집을 계약해놓고 입주할 때까지 남편과 밤마다 손을 잡고 계약한 집이 있는 아파트 단지를 돌면서 몇 달 후면 내 집이 될 2층 집을 올려다보곤 했다. '한 층만 더 높았으면 좋았을텐데...'라고 아쉬워하면서.

아파트 2층에 살아봤더니

2층 집에 입주한 지 5개월쯤 지났을 때까지 살아보니 좋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후루룩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부터 정원수를 가까이에서 마주 볼 수 있는 2층 특유의 시야까지.

전체 아파트 층수의 2/3 정도에 해당하는 3~4개 층이 로얄층이라고 하지만 2층이 주는 매력도 분명히 있었다. 겨울철 열매가 남아있는 나무에 배를 채우러 오는 까치까지 관찰할 수 있는 집이었다.

2층 집에서 맞는 첫 봄이 왔다. 겨울을 견디다보면 언제나 봄을 기다리게 되지만 이 봄을 특별히 기다린 이유가 있었다. 집을 보러 갔을 때 전 집주인 분은 딱히 집 자랑을 하거나 하는 분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내가 "집에 볕이 잘 드나요?"라고 물으면 "예, 뭐, 2층집 치고는…"이라고 대답하고, 집을 보여주면서도 "3년 전에 섀시 고친 거 말고는 내세울 게 없네요"라고 멋쩍게 웃었다. 그 분이 딱 한 가지 수줍게 한 얘기가 있었다. 봄이 되면 이 아파트 단지에 벚꽃이 예쁘게 피는데 그 중 가장 예쁜 나무가 우리집 베란다 앞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3월이 왔다. 아무 잎이 나지 않아도 가지 끝까지 새로운 초록물이 올라오는 계절. 팝콘 옥수수처럼 터지기 전 꽃송이를 감춘 꽃망울들이 점점 모습을 드러냈다. 나의 하루는 베란다 블라인드를 도르르 말아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블라인드를 걷어올리면서 오늘은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기대감에 부풀어 블라인드 끈을 당긴다.
 
3월 23일이었다. 첫 꽃망울이 터졌다. 버터를 달구고 소금을 뿌려 팝콘을 튀길 때 처음 벌어지는 옥수수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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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 보다'가 소개하는 첫 번째 장소는 청죽이발소. 1985년에 개업하여 2021년 현재까지 활발히 운영 중이다. 간판도 달려있지 않아 용기 내어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까지 아직 영업을 하는 곳인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어느 날 이발소의 청, 홍, 백의 삼색등이 돌아가는 것을 발견하고서야 닫힌 문을 열어젖힐 결정이 섰다.

근처를 왔다 갔다 한 지 거의 한 달여 만에 들어간 이발소 내부는 나도 모르게 '와~' 감탄을 연달아 내뱉게 할 정도로 대단했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오래된 도구들, 그 시절엔 평범했고 지금은 완전히 낡아버렸지만 그래서 아주 특별한 가구들,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버려지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킨 작은 물건들. 마치 홍콩영화 촬영장에 허락 없이 들어간 듯한 기분이었다.
   
직접 잘라 만든 듯 테두리가 불균일한 작은 상자 안에 수많은 신문조각들이 담겨있다. 위에 올려진 면도용 칼을 보니 같은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모아놓은 조각들 같은데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상자 위에 덧붙은 하얀 종이에 요금표가 검은색 매직으로 적혀있다. 그 옆에 나란히 세워진 파란색, 회색 플라스틱 통 안에 가위들이 꽂혀있다. 그 모습이 세련되진 않아도 나름의 분위기와 색감을 지니고 있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지고 녹이 슨 두꺼운 기둥 같은 연탄난로는 어떻게 사용하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흰색 타일을 이어붙인 머리감기용 개수대는 1980년대나 그 이전을 시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속에서나 본 듯했다. 그 위에 아무렇게나 놓인, 재래시장이라면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파란색 물바가지가 손님들 머리 위로 물을 붓는 데 쓰인다는 것을 할아버지에게 물어보기 전에 미리 짐작하지 못했다.
 
이발소는 Z세대에 속하는 내게 그 자체로 박물관이었다. 물건 하나하나에 대해 그 용도와 나이를 물으며 감탄하고 있으려니, 문득 이발사 할아버지의 삶도 궁금해졌다. 그래서 인터뷰 요청을 하였고, 흔쾌히 승낙해 주셨다.

질문지를 직접 만들어 다시 찾아뵈었고 우리는 한 시간 반쯤 대화를 나누었다. 그게 지난 3월 12일의 일이다. 추운 겨울의 끝물, 마당 곳곳에 동백꽃이 붉게 피고 수선화가 고개를 들던 때.

할아버지는 가만가만 기억 속을 더듬으며 조곤조곤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나는 그의 말속에서 묘사되는 풍경과 상술되는 경험 혹은 역사를 머릿속에 그려보기도 하고 알고 있는 지식에 빗대어 대입도 해보며, 한 마디 한 마디를 소중히 가슴속에 담았다.

여든셋 이발사와 나눈 대화

할아버지는 1940년생이다. 광복하던 해 6살이었던 소년은 광복의 눈물겨운 기쁨에 대해 알지 못했다. 전간기 전라북도는 비교적 평화로웠다. 소년은 마을 둔치에서 어르신들께 막걸리를 얻어마시곤 했다. 광복 후 불과 5년여 만에 터진 전쟁은 당시의 취기를 말끔히, 순식간에 걷어버렸다. 소년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피난을 떠났다.

다행히 먼 길 타향은 아니었고, 1950년 여름 한 철만을 타지에서 보낸 뒤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벗겨먹은 나무껍질과 각종 '풀떼기들'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굶어 죽은 아이들이 묻힌 오솔길을 피해 걷던 기억도. 죽은 아이를 묻은 데를 오가면 복이 온다는 이상한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 소년은 기복을 떠나 꺼림칙함이 더 커 도저히 그 위로 걸어 다니지 못했다.

"식생활이 가장 급한 거여, 호구지책이. 그야말로 막막했지. 가세가 계속 기울고 공부할 기회가 더 없을 거 같아서, 그래서 상경했어. 야간고등학교라도 다녀보려고."

전후 호구지책마저 곤란해진 가족의 경제 사정에,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홀로 상경하였다. 식구를 줄여 가족의 생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선택이었다. 서울 바닥에서 혼자 살아남기 위해 갖가지 종류의 일터를 전전하였다. 어린 나이에 눈칫밥을 적잖이 먹었다. 미용일을 배우게 된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이발소 허드렛일을 해주는 대신 먹이고 재워주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 시작이었다. 그때가 열여덟이었다. 몇 달 동안만 머물 생각이었으나 하다 보니 몇 년이 되었고 입대 전까지 지속했다. 1961년 2월 18일에 입대하여 1963년 12월 18일에 전역했다. 그렇게 청년이 된 그는 또다시 일거리를 찾다 보니 결국 할 수 있는 것이 미용밖에 없어서 입대 전 하던 일을 입대 이후 다시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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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마을을 방문한 사람들이 놓친 것

전주를 찾은 방문객들이 시내버스를 타고 시청 앞이나 남부시장에서 내려 향하는 곳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역사를 품은 객사, 산업화 초기 흔적이 여전히 묻어 있는 구시가지(전주 시내), 근대화의 산물 중 하나이자 오늘날까지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기능하는 영화관들, 그리고 이들의 화룡점정 격인 한옥마을. 사람들은 이 모두가 한데 모여있는 곳으로 향한다.

2010년대 초 SNS 입소문에 승선한 한옥마을은 기존의 전통미에 '트렌디함'을 더한 독특한 매력으로 사람들을 전국에서 끌어모았다. 기존 한옥 문화재와 벽화마을 주변으로 기발한 먹거리들을 파는 가게들과 다양한 인테리어의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대기업도 유입되어 지역문화의 틀 속에서 창조적 기획들이 시도되었다. 건물 외부를 벽돌과 기와로 장식한 스타벅스, 한복을 입은 네오와 프로도가 안내하는 카카오프렌즈샵 등이 그 예이다. 한옥마을과 그 주변 전주 구시가지의 정경이 몇 년 사이 크게 바뀌었다.
 
사람들 관심이 쏠리고 시끌벅적한 한옥마을에서 북동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작고 고요한 마을이 하나 있다. 늙은 소나무가 많아 노송(老松)동이라 불리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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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어 주식투자는 맛집의 긴 줄에 서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하도 맛있다기에 줄은 서는데 자꾸 걱정이 된다. 진짜 맛은 있나? 조금 맵다던데... 나 매운 거 잘 못 먹는데... 그런데 얼마나 더 기다려야 되지? 심지어 이런 궁금증이 일기도 한다. '근데 여긴 뭐 파는 데지?'  

 
유명하다기에 먹어보고 싶긴 한데 이게 영... 마음이 편하지 않다. 당연히 자꾸만 엉덩이가 들썩인다. 그리고 이 편치 않은 마음은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해진다. 잘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불안함이다.
 
연애시절의 나는 긴 줄 따윈 서지 못했다.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김밥이 산다는 천국에 자주 갔다. 그곳은 기다리는 시간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천국으로 가는 직행코스를 두고 한 시간씩 기다리는 선택은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주식에서만큼은 잘 몰라도 맛을 보장한다는 말에 줄부터 서고 봤다. 그 맛집이 뭘 파는지, 대략 얼마나 기다려야 내 순서가 올 '수도' 있는지 모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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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한 복지관 직원인 나는 최근 '주민과 더 가까이 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이웃과 함께하는 공유 냉장고는 어떨까?'라는 고민을 했다. 이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복지관 직원들만 있어선 안 된다. 주민과 함께하기 위해서 공청회를 열어 마음을 알아보고, 다양한 의견을 들어봤다. 후원자님들이 후원해 준 빵을 색다르게 전달해보고 싶었는데, 이런 의견들이 나왔다.

"음식은 좀 위험한 것 같아요."
"우선 옷이나 물건부터 하면 어때요?"
"아~그렇네요. 그럼 우리 물건부터 먼저 해봐요!"

 
주민과 복지관 직원들은 일단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우선 우리 집에서 필요한 물건과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생각해 보고 찾아보기로 했다. 나는 필요하지 않지만, 나의 이웃에게는 필요할지 모르는 물건들을 내놓고 함께 나눠보기로 했다.
  
복지관 1층 로비 한쪽에서는 옛날 그림책에서 나오는 장터가 열리고 물물교환 이웃과 만나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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