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기사
文 대통령 "아베 총리 메시지 김정은에 전달"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25일 오전(미국시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게 "한반도의 평화구축 과정에서 북일관계 정상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뉴욕에서 아베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북일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있도록 적극 지지하고 협력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남동생은 십 년 가까이 열애하고 결혼했다. 남동생이 제 여자친구라며 지금의 내 올케를 소개했을 때가 까마득하다. 이십 대 초반인 나도 어렸고, 두 살 터울인 남동생도, 남동생과 동갑인 그녀도, 우린 모두 어렸다. 우리가 시누이와 올케 사이가 된다는 것까지는 미처 생각도 못했던 때다. 

당시의 나는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를 앓는 천둥벌거숭이였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녀에게 이꼴저꼴 다 보였다. 우리는 남동생 없이도 의기투합해 종종 어울렸다. 나는 그녀를 참 좋아했다. 나와 비슷한 점이라곤 하나도 찾을 수 없는 그 아이가, 너무 좋았다. 언젠가 '내가 한 번도 돌봐주지 않았는데 어느 날 불쑥 생긴 고마운 내 동생'이라고 편지를 쓴 적도 있다.

한때 그 커플이 잠시 헤어졌던 기간에도, 우리는 몇 번이고 만났다. 찰나일지라도, 나는 동생에게 앙심을 품을 만큼 그녀의 편이었다. 그녀가 다시는 나를 만나지 않겠다고 선언한 적도 있다.

나를 계속 만나면 연인과의 이별이 마무리 지어지지 않을 것 같아서, 슬프지만 그래야 할 것 같다며 그녀는 소리내어 울었다. 나는 소리없이 울었다. 갓 입사한 회사에 다니던 때인데, 전화를 끊고는 마치 지금 막 실연이라도 한 여자처럼 눈물을 훔쳐댔다. 벌써 십 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 이제와 말하니 조금 간지럽기도 하다. 

다시 만난 동생 커플은 결혼했다. 당연하지만, 진심으로 축하했다. 신이 났다. 쑥쓰러움이 많아 살갑게 굴지 못하는 성격임에도, 이런저런 선물들을 보내며 나름대로는 살뜰히 챙기려고 노력했다. 

시간은 흐르고, 동생 내외는 부모가 되었다. 그러던 중, 뒤늦게 깨달았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로부터 먼저 연락이 온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것을. 오해인진 몰라도, 어쩐지 그녀가 냉랭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무심한 척 왜 연락 한 번 하지 않냐고 묻자, 올케는 간단히 답했다. 

"(가족 모두가 있는) 그룹대화창에서 다 소식 주고 받으니까요."

서운했던 것도 잠시. 잊을 뻔한 일들이 떠올랐다. 지난 날을 돌이키고 곱씹은 뒤에야 내 실수들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이 글은 나의 변명이고 반성문이다. 

여동생같던 남동생의 여자친구가 올케가 됐다
 
 
동생 내외가 결혼한 지 일년쯤 되었을 때다. 올케는 아이를 가져 제법 배가 불룩했다. 직업상 거주지 이전이 잦은 동생은 막 새로운 지역에 발령받았고, 새 집이 준비되는 동안 동생 내외는 잠시 떨어져 있었다.

나는 동생은 직장 근처에서, 올케는 신혼집에서 지내는 줄 알았다. 오랜만에 올케를 만났다가, 그녀가 여러 날 째 친정에서 지내고 있다는 것을 듣게 됐다. 나는 내 말에 독이 있는지도 모르고, 생각나는 대로 내뱉었다.

"난 너가 친정에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어. 혼자 있는 게 힘들면 OO랑 같이 있지. 아무리 임시 숙소 환경이 좋지 않더라도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잖아. OO도 살고 있고. 너 아이들이 커서 전학을 다녀야 할지라도, 가족은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친정 부모님이 너를 안쓰럽게라도 여기시면 어쩌니. 괜히 OO가 잘못이라도 한 거 같잖아."

온통 잘못되었다. 구구절절, 하지 말았어야 할 말들 뿐이다. 기억을 되감으며 글을 쓰는 지금도, 미안함에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어느 구절 할 것 없이 몽땅, 자격 없는 말이었다. TV에서나 봤던 막말하는 시누이, 그게 나였다. 심지어 올케가 울음을 터뜨렸을 때도, 나는 영문을 몰랐다. 뭐가 잘못된 것인지도, 한동안 알지 못했다.

내 잘못을 깨달았을 때는 동생보다 늦은 결혼을 한 뒤였다. 시댁 식구들이 얼마나 어려운 존재인지, 좋은 말도 자칫 오해를 낳기가 쉬운 복잡한 관계라는 것을 몸소 경험한 뒤에야 깨달은 것이다. 겪고 나서야 안다니, 나란 인간은 얼마나 한심한가. 무례해도 되는 사이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다행히도, 올케는 나보다 나은 사람이다. 우리 관계는 눈에 띄게 달라지진 않았다. 한참 지난 후에야, 그녀로선 우리가 올케와 시누이 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고, 그렇게만 전해들었다. 뻔뻔하게도, 나는 조금은 섭섭한 마음을 품기도 했다. 왜 내게 직접 말하지 않았을까, 왜 사과할 기회를 주지 않았을까, 오래 쌓아올렸던 우리 관계는 얼마나 허망한가 하며. 

무례할 바엔 무심한 것이 낫다

지금은 인정한다. 그녀가 옳았다. 서러웠다고, 언니가 시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한들, 나로선 변명만을 늘어놓았을 것이다. 반성문을 자청하면서도 내가 그녀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얼마나 가깝게 여겼는지, 내 입장의 변명을 구구절절 늘어놓은 것을 보면. 우리는 그래도 되는 사이인 줄 알았다고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보아도 뻔한 변명일 뿐이다.

지금 우리는, 그럭저럭 괜찮은 시누이-올케 사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도 그럴 테지만, 나 역시 말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많이 노력한다. 생각없는 참견이 튀어나올라 치면 애써 꾹꾹 누른다. 먼저 도움을 청하지 않는 한, 내가 간섭할 자격은 없다. 무례할 바엔 무심한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아주 가끔, 우리가 쌓아올렸던 시간이 아쉬울 때도 있다. 더이상 우리는 언니 동생 관계가 아닌 것 같아서. 그러나 이 또한 사랑스럽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제와 오늘의 내가 다르듯, 관계 또한 쉼없이 약동하는 것일 테니. 그저 시간에,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기기로 한다. 각자 잘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참 고마운 일 아닌가. 

며칠 전 일이다. 밤 늦게 시골 지역의 친척 집을 방문한 나는 귀가를 위해 콜택시를 불렀다. 콜택시는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운 상황에서 쉽게 호출하여 심야 귀가를 위해 자주 이용하는 수단이다.

택시가 도착하고 차에 오르자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다. 그랬다. 분명 콜택시였음에도 앞자리에는 낯선 남자가 동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내가 타는 것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속닥거리며 대화를 이어간다. 심지어 내가 먼저 목적지를 말하기 전까지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가만히 보니 조수석에 붙어있어야 할 택시 운전 면허증도 없다. 가끔 룸미러로 흘깃 보는 것도 그렇고 꽤 신경이 쓰였다. 불과 몇 분 사이에 일어난 이 일련의 상황, 나 혼자만의 착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내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내가 이러려고 택시를 부른 것도 아닌데, 택시 내 침묵의 공간은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하다. 뒤늦게 용기를(?) 내서 물어보니, 택시기사의 친구란다. 허나 진짜 친구인지 아닌지 알 수 없고, 친구라 해도 합승은 당연히 불법행위다. 나에게 양해를 구하지도 않았다.  

기사를 쓸 생각이 없었는데, 생각할수록 이건 아니다 싶다. 또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꽤 많을 것도 같다. 특히 여성이 택시를 불렀는데, 낯선 남자가 미리 타고 있다면 충분히 위협적일 수 있다. 남자인 나도 찜찜한데, 여성들은 오죽할까.

택시 합승은 지난 1982년 전면 금지됐다. 합승으로 인한 요금 시비와 각종 범죄 등의 문제가 대두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합승이 문제가 된 가장 큰 이유는 함께 탄 사람이 누군지 전혀 모른다는 점이다. 동승자에 대한 정보 부재는 합승 손님의 불신과 이로 인한 혼란과 부작용이 속출했고, 또 범죄에 악용되기도 했다.

그래서 아직 택시 합승이나 기사와 동행하며 운행하는 행위는 엄연한 불법이다. 적발될 경우 택시기사는 20만 원 이상의 과태료를 내야 하며, 같은 행위로 2번 이상 위반 때는 일정 기간 운행이 정지되기도 한다.

그런데 지난 3월 정부가 36년 만에 택시 합승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해 논란이 됐다. 출퇴근과 심야시간대 택시 승차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저렴한 요금 등의 이유에서다.

하지만 내가 직접 경험해보니, 여성들의 경우라면 모르는 남성과 함께 택시를 합승하는 게 충분히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심야에 어려운 일을 당했을 경우 방어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택시 합승제는 안전에 대한 불안감을 충분히 해소할 수 있는 보완책을 마련한 뒤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혹시라도 택시에 낯선 남자가 미리 타고 있다면, 반드시 탑승을 거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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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에는 다섯 가족 중 나와 첫째 딸만 차례상 앞에 설 수 있었습니다. 둘째 딸은 카메룬에서, 아들은 영국에서 8시간 빠른 한국의 추석날 아침을 마음으로 함께 했습니다. 아내도 근무일이 되는 바람에 차례상에 함께 하지는 못했습니다.

딸이 차례상을 진설하는 동안 나는 지방을 썼습니다.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

지난 수십 년 동안 써온 같은 지방이지만 지금의 문구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이 문구는 내게 할아버지를 의미했지만 이제는 아버지를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아버지가 떠나신 지 3년, 여전히 아버지는 다양한 방식으로 제게 모습을 보입니다. 어떤 경우는 눈빛으로, 어떤 경우는 음성으로...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선명해지는 것은 어떤 조화인지 모르겠습니다.

현(顯)은 나타남을, 고(考)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학생(學生)은 관직에 있지 않은 사람을, 부군(府君)은 돌아가신 조상을, 신(神)은 신령을, 위(位)는 자리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 지방은 "배우는 학생으로 사시다 돌아가신 아버지 신령이시여 나타나셔서 자리에 임하소서"라는 의미입니다.

저는 아버지의 지방을 쓸 때마다 관직이 아니라 '학생(學生)'인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일생을 배우는 학생으로 사신 아버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농사꾼 아버지는 학교에서가 아니라 평생 산과 들에서 일로서 배움을 삼으셨습니다. 너무 이른 새벽에, 너무 늦은 밤에 들에서 그림자가 움직이는 형체를 보고 동네 사람들이 도깨비로 착각했습니다. 그 도깨비가 아버지였습니다.
 
 
이렇듯 삶이라는 배움에 치열했던 아버지. 그 아버지가 밤에도 들과 산에 계셨듯, 차례상 앞 대신 직장이라는 배움터에 있는 며느리를, 아프리카의 배움터에 있는 손녀를, 유럽의 배움터에 있는 손자를 더욱 흐뭇해하실 거란 생각입니다. 아버지는 스스로에게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치열한 배움을 독려했던 사람이었으므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지만 명절이 되면 더 외롭고 쓸쓸한 이들이 있다. 무연고자로 센터나 그룹 홈에서 생활하는 장애인이나 독거노인, 노숙자 등 그늘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다.
  
 
한가위 연휴가 시작되는 9월 22일 강화화문석 마을에서는 특별한 어울림 잔치가 열렸다. 정신지체 장애 청년들과 한 달에 한 번씩 등산을 하는 동호회 회원과 장애인이 함께 한, 강화 여행과 명절 음식 나누기 행사다.

이 행사는 등산 동호회 산바다 여행 클럽이 주최하고 50플러스 사회공헌전문단 해왕, 생명평화포도농장, 넉살좋은 강화로 여행, 강화도 화문석 마을, 베떼르망의 후원으로 이뤄졌다.
 
함께 한 청년들은 정신지체 장애를 지닌 무연고자로 그룹 홈에서 생활하는 청년들이다. 그들이 함께 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행사를 주최한 '산바다여행클럽' 회원 양나미씨는 매달 첫째 주 토요일 오전 10시 '교남 소망의 집' 장애인들과 봉사산책을 한다고 말했다.
 
"햇빛을 받으며 트래킹을 하면서 제 자신이 힘을 받고 치유되는 경험을 하게 됐어요. 50이 넘으면서 불면증이 오더라고요. 햇살을 듬뿍 받으며 몸을 움직이는 것은 모두의 정신 건강에 좋은 것 같아요. 처음엔 잘 할 수 있을까 두려웠는데 오히려 제가 더 많이 위로받고 힐링이 되더라고요. 우리가 하고 있는 소모임 활동이 독거 어르신 등에게도 확산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일행은 '넉살좋은 강화로 여행' 함경숙 문화기획자의 해설을 들으며 차량 투어를 한 뒤 화개산에 올랐다. 천년이 넘었다는 은행나무에서는 서로 손을 잡고 소원을 빌기도 했다. 평화의 섬 교동도 대룡시장 스탬프 투어를 마치고 작은 기념품도 받았다. 석모도 햅쌀로 송편 빚기, 전 부치기 등 본격적인 어울림 행사는 강화도 화문석 마을에서 진행됐다.
  
 
"어? 송편이 터져서 속이 나와 버렸어요."

송편 빚는 법을 배워 처음으로 송편을 빚다보니 속이 삐져나오기도 하고 모양도 제각각이지만 청년들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한 청년은 속을 넣어 모양을 내는 것이 어렵다며 반죽을 주물러 소를 넣을 피만 만들어 주기도 하고, 다른 청년은 손가락으로 꾹 눌러 고정시키는 방법으로 송편을 빚기도 한다. 다른 청년은 소로 넣을 밤과 콩을 까고 어떤 청년은 전 부치는 것을 돕기도 한다. 다 부쳐진 전을 가져다 친구들 입에 넣어주는 청년도 있다.
  
 
석모도 섬 햅쌀로 빚은 송편과 햅쌀밥, 전, 김치, 돼지불고기, 양파오이장아찌, 막걸리까지 준비된 상이 차려지고 청년들과 함께 한 봉사자들이 어울려 서로를 격려하며 밥과 떡을 나누어 먹는다. 함께 하지 못한 그룹 홈의 동료들을 위해 전과 떡을 싸는 일도 잊지 않는다.
  
 
여름에 이들과 함께 1박 2일로 강화도를 찾았다고 한다. 유난히 무더웠던 올 여름이었지만 밖으로 나온 청년들은 무척 활기찼고 재미있었다며 다시 강화도를 오고 싶어 했단다. 긴 명절 연휴에 갈 곳이 없는 청년들과 함께하는 어울림 한마당 프로그램을 강화도 화문석 마을에서 기획한 이유다.

화문석 마을 대표는 기꺼이 행사를 응원해 장소를 제공하고 막걸리도 한 상자 선물했다. 살맛나는 강화도를 꿈꾸는 시민연대 모임인 '살강시대'와 '넉살좋은 강화로 여행' 회원들이 기꺼이 음식을 준비해 상을 차리고 설거지까지 해줬다.
 
돌아오는 길에 생명살림 포도농장에 들러 포도 따기를 체험하고, 딴 포도를 맛보고 한두 송이씩 가져오기도 했다. 협동조합이면서 순수 유기농으로 포도농장을 하고 있는데 올해는 날씨 영향으로 당도는 높지만 생산량이 많지 않아 조기에 판매를 끝낸 상태라고 한다. 공동 경영자 세 명 모두 장애인과 함께 하는 모임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와 비장애를 가르고 생활공간을 구분하는 것에서부터 차별과 편견이 싹트는 것은 아닐까. 누구든 그들과 함께 활동을 해보면 사실 별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장애는 생활을 하는데 있어 조금 불편한 상황일 뿐이니 말이다. 앞으로는 더 많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경계를 넘어 함께 어울려 행사가 아닌 일상의 어울림 마당에서 함께 웃고 울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송편 하나에 50kcal면 오늘 4개 먹었으니까…'

추석 연휴에 하릴없이 들어간 SNS에는 손쉽게 접하게 되는 정보들이 있다. 송편, 전, 갈비 등 명절 음식들의 칼로리를 알기 쉽게 정리한 것들이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밥 한 공기를 기준으로 비교하기도 하고, 전문가 권장 칼로리에 비해 얼마나 과한 칼로리를 섭취하게 되는지 친절히 알려주기도 한다.  
 
 
그런데 그 사진을 본 이후로 명절 음식을 먹을 때면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들의 칼로리가 얼마쯤인지 나도 모르게 속으로 셈을 했다. 아침에 거울을 보며 지난 밤보다 조금 더 붓지 않았는지 확인하기도 했다. 왠지 전날보다 조금 퉁퉁해진 듯한 기분이 들면 '오늘은 조금만 먹자'고 습관처럼 다짐했다.
  
내 몸의 기본값은 마른 몸?

그런 다짐과 더불어 집안 어른들의 가벼운 농담들이 마음에 꽂혔다. 명절 음식이니 양껏 맛있게 먹으라고 하면서도 "역시 다이어트 중이라 많이 안 먹는구나", "지금 먹고 남산 몇 바퀴 돌고 와라" 하는 말들이다.
 
나의 몸은 어쩐지 고칼로리의 명절 음식을 먹어서 붓기 전의 몸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살이 찌지 않은, 그런 몸매가 언젠가부터 내 몸이 가져야 할 기본값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자기 관리'라는 말을 할 때도 늘 그 목록에 '다이어트'를 끼워 넣었다. 스스로를 더 나은 '여성'으로 관리하는 방법 중 몸매유지는 늘 빠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건 일종의 '다이어트 명령'이었다.
 
여성으로서의 나는 특히 그러한 명령에 강박적일 수밖에 없었다. 사회의 기준에 나의 몸이 부합하지 않으면 부끄러움이나 위기감 같은 것을 느꼈다. 계속해서 마르고 싶었다. 나의 건강을 위함이라고 대충 둘러대곤 했지만 사실은 몸에 살이 붙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마른 몸에는 죄가 없다

어쩌면 내가 신체를 단련하는 것에 대한 욕구가 큰 탓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사회의 명령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 욕구가 만든 강박일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 욕구조차 정말 나의 것인지 헷갈린다. 내가 신체를 단련함에 주체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들 그 '단련된 신체'라는 형태는 늘 사회가 받드는 '예쁜' 몸과 맞닿아 있었다. 

나는 그것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마른 몸을 우상화함에 나를 보태게 될까 봐 차마 당당히 "나의 의지"라고 외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다시 곱씹어보아도 운동을 하고 식단 조절을 해서 신체를 가꾸는 것에는 죄가 없다.

여전히 나는 다이어트가 자신을 표현하는 한 방식일 수 있다고도 믿는다. 다만 그러한 '주체적인' 다이어트를 하는 것도 여성에게는 쉽게 허락되지 않은 듯하다. 그러기엔 이미 여성의 마른 몸이 너무도 대상화되어 있지 않은가.
 
그 결과 나는 딜레마에 빠져버렸다. 강박적인 다이어트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이고, 나의 몸은 나의 것이라 외치며 주체적으로 몸을 가꾸는 실천을 하더라도 결국은 늘 죄책감이 뒤따랐다. 혹여 그것이 페미니즘에 반하는 행위가 되어버릴까 염려하는 상황에 부닥친 것이다. 다이어트에 고통 받는 것도, 그것으로부터 탈피하려 애쓰는 것도, 그 탈피의 과정을 다시 검열하는 것도 내 몫처럼 느껴졌다.

원하는 것은 단순하다. 살이 찌든 아니든 그것 때문에 남이 나를 깎아내릴까 걱정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지금 나를 감싸 안고 있는 이 사회 구조 속에서는 이 걱정이 정말 내 것인지 아닌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언젠가 내 몸을 정말 '온전한' 나의 것으로 찾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역시 나는 모른다. 그저 추석음식을 앞에 두고 SNS에 떠돌아다니는 음식 칼로리의 숫자 셈들이나 다이어트 자극 영상, 때맞춰 쏟아져 나오는 다이어트 약품 같은 것들을 전보다 재빠르게 넘기는 수밖엔 없다. 풍요로운 명절, 상다리는 휘어지지만 내게 허용된 음식은 한 접시에 불과해 보인다.
추석 당일 새벽 노고단 일출을 보기 위해 노고단에 올랐습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지리산 노고단 아래 구례에 사는 이들의 색다른 추석 풍경입니다. 
 

어떤 이는 지리산 종주를 위해, 어떤 이는 노고단 일출을 보기 위해 노고단에 올랐습니다. 노고단 탐방을 위해서는 탐방 예약을 해야 하며 노고단 고개에서 예약 확인 후 노고단 정상에 오를 수 있습니다. 
 

어둠을 뚫고 노고단 정상에 도착하니 초가을 찬바람이 세차게 불어옵니다. 세찬 바람과 찬 기온 때문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노고단 고개에서 일출을 기다렸지만 아쉽게도 구름으로 인해 일출을 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찬 바람에도 고개를 내밀고 있는 노고단의 야생화들이 일출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줍니다.

노고단 야생화, 어수리
 
 
노고단 야생화, 구절초
  
노고단 야생화, 벌개미취

소설 <태백산맥>에서 손승호가 표현한 일출은 보지 못했지만 추석맞이 노고단 산행은 새롭고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주었습니다.  
하늘을 물들인 붉은 기운에서 넘치던 생명감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손승호는 비로소 깨닫고 있었다. 해가 솟아오르면서 퍼져 나온 햇살이 일시에 천지에 가득 차며 하늘이고 땅이고 한 덩어리로 붉게 물들었다. 나무란 나무, 바위란 바위, 풀이란 풀, 타고 남은 나무의 잔해까지도 붉은 기운에 젖어 있었다. 지리산이 온통 붉게 물들어 해 앞에 숨죽여 읍하고 있었다. 그리고 햇살은 나뭇잎이며 풀잎에 샅샅이 스미고, 고루고루 뿌려져 잎마다 맺힌 이슬방울들 모두가 반짝반짝 빛나는 영롱한 구슬이 되게 해놓고 있었다. 

소설 <태백산맥> 중에서
 
무넹기에서 바라본 구례읍
 
성삼재 전망대에서 바라본 산동 온천지구

노고단 일출이 아니더라도 날이 밝아지면서 얼굴을 내미는 야생화와 무넹기와 성삼재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 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한 산행이 되었습니다.

#노고단일출산행 #지리산노고단 #소설태백산맥 #구례추석풍경
 
나는 평상시 시가와의 관계, 며느리로서 정체성에 부대낌이 덜한 편이다. 시가와 거리가 멀어 자주 만나지 못하지만, 시어머니가 나에게 '며느리'라는 이유로 기대하시는 바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남편 집은 가족주의적이지 않다. 아들만 둘에 남편은 차남인데, 식구 사이가 나쁘진 않지만 간섭과 참견이 적은 편이다. 다른 집에서 중히 여기는 가족 행사라도 볼 일 있으면 스스럼없이 빠지는 등, 가족이니까 무조건 함께해야 한다는 문화가 없다. 시어머니도 며느리들에게 딱히 관심이 없으시다. 나에게 직접 전화를 하지도, 나의 전화를 기대하지도 않으신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나는 결혼 8년 동안 명절에 '불량'할 수 있었다. 시가는 경북, 친정은 전북. 우리 집은 경기도. 어린아이를 데리고 명절에 대한민국을 횡단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차례에 듬성듬성 참여했다. 이번 추석엔 친정, 다음 설엔 시가를 가거나 명절 2~3주 전에 미리 방문하는 식으로 대처해왔다. 이럴 수 있던 건 시어머니께서 깔아놓은 멍석 덕분이다.       

결혼하고 첫 명절, 음식준비를 각오했던 나는 조금 당황했었다. 

"우린 모여서 안 만들어, 각자 해간다." 

큰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맏며느리가 된 시어머니는 차례 음식 장만을 없앴고 '포트럭(potluck, 각자 음식을 조금씩 가져와서 나눠 먹는 식사)'으로 바꿔버리셨다. 집마다 나물, 떡, 전, 고기를 나눠 맡아 사 오든지 만들어오든지(당연히 모두 사 온다) 해서 명절 당일 아침 큰 집에 집결한다.  
   
시어머니의 조용한 반란은 '명절 음식 준비 폐지'에 그치지 않고 몸소 차례를 넘겨버리는 데까지 이르셨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출근하셔야 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이번 추석에도 근처 요양병원에서 24시간 교대 근무를 하신다. 명절 때 일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요즘은 명절 당직을 자처하는 분위기라고도 하지만) 사람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다고 하신다.

하지만 명절에 가족여행이라도 가자고 하면 만사 제치고 반기시니 어머니도 호시탐탐 '명절 보이콧'을 꿈꾸시는 게 아닐까 짐작해본다. 나는 시어머니의 일탈에 고부 관계를 넘어선 연대를 꿈꾸면서도 가까이 가기엔 어려워 머뭇거린다. 

차례는 남자들의 친목 도모, 여자는 일꾼
 
 
명절 음식 준비라는 중노동을 없앴다고 해서 남편의 집안이 매우 진보적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차례상 차리기는 여전히 남아있다. 시어머니도 차례만큼은 어쩌지 못하셨다. 네 시간 동안 진행되는 남자들의 친목 도모, 그들이 조상님께 절하고 큰 상에 모여 앉아 밥 먹는 동안 여자들이 좁은 부엌을 오고 가며 '서빙'을 하는 것이 내가 겪는 명절의 모습이다.      

지난 설날에도 남녀 다 함께 세배를 주고받고 정겨운 덕담을 나누는 시간은 없었다. 남자들끼리 모여 차례를 지냈다. 여자들은 일꾼일 따름이었다. 이왕 지내는 차례, 여자도 절하도록 권하는 게 요즘 추세라는데 여자들은 부엌 문턱을 넘지 못한다.

차례가 끝나면 거실의 넓고 긴 상에 남자들만 모인다. 반찬과 국과 밥을 날라주고 서둘러 작은 방에서 배 곪으며 젓가락 빠는 아이들 밥을 푸려니 '밥이 되다', '국이 싱겁다', '간장을 가져오라'는 호통이 날아온다. 아이들 상에 놓을 반찬까지 모조리 큰 상으로 가버린 것도 속상한데 이 와중에 반찬 투정이라니. 

크고 긴 상에 남자들이 넉넉히 자리 잡아 여유롭게 밥 먹는 동안 손녀들 열 명과 며느리 다섯은 작은 방에 차려진 좁은 4인용 밥상에 겹겹이 끼어 앉는다. 먹고 남은 반찬에 마지막으로 젓가락을 얹는 건 며느리들 몫. 형님들이 대접에 나물을 비벼 뚝딱 해치우는 동안 나는 꿋꿋이 소고기뭇국에 흰밥을 먹었다. 식사가 끝나면 며느리들은 남은 음식물을 치우고 설거지하고 티브이 보는 남자들에게 커피와 과일 후식을 내놓는다. 

꼬박꼬박 참여하는 명절은 아니지만 명절 때마다 벌어지는 이런 풍경을 겪으면 속이 쓰리다. 여자들을 '후손'으로 쳐주지도 않고 부엌데기로 밀어둘 거라면 왜 부르나 싶다. 남자들만 반찬 가지고 모여서 자기들끼리 상 차리고 먹고 설거지하고 헤어지면 될 터인데, 왜 그걸 못하나. 형제들과의 친목조차 왜 아내들에게 의존하나. 차례상에 모인 이 남자들은 아내들이 차례와 제사에서 손을 놓으면 어찌 대응할지 궁금하다. 직접 할까. 아니면 해체할까. 
   
단 하루도 견딜 수 없는 이유 

그럼에도 남편은 '이런 시댁이 없다'며 나보고 복 받았다고, 감사하라며 으스대곤 했다. 왜 이런 처지에 내가 황송해야 할까. 일해준 나에게 남편이 고마워해야지.

나는 물론 시어머니에게 감사한다. 며느리 노릇을 덜 시켜주셔서, 나를 덜 부려먹어서 감사한 게 아니다. 맏며느리로 최전선에서 작은 것부터 바꾸려 하시기 때문에 같은 여성으로서 시어머니에게 감사하다.      

하지만 시가로 가는 길은 불편하다. 나에게 주어지는 노동의 양이 적다 해도, 며느리 역할을 사사건건 강요받지 않는다고 해도, 명절과 차례에 담긴 모습 하나하나에 속이 편하지 않다.

이만큼에 감사하며 입 꾹 다물고, 내 처지는 그래도 낫다고 안도하면서 불편함을 외면해야 할까. 조선 시대로 '타임슬립' 해서 차례상을 차릴 때마다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이 차오르던 차, 책에서 이 문단을 발견했다.
 
"'명절 하루 일하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속 좁게 구는 거야?'처럼 멍청한 소리도 없다. 그날 하루 우리는 364일 겪어온 차별과 착취를 어머님과 아버님과 서방님과 아가씨들 앞에서 19세기 버전으로 응축해 겪으며 벗어날 수 없는 가혹한 여성의 운명에 몸서리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노동의 강도가 아니다. 아무리 궁리해도 도무지 찾아지지 않는 노동의 합목적성이 비극의 원인이다. " - 박선영, '미래에서 온 며느리', <1밀리미터의 희망이라도>

364일을 차별 없이 산다 해도 단 하루 혹은 이틀 동안 사회와 시대에 놓인 여성의 위치를 집약해서 확인한다. 남자가 집을 해왔다고? 남자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니 해야 한다고?

시어머니는 현재 실질적 생계부양자이며 시아버지는 시어머니에게 의탁한다. 자리에 모인 며느리들 그 누구도 시가로부터 집을 받지 않았으며 '가장'인 여자도 있다. 행여 뭔가 받았다 해도 그 대가로 목적에 맞지 않는 일을 해야 한다면 그건 노예가 아닌가.

대가족이 모인 공적인 자리에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성씨 다른 조상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상을 차리고 그릇을 씻고 구석에 앉아 쭈그려 남은 밥을 먹는다는 건, 단 하루 이틀이라고 넘어가기엔 너무도 상징적이다.      

조용하고 은밀하게, 균열은 시작됐다
 
 
지난 설, 차례가 끝나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형님과 영화를 보러 갔다. 남편의 조상을 위해 수고한 우리에게도 보상은 필요하니까. 형님은 나에게 슬며시 말을 건다. 

"동서, 우리 친정은 제사, 차례 다 안 지내거든. 나중에 제사는 성당 위령미사로 대체하자. 그리고 명절에도 차례 지내지 말고 여행 가자고." 

고인을 기리는 방법에 제사만 있는 건 아니다. 명절에 꼭 모여 음식 먹고 차례 지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취지가 좋다고 해도 여성의 노동만을 착취한다면 같이 조상을 기리거나 가족끼리 즐기는 자리가 될 수 없다.

큰 형님이 "요즘은 차례를 한 번으로 줄이는 추세다"라고 넌지시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시어머니는 공공연하게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차례와 제사를 없애시겠다고 말하고 다니신다. 그렇다. 다들 벼르고 있다.  

내 주변 여자들은 노회한 어른들 앞에서 봉기를 일으키지 못하지만, 명절의 의미조차 무색하게 하는 차례라는 짐을, 제사를,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조용하고 은밀한 준비를 하고 있다. 말 없는 동조와 연대를 통해. 

이번 추석, 집안의 큰 며느리인 시어머니는 차례에 빠지신다. 평소 같으면 우리라도 어머님이 주시는 나물 반찬을 들고 큰 집으로 갔겠지만, 이번엔 우리도 빠지기로 했다. 시어머니께서 쉬시는 주말에 모여 식사만 하기로 했다. 잠은 따로 숙소를 잡아 우리 세 식구만 자기로 했다. 그리고 추석 전날 친정으로 이동한다.

갑작스러운 일정에 놀란 건 친정엄마다. 70세인 친정엄마는 둘째 며느리인데 아직도 큰 집에 차례를 지내러 가신다. 그런데 우리가 추석에 일찍 가겠다고 하자 이번엔 엄마도 차례에 빠지겠다고 하신다. 그동안 빠질 구실이 없으셨는데 사위까지 데리고 큰 집에 가는 건 모양이 좋지 않다며 얼씨구나 하신다. 남동생과 아빠만 가기로 했다. 

시어머니의 명절 보이콧은 나의 명절 보이콧으로 이어졌고, 다시 70세 친정엄마의 명절 보이콧으로 이어졌다. 누군가 도미노를 툭 치기를 기다리는, 언제든 와르르 무너질 준비가 되어 있는 아슬아슬한 명절의 풍경. 이미 도미노는 시작되었다.

아직은 남편의 집안도, 또 나의 집안도 차례를 없애지 못했다. 내가 빠진 자리, 누군가 빠진 자리를 다른 며느리들이 '봉사' 하면서 채우겠지. 그러나 벽은 틈새와 균열에서부터 무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