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기사
서울시, 승차거부 택시회사 22곳에 운행정지 처분
서울시가 승차거부를 많이 한 22개 택시회사에 사업일부정지 처분을 내릴 예정이다. 서울시는 지난 7일 승차거부 다발 택시업체 22곳에 1차 처분인 사업일부정지처분을 사전 통지해 26일 소명 접수를 마쳤다고 27일 밝혔다.
 
 
낙지의 계절이다. 봄 조개, 겨울 낙지라고 했다. 요즘 가는 곳곳마다 산낙지가 선을 보인다. 가을과 겨울이 제철인 낙지는 힘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추위에 움츠러든 몸을 추스르는 데 낙지 만한 해산물도 드물다.

요리의 세계는 실로 무한하다. 같은 식재료라도 어떻게 요리해 먹느냐에 따라 그 맛이 천차만별이다. 산낙지는 말 그대로 살아있을 때 산낙지 탕탕이로 먹는 게 매력적이다.

산낙지를 도마 위에서 칼로 탕탕~ 두드려 잘게 자른다. 취향에 따라 채소와 쪽파 등을 더해 참기름 소금장에 버무려 먹는다. 이때 된장에 참기름을 듬뿍 뿌려낸 된장 양념도 썩 잘 어울린다.
 
 
살아 꿈틀대는 산낙지의 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산낙지 탕탕이를 맛보는 순간 특별한 미식의 기쁨이 온몸에 전율처럼 가득 전해져온다.

가끔은 이렇듯 제철에 먹는 특별한 음식이 좋다. 이런 게 진짜 미식이 아닐까 싶다. 날마다 반복되는 같은 음식을 먹는 현실 속에서 외식은 색다르게 다가온다. 어떤 분위기에서 누구와 먹느냐에 따라 그 맛 또한 달라진다.

스태미나 음식인 살아 꿈틀대는 산낙지는 맛과 영양성분이 많아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다. 야들야들하고 부드러운데다 쫄깃하게 씹히는 식감이 진짜 별나다.

옛 문헌을 살펴보니,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영양부족으로 일어나지 못하는 소에게 낙지 서너 마리만 먹이면 벌떡 일어난다'고 기록하고 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성이 평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고 한다.
 
   
   
 
저칼로리 식품인 낙지는 단백질과 비타민B2, 무기질, 칼슘, 인 등이 풍부하며 강장 효과가 뛰어나다. 타우린 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으며 콜레스테롤과 빈혈 예방에도 좋다.

인삼에 버금간다는 겨울 무를 숭덩숭덩 썰어 넣어 끓여낸 연포탕도 좋다. 또한 양배추, 애호박, 미나리, 양파, 팽이버섯, 등의 채소와 함께 끓여낸 낙지전골도 이 겨울에 제격이다. 이들 음식에는 채소나 닭을 삶아 우려낸 맛국물을 기본 육수로 사용하는 게 좋다.
 
겨울 날씨답게 쌀쌀한 바람이 분다.

오랜만에 북한산 백운대에 오르기 위해 집을 나섰다. 

소나무 숲길을 홀로 걷는다.  솔잎 향기가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이날 산행은 효자비-숨은벽-백운대-백운봉암문-용암문-용암사터-중성문-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순으로 진행했다.

숨은벽으로 가는 길은 밤골에서 올라오는 계곡과 만나는 길에서부터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북한산의 겨울

숨은벽 능선을 오르기 위해서는 급경사길을 올라야 한다. 가쁜 숨을 쉬며 오르다 보니 몸에서 열이 나며 추위가 사라진다.

나는 철 구조물을 잡고 우회해 숨은벽 전망대에 올랐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인수봉, 숨은벽, 백운대는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이 날은 태양이 백운대 위에 있어 숨은벽 계곡으로 햇살이 내려온다.

전망대에서 잠시 쉬었다가 숨은벽능선길을 오른다. 겨울바람이 차갑다. 상의 등산복에 달려있는 모자까지 쓰고나니 따뜻하다.

계곡으로 내려가 백운대를 향해 오른다. 계곡을 넘어서니 따스한 햇살이 반갑다.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고 컵라면으로 점심을 떼운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백운대를 오른다. 평일이지만 꽤 많은 등산객들이 백운대를 오르내린다. 바로 앞에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성이 백운대를 오른다. 맨손으로 철 구조물을 잡고 오르는 모습이 추워보인다.

백운대 정상의 태극기는 오늘도 힘차게 펄럭이고 있다. 정상에 오른 등산객들이 백운대 태극기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는다. 백운대 정상의 넓은 바위에서 등산객들이 컵라면을 먹기도 하고 따뜻한 차를 마시기도 한다. 그 앞에는 길 고양이들이 먹을 것을 달라는 표정으로 앉아 있다.

천천히 하산한다. 백운봉 암문을 지나 용암문 방향으로 걷는다. 계단을 오르다 돌아 보면 백운대의 거대한 바위산이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매우 아름답게 보인다. 용암문을 지나 북한산대피소(용암사터)의 양지바른 곳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니 마음까지 따뜻해진다.

중흥사, 중성문을 지나 북한산성 계곡을 따라 하산한다. 얼음 아래로 계곡물이 힘차게 소리를 내며 흐른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이 한 가지로 충분했던 첫 마음과 달리 아이가 자라는 만큼 아이에게 바라는 것이 하나둘씩 많아졌다. 태어난 지 3개월 때까지는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말이 실감 났다. 예뻐서 아이에게 뽀뽀해주다 보면 입안에 침이 돌아, 달콤한 맛이 저절로 솟아나는 기분이었다.

감사하게도 내 바람처럼 아이는 건강하다못해 에너지가 엄청났다. 그런데 이젠 배불러 터지는 소리겠지만, 아이가 잘 따라주지 않을 때면 마음이 고프다. 조금만 더 잘해줬으면 좋겠는데, 친구들과 잘 어울렸으면, 밥을 스스로 먹었으면, 이를 잘 닦았으면, 잠을 일찍 잤으면, 얌전했으면... 일일이 세기도 힘든 바람들이 넘쳐난다.

나의 육아 고민도 이런 바람들을 버리면 자연스레 없어질 걱정 거리일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욕심은 점점 많아진다. 처음에는 아이가 하품만 해도 잘했다고 칭찬해줬다. 뒤집기를 해냈을 때는 엄청난 성공을 이룬 것처럼 환호성을 질렀고, 두 발로 섰을 때는 마라톤 1등이라도 한 듯 박수를 쳤다.

작은 일 하나에도 칭찬하고 격려했던 시절이 불과 몇 달 전인데, 이젠 아이가 블록을 잘 쌓아도, 밥을 잘 먹어도 기계적인 탄성만 형식적으로 삐져나온다. 아이도 거짓 칭찬은 눈치로 다 알아내곤 싫어한다.

"우리 아기, 아유 잘했네."
"잘한 게 아니야!"


온 마음을 담는 진짜 칭찬과 대충 심드렁한 가짜 칭찬을 아이는 기막히게 잘 구분한다. 내 기대치를 너무 높이지 말고,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진심으로 기뻐하고 독려해줘야 하는데 커지는 욕심을 막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에 어색한 티를 되도록 덜 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유치원에서 부모 교육 강의 시간에 칭찬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부모회복공간 샘의 김성경 선생님은 능력에 대한 칭찬을 주의하고 과정과 노력, 기여와 협력에 대해 칭찬해야한다고 말씀해주셨다.
 
<과정과 노력에 대한 칭찬>
- 신경 많이 썼네.
- 찝찝함 이겨내고 애썼다.
- 열심히 노력해서 완성했구나.
- 심심한 걸 잘 이겨냈구나.
- 힘들 때도 있겠지만 응원해.
- 마음먹은 것만으로도 큰 발전이야.

<기여와 협력에 대한 칭찬>
- 네가 한 행동이 우리 가족이랑 엄마에게 큰 힘이 됐어.
- 도와주니까 편해. 네가 도와준 덕분에 내 시간이 많이 생겼어.
- 내가 지금 피곤했는데 네가 해주니 마음이 훈훈해지네.

비록 서툰 연기지만 아이가 이룬 작은 성과에도 크게, 그러나 과하지 않게 격려하도록 연습하려 한다. 욕심 부리지 말고,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데 아이가 심하게 아픈 후에야 건강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는다. 첫 마음을 계속 유지하기는 어렵지만 아이의 '건강'만큼은 오래도록 감사하며 살고 싶다.
  
나날의 행복을 채우는 감사 일지
 
 
가짜 칭찬을 하지 않고, 아이에게 진짜 칭찬을 해주는 연습을 하기에 좋은 방법을 찾아냈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나면 분명 많은 일을 한 것 같은데 대체 뭘 했나 기억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는데 유치원에서 매일 사소한 것 하나라도 감사했던 일을 적는 숙제를 내줬다. A4용지 한 장에 한 달치 날짜가 쓰여 있고 감사하고 행복했던 일을 적는 칸이 표로 나눠져 있는 것이었다.

한 줄씩 적어 나가다보니, 감사하게도 그걸 바탕으로 어느새 육아일기 한 권을 쓸 수 있게 되었다. 평범한 일상을 모아쓰다보니 내 경험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곳이 있단 걸 알고, 오마이뉴스에 글을 올리게 되었다. 그러다 기사를 본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책을 낼 수 있었다.
 
<아이와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
1. 자잘한 일상 한 줄이라도 기록하기
2. 기록한 내용 중 같은 주제를 모으기 (예를 들면, 한글 교육이나 훈육했던 이야기들을 한장 정도로 정리해본다)
3. 한 주제로 모았던 내용의 공통점과 차이점 혹은 잘했던 점, 잘못한 점 구분해 써보기
4. 유치원 선생님 혹은 상담선생님께 궁금하거나 답답한 부분 묻기
5. 기록한 일상을 인터넷 블로그나 오마이뉴스에 올려 공유하기

솔직히 처음에는 감사 일지의 조그만 칸을 채우기도 쉽지 않았다. 어떤 걸 감사해야 하는 걸까 난감했다. 너무 평범한 하루였다. 그런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말 미소조차 지은 일이 없었을까 돌아보면 그건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 절로 사랑스러운 마음이 일어나 내가 "사랑해"라고 말해주니 아이가 미소를 보여줬고, 유치원 버스를 타고 갈 때는 손을 흔들며 웃어줬다. 이렇게 사소한 것부터 적어나갔다.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아줘서 고마워.'
'유치원에 갈 때 짜증 내지 않아서 고마워.'
'많이 웃어줘서 감사해.'
'배가 많이 아팠을 텐데도 씩씩하게 잘 견뎌줘서 고마워.'
'설사로 힘들었을 텐데 의젓하게 잘 이겨낼 수 있어서 감사해.'
    
  
한 달 치의 작은 행복들을 채워보니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생활 속에서 쌓인 소소한 일 서른여 가지는 열심히 잘 살았다는 증거가 되어주는 것 같았다. 아무리 아프고 힘든 날이어도 그 안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습관이 생기고 있다. 아이와 함께 이야기하면서 감사 일지를 쓰면 더욱 좋았다.

내 일기는 자주 '오늘은 너무 힘들었다'로 끝나곤 했는데 감사 일지를 쓴 이후부터 항상 좋은 끝으로 매듭짓는다. 불행 속에서도 희망을 찾듯이 평범한 하루에서 특별함을 찾아내려는 이 습관이 오래오래 이어지도록 내 옆에 항상 감사한 마음을 두어야겠다.
 
 
 
 
#1
 
저는 매월 초, 한 어르신의 전화를 받습니다.
 
"촌장님, 쌀 잘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금방 전화를 끊을 자세의 그 목소리 끝을 잡고 서둘러 안부를 묻습니다.
 
"기온이 많이 내려갔는데 원장님과 형제들은 어떠세요?"
"네, 괜찮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짧게 답하고 결국 전화를 끊습니다. 원래 말을 아끼는 분이 시기도 했지만 점점 더 귀가 어두워져서인지 전화통화를 불편해하는 것 같습니다.
 
이 전화의 당사자는 우총평 원장님입니다. 버거씨 병으로 8번의 대수술을 받고 허리 아래 두 다리를 완전히 잃은 분이지만 갈 곳 없는 지적장애인들을 거두어 멸시받던 자들의 천국을 일구었습니다. 바로 '프란치스코네집'입니다. 전국 다섯 곳에 지적, 지체 남녀 장애인의 집을 설립하셨고 우 원장님은 현재 파주 프란치스코네집에서 지적장애인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파주의 헤이리주민회는 회원 회비의 일부를 할애해 프란치스코네집에 매월 쌀을 보내고 있습니다.
 
쌀을 받자마자 전화를 주시는 원장님의 수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도정량을 늘이는 것도 한가지 방법입니다. 하지만 매월 도정해 보내는 것은 묵은 쌀로 밥을 짓는 것보다 밥맛이 좋을 거란 이유에서입니다.
 
#2 
 
 
영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 영대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몇 주간의 방학에 들어갔습니다.
 
우리 집은 유학 중 방학에 한국으로 귀국하기 보다 그 일대를 여행하면서 그 지역을 공부하기를 권합니다.
 
고향으로 모두 떠난 타국의 대학 기숙사나 자취방에서 외로운 시간을 보내는 대신 여행길에 오르면 외로움에서 탈출하면서 지역 문화에 더 깊이 도달하는 기회도 되기 때문입니다.
 
영대는 열흘 전 이탈리아로 떠났습니다. 이탈리아의 역사와 독일의 예술 분야를 탐색하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랍니다.
 
그제 아들은 성 프란치스코의 고향인 아시시(Assisi)에 도착해 "진짜 성지에 왔어요!"라고 그곳의 감동을 영상과 함께 전해왔습니다.

 
 
부유한 상인 가정의 부족함 없는 아들이었던 조반니 베르나르도네는 군인으로서 전쟁에 참가하기 위해 가던 길에 영적 환시를 경험하고 길거리에서 한센병 환자와 조우한 후 회한과 깨달음을 얻어 세속적인 모든 삶을 포기하고 거리에서 설교합니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며 동물과 식물을 비롯한 하나님의 모든 피존물을 동등하게 품어 안았던 그가 곧 성 프란치스코입니다.

성직자가 아닌 이들이 서로 형제라 불렀던 이유로 탄생된 '작은 형제회'와 노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거나 탁발에 의존한 연유로 생겨난 '탁발수도회'가 성 프란치스코의 청빈한 수도생활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지적, 지체장애인들을 모아 그들을 돌보며 굶기지 않기 위해 구걸을 해야 했던 초기 우총평 원장님의 모습은 바로 성 프란치스코의 삶에 뿌리를 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의 밤, 아들이 보내온 운무에 휩싸인 아시시의 모습을 보면서 성 프란치스코의 청빈을 생각합니다.

 
A prayer of St. Francis of Assisi: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도

 
Lord, make me an instrument of your peace;
where there is hatred, let me sow love;
where there is injury, pardon;
where there is discord, union;
where there is doubt, faith;
where there is despair, hope;
where there is darkness, light;
and where there is sadness, joy.
 
O Divine Master,
grant that I may not so much seek
to be consoled, as to console;
to be understood, as to understand;
to be loved, as to love;
for it is in giving that we receive,
it is in pardoning that we are pardoned,
and it is in dying that we are born to eternal life.
Amen.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도
 
주님, 저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오 거룩하신 주님,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기를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기를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림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음이나이다.
아멘
 

 
지난 5월부터 100여 일 이상 분당 탄천에 나가 오리 가족을 관찰하고 기록했습니다. 작은 생명들이 전해준 감동적인 순간들을 소개합니다. - 기자 말

지난 5월 중순에 11마리의 새끼 청둥오리를 만난 후 삼일은 폭우가 계속 내렸다. 신기하게도 아침에는 그쳤다가 날이 저물면 새벽까지 들이붓곤 했다. 갓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가혹한 시련이라, 밤새 뒤척이다 날이 새면 탄천으로 나갔던 기억이 새롭다.
 
평소의 탄천은 아파트와 구름이 물에 비칠 정도로 잔잔히 흐르지만, 폭우 내린 뒤의 탄천은 황톳빛 물이 거친 소리를 내며 흐른다. 그 물 위의 새끼 오리들은 위태로워 보이기 그지없었지만, 유유히 거친 물을 오르내렸다. 오히려 거친 폭우를 뚫고 태어났기에 더 강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마리, 9마리... 사라지는 새끼들
 
갓 태어난 새끼 오리들이 어미의 구령에 줄 맞춰 폭우로 거칠어진 탄천을 오르내리는 모습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산책객들의 시선을 잡기에도 충분했다. '탄천은 매년 이렇게 새 생명이 태어나 자라고 그들이 또 새 생명을 잉태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관심이 없어 쳐다보지 않았을 때도.
 
그렇지만 자연에서 살아가기가 녹록지 않는다는 생각을 들게 한 사건이 종종 벌어졌다. 나의 탄천 산책은 보통 도로시(어미 오리)와 아이들을 찾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렇게 녀석들을 운 좋게 찾게 되면 새끼 오리들을 출석체크, 숫자를 세어보는 게 다음 순서다.
 
 
아이들이 뭉쳐 있으면 머리를 세기 무척 힘들다. 놀이터에 풀어놓은 유치원 아이들을 생각해보면 맞을 거다. 그래서 도로시가 아이들을 이끌고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가 정확히 셀 기회다. 어미 꽁지깃을 따라 줄 맞춰 따라서 가니까. 그때 사진을 찍어 확대해서 세어보는 게 가장 정확하다.
 
그렇게 첫날 세어본 아이들이 11마리. 이튿날도 11마리였다. 그런데 폭우 내린 마지막 날인 사흘째에는 아무리 세어도 10마리였다. 혹시 겹쳐 보여 그런가 싶어 아무리 확대를 해봐도 오리 부리는 10개였다.
 
새끼 오리들을 만나고 처음으로 자연이 무서워진 순간이었다. 그날 도로시는 아이들을 물가로 인도하진 않고 기슭 안쪽 물이 고인 웅덩이에 머물렀다. 물론 내가 관찰한 시점만 그랬겠지만, 왠지 계속 그랬을 것 같았다. 아직은 거칠게 흐르는 황톳빛 탄천은 새끼들에게 위험해 보였다.
 
그래도 남은 10마리라도 건강한 성체로 키워낸다면 훌륭한 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녀석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출석체크를 했다.
 
그렇지만 2주 차에 1마리를 더 잃어 9마리가 됐다. 녀석들에게 어떤 일이 생기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일이 생기는 건 확실했다. 맹금류가 날아들었나? 네 다리 달린 포식자들이 물고 갔나? 아니면 그냥 길을 잃었나.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눈으로 확인하진 못했기에 상상만 할 수밖에 없었다.

동화의 내막
 
   
 
그래도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커갔다. 탄천의 넉넉한 환경과 지혜로운 어미의 헌신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시 찍은 사진들을 보니 날이 갈수록 커가는 모습을 비교해볼 수 있다. 몸이 커가니 행동도 달라지는 듯했다. 어느덧 품성이 보인다고 할까? 먹이 활동을 할 때 어미와의 간격이 점점 벌어졌다. 물론 어미 곁에만 있는 녀석도 있었지만.
 
이동할 때도 어미와 떨어져서 이동하는 그룹이 생겨났다. 덕분에 먹이 활동 후 이동할 때 도로시가 아이들을 불러모으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예전에는 도로시가 움직이기만 하면 아이들은 알아서 이동했는데 이즈음부터는 도로시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야 겨우 모였다.
 
 
그러던 5주 차의 어느 날 충격적인 모습을 보았다. 그날 녀석들은 산책로에서 가까운 수초섬에 올라 쉬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도로시가 아이들을 깨우더니 이동할 준비를 시켰다. 녀석들이 일어나 기지개를 켜듯 날갯짓을 하는 사진을 보니 덩치가 어느덧 어미만 하다. 다만 날개깃이 덜 자란 모습만 다르다.
 
아이들은 도로시를 따라 물에 올라 수초를 뜯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직 섬에 남아있는 녀석이 있었다. 그 아이는 마치 잠이 덜 깬 모습으로 서 있었고. 어미가 재촉하자 힘겹게 물로 내려섰다. 마치 잠투정하는 아이처럼.
 
 
 
그런데 녀석의 모습이 이상했다. 나와의 거리가 약 5미터라 그 이상한 모습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녀석의 뒷덜미가 빨갰다. 쌍안경으로 보고 사진을 찍어 확대해서도 본 모습은 더 끔찍했다. 털이 뽑혀 상처가 나 피가 흥건했던 것. 누군가에게 뜯긴 것이 확실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래도 살아서 무리와 함께 있다는 것.
 
녀석은 영 불편해 보였다. 먹지도 않고 무리를 따라 천천히 이동했다. "저 상처에 물이 닿으면 안 될 텐데." 걱정이 들었다. 그리고, 녀석 곁에는 도로시가 계속 붙어 있었다. 녀석이 어미 곁으로 간 건지 어미가 새끼 옆으로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이 공격 당한 모습에서 탄천이, 자연이 다시 보였다. "보는 것처럼 아름다운 곳은 아니구나" 하는. 탄천에 오리들이 노니는 사진을 올리면 누군가 "동화 같아요"라는 얘기를 했었는데 동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그렇게 살아간다

그래도 녀석은 살아남았다. 그날 녀석은 무척 힘들어 보였지만 그다음 날에는 기슭 가에서 수초를 뜯으려 점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날이 가며 다른 형제들의 활동성과 비교하여도 뒤지지 않게 됐다. 비록 뒷덜미의 털은 빠진 채였지만 상처는 아물어 갔다.
 
 
덕분에 녀석은 눈에 띄었다. 뒷덜미가 시원하게 벗어졌으니 무리 안에 있어도 제일 먼저 눈에 띄었던 것. 그래서 이름을 붙여주었다. 깐돌이라는. 외모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그 모습과 활발한 모습을 보니 그 이름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이름을 붙여주니 자연스럽게 녀석을 먼저 챙겨보게 됐다. 뒷덜미 상처가 아직 빨갈 즈음에는 신경이 많이 쓰이기도 했고. 혹시나 감염되면 위험할 수 있으니까. 사람들은 연고만 바르면 될 상처가 동물들에게는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다.
 
그 며칠 후 새끼 오리 중 한 마리가 더 사라졌다. 매일의 루틴처럼 아이들을 세어보았는데 8마리만 있던 것. 혹시 깐돌이가? 쌍안경으로 이리저리 살펴보니 도로시 곁에 있는 새끼의 훤한 뒷덜미가 보였다.
 
당시 새끼 오리들은 어미만큼이나 덩치가 커져서 더는 사라지는 아이들이 없지 않을까 싶었을 때 생긴 사고였다. 그 며칠 전 깐돌이가 당한 사고만큼이나 충격이었다. 그래도 깐돌이를 비롯한 녀석들은 꿋꿋이 커갔다. 도로시는 여전히 헌신적이었고.
 
그렇게 8마리가 도로시 곁에 남았다. 이 아이들은 여름이 지나며 가을이 되며 하나둘씩 어미의 곁을 떠났다. 멀리 떠난 건 아니라 도로시 주위를 맴돌았다. 그렇게 보였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난 그 아이들이 하늘을 나는 첫 순간을 보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 날고 있었다. 그렇게 녀석들은 자라서 탄천의 다음 세대를 준비하고 있다.
1심에 이어 항소심(2심)에서도 '불법 지분쪼개기'로 동의율을 맞추었던 오류시장정비사업 추진계획에 대한 서울시 승인처분이 무효라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제6행정부(부장판사 박형남)는 지난19일(수) 오후2시 판결을 통해 피고보조자격으로 소송에 참가했던 구로구청과 오류시장정비사업조합이 제기했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오류시장정비사업 추진계획에 대한 서울시 승인 무효 확인 선고는 이날 서울고법 제6행정부에서 판결하기로 돼있던 30여 건 중 6번째에 위치해 있었다. 재판부는 이날 "피고보조참가인들(구로구청장외 1인)의 항소를 모두 기각한다"며 "항소비용은 피고보조참가인들이 부담한다"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구청등 피고보조참가인들의 항소기각 사유에 대해 "토지등 소유자 총수의 5분의 3이상의 동의를 받지 못한 중대 명백한 하자가 존재하므로 무효"라고 밝혔다. 오류시장정비사업추진계획은 총 토지등소유자수 28명중 16명이 동의해 동의율이 약 57.1%로 60%인 법정동의율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오류시장정비사업추진계획 승인요건인 동의율 중 "총토지등소유자의 동의율이 충족하지 못해 승인처분이 무효임을 확인한 이상 토지면적의 5분의3이상에 해당하는 토지소유자의 동의요건의 미충족여부는 더 나아가 살피지 아니한다"며 면적동의율과 관련한 부분에 대한 판단은 하지 않았다. 원고인 오류시장주민대책위측은 이 사건 승인처분이 '토지면적의 5분의 3이상에 해당하는 토지소유자의 동의'요건도 충족하지 못했다고 주장해왔다.

1심법원이던 서울행정법원의 제11부도 지난 7월13일 1심 선고에서 오류시장정비사업추진계획에 대한 서울시 승인처분 무효확인을 위해 서울시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던 김영동 성원떡집대표등 오류시장의 토지등소유자인 주민상인 6명(원고측)에게 승소판결을 내린바 있다. 1심 재판부는 오류시장 집합건물내 3평짜리 점포를 9명앞으로 지분쪼개기한 것은 불법이며, 여기서 나온 무자격자들의 동의권 행사로 맞춰진 동의율은 법적 동의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본래 오류시장 주민상인들이 소송을 낸 상대는 승인권자인 서울시장이라 주 피고는 서울시장 1인이었으나, 오류시장정비사업추진계획에 대한 서울시 승인을 추천했던 구로구청장과 오류시장정비사업조합이 피고보조로 1심 소송에 참가하면서 오류시장 주민상인들은 3개 기관과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왔고, 1심에서 승소판결을 받았다. 

1심결과에 대해 주 피고였던 서울시는 항소실익이 없다며 지난 8월초 항소포기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그러나 피고보조로 참가했던 구로구청과 오류시장정비사업조합은 항소를 해, 4개월 가까이 오류시장주민상인측(원고)과 구로구청·시장정비조합(피고보조참가인)간의 제2라운드 법적공방이 이어졌다.

원고측인 전통시장활성화를 위한 오류시장주민상인대책위 서효숙 위원장은 지난 10여년동안 오류시장 상인으로서 겪어 온 수난과 시장정비사업추진과정의 고통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라 판결을 앞두고 여러차례나 '울컥울컥'했었다고 판결을 앞둔 당시의 심정을 털어놓은뒤 "판사님의 판결을 들으면서 역시 정의는 살아있고, 법은 공정하구나라고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서 위원장은 "그래서 더욱 오류시장 상인과 오류동권역 주민, 오류동 변화발전을 위한 상생적인 오류시장 발전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더 큰 책임감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한편 오류시장정비사업추진계획은 50년 전통시장인 오류시장(오류1동)과 인접지역 4,894㎡에 지상 21층의 아파트형 주상복합건물을 건립한다는 계획으로 2016년 1월18일 오류시장정비사업추진위원회가 구로구청에 서울시 승인추천을 신청했다.

이 시장정비사업추진계획 신청은 10여 년 전 오류시장 대지분을 공매로 인수한 장모씨가 시장정비사업을 한다며 임차상인들을 시장에서 내몰고 30명가량의 점주와 인접한 40억대건물주 동의서류를 받아 그들의 재산을 은행에 넘기고 거액대출을 받아 도망쳤다가 구속된 이후 두번째 추진된 것이다.

그러나 주민과 상인들의 오랜 기대와 달리 오류시장정비사업추진계획에는 지역상권과 전통시장활성화를 위한 정비사업이라는 데 전통시장계획은 어디에도 담겨있지 않고, 추진계획에 대한 구청추천과 서울시승인에 필요한 법적 동의율을 맞추기 위한 '지분쪼개기' '도로쪼개기' 등 전방위적인 불법 탈법적 '쪼개기'등이 이루어졌음이 드러났다.

또 시장구성원들과의 기본적 협의나 논의조차 없는 일방적 절차 강행 등도 지난 2년 가까이 오류시장시장정비사업추진을 둘러싼 논란과 불신의 중심에 놓여있었다.

시장정비사업추진과정의 3평점포 지분쪼개기및 동의율조작여부 등에 대한 시장 주민과 상인들의 거듭 된 확인과 검토 요청에도 구로구청 지역경제과는 '문제없다'는 입장으로 일관했고, 서울시는 구청 추천을 받아 오류시장정비사업추진계획안에 대해 지난 2017년 2월 23일자로 승인고시했다.

이런 과정에서 오류시장 주민대책위원회는 2월초 주민서명을 받아 서울시시민감사옴부즈만위원회에 주민감사를 청구했고, 구로구청과 오류시장정비사업추진과정 등에 대한 주민감사결과는 (5월 26일발표)를 통해 3평 9명앞 지분쪼개기는 '위법'이며 동의율산정 등에 대한 재검토를 권고한다.

그러나 구로구청은 서울시 주민감사결과에 대해 법무부 등에 유권해석을 진행중이라면서 '3평점포 9명앞 쪼개기'와 관련된 인물들이 조합장등 임원으로 선출된 오류시장정비사업조합 신청에 대해 조합인가를 내주는 등 시장정비사업 절차를 계속적으로 강행했다.

이에 보다 못한 오류시장구성원들은 지난해 8월 법원에 승인무효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며칠 전에 40대 남성분을 처음 만나는 자리가 있었다. 그 자리에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그분의 자제도 왔다. 난 당연히 처음 봤으니 존댓말을 썼고,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나 싶다가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처음 본 사람이거나 친하지 않은 경우 반드시 존댓말을 쓰고자 하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와 달리 많은 사람들은 처음 본 사람을 향해 어떤 호칭을 쓸지, 존댓말을 쓸지 반말을 쓸지 고민을 한다. 노랫말만 봐도 그렇다. 015B의 1991년 노래인 <이젠 안녕>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우리 처음 만났던 어색했던 그 표정 속에 서로 말 놓기가 어려워 망설였지만."

고민하지 마세요, 그냥 존댓말 쓰세요

아니, 고민이라도 하면 다행이지. 많은 이들은 처음 본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반말을 한다. 특히 자기보다 어리거나 직책이 낮거나 여성일 경우,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놓곤 했다. 사람을 대하는 알바를 했던 내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성인 남성임에도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수 없이 반말을 들었다. 처음에는 손님들은 다 이런가보다 싶다가도, 나에게 존댓말을 쓰는 중년의 신사를 몇 차례 보면서 '이건 의지의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이후에는 반말을 하는 손님에게 '반말하지 말고 말씀하세요'라고 반격 아닌 반격을 했었는데, 그때마다 이런 대답을 들었다.

"내가 너 나이대의 손자(혹은 아들딸)가 있어 이 녀석아."
"아니 반말할 수도 있지!"


'반말할 수도 있다'라... 당신들에게 누가 반말할 권리를 주었나. 반말하지 말라고 항의할 때마다 나 같은 손자가 있다는 말을 하는 어르신들을 몇 분을 봤는지 이젠 기억도 안 날 지경이다. 그러니까 이들에겐 자기보다 나이가 적으면 당연히 반말을 해도 된다는 사고방식이 있는 것이다. 사실 60~70대 되는 분들이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데, 40~50대조차도 스스럼없이 반말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튼 초면인 경우에 반말을 할지 안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이나, 보자마자 다짜고짜 반말을 하는 사람들이나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는 반말을 해도 된다는 암묵적인 인식이 퍼져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왜 그래야 하는 걸까? 나는 지금보다 사람들이 더 조심성 있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남을 대할 때 너무 조심성이 없다. 존댓말 하는 것은 상대방을 존중하기 위한 가장 손쉽지만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 초면에 반말하는 사람이 어떤 방법이건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대화를 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적어도 내겐 어렵다.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그러니까 지위고하와 성별, 나이를 막론하고 그냥 처음 봤으면 존댓말 쓰는 문화가 정착됐으면 좋겠다. '왜 반말이야'라며 싸움을 시작하는 경우는 있어도 '왜 존댓말이세요'라며 싸움을 시작할 수 있을까? 결국에는 이것은 갑질 문제와도 연결되는 일이다. 사람들은 신문을 장식하는 '높으신 분들'의 갑질에는 분노하면서, 왜 일상에서는 쉽게 반말을 하는 걸까? 그건 갑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견과류 간식을 봉지째로 담지 않고 제공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비행기를 회항시킨 일보다는 '반말 정도는 할 수 있지 내가 너 나이만 한 자식이 있는데'라면서 당당하게 구는 사람들이 적어도 내게는 더 위협적이고 모욕적이며 문제다. 그들 중 일부는 아마 신문을 장식했던 '땅콩 회항' 사건의 가해자를 욕하지 않았을까.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최근 불거진 국회의원 갑질 논란 때문이다. 사건의 전말은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지난 20일 김포공항 보안 요원 김모씨가 더불어민주당 김정호 의원에게 신분증을 요구했다가 '이 새X 근무 똑바로 안 서네'라고 욕하고 고함을 쳤다는 것이다. 

22일 김 의원은 입장문을 내 욕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필요 이상의 요구를 한다고 보안요원에게 항의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조선일보>의 24일 보도에 따르면 김씨는 신분증의 위변조 여부를 확인해야 하니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 달라고 요구했고, 이에 김 의원은 "나는 꺼내 본 적 없으니 규정을 찾아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22일 입장문에서 김씨의 신분증 제시 요구를 '갑질'이라고 규정했다. 

사실 나는 이 일을 보면서 많이 의아했던 게, 실제로 김 의원이 여태 신분증을 제시해본 적이 없을 수는 있는데 왜 반말로 보안요원을 대하면서 '공사 사장한테 전화하라'고 하느냔 말이다. 그러니까 설사 보안요원이 실수했다 하더라도 김정호 의원은 적어도 국회의원이라면 더욱 더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한 것이다. 공항공사의 협력사 직원이면 국회의원이 반말을 해도 되는 걸까? 

애초에 나는 김 의원이 언성을 높여 반말을 하지 않으면서 보안요원과 규정 문제를 두고 '대화'를 했다면 이렇게까지 문제가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쯤 되면 반말은 모든 갈등의 시작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현재 김 의원의 페이스북 게시물에는 많은 누리꾼의 비판이 가해지고 있는 중이다. 

나는 김 의원이 문제를 너무 어렵게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냥, 협력사 직원이건, 본인의 지지자건, 심지어 지지자가 아니건, 어떤 상황에서도 말을 놓으면서 언성을 높이지 않으면 될 일이다. 그는 국회의원 전에 이 사회의 구성원이니까 말이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