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풀책(내 인생 풀면 책 한 권) 수업에서 옛날 사진을 갖고 와서 이야기를 했던 날이었다. 옛날 일을 떠올려 쓰라고 하면 어려우니 옛날 사진을 보며 묘사하기 수업을 했던 것이다.

늘 웃는 얼굴인 어르신은 유치원 졸업사진을 가져오셨다. 그 나이대 어르신들은 무표정으로 있으면 화난 것처럼 보이는 게 일반적인데 무표정일 때조차 옅은 미소가 있었다. 사진을 보고 내가 말했다. 
 
"우와, 전 일곱 살 때 피아노가 멋져 보였거든요. 저희 엄마가 유치원이랑 피아노 둘다 하긴 돈 없대서 결국 유치원 중퇴됐어요. 어르신은 그 시절에 흔하지 않을 이야기가 있을 거 같은데요?"

나는 약간 호들갑을 떨었다. 어르신은 다른 때와 달리 적극적으로 내 말을 받아주지 않으셨다. 이상했지만 나도 더는 묻지 않았다. 각자 사진을 보며 15분 간 글을 쓰셨다. 후에 보니 그 분이 쓰신 글은 아버지의 외도와 그로인한 어머니의 슬픔에 대한 짧은 글이었다. 한 마디로 유치원이 없는 유치원 글이었다. 

'사진 묘사라는 수업 의도에서 너무 멀리 온 글'이라고 피드백을 드리기도 어려웠다. 급한 대로 이전 시간에 수업했던 핸드폰 기본 앱을 이용한 녹음법을 다시 복습했다. 글쓰기보다 마음쓰기가 먼저라고, 마음쓰기는 상대가 앞에 있다고 상상하고 주절주절 녹음하는 걸로도 될 때가 있다고, 쓰는 게 막히면 그렇게 해보시라고 하고 수업을 끝냈다. 등에 땀이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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