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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주]비아트론, 저평가 진단 '강세'
비아트론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21일 오전 9시 7분 현재 비아트론은 전날보다 550원(4.10%) 오른 1만3950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틀

3월 중순 첫 번째 통풍 발작이 일어나고 두 달이 지났습니다. 첫 번째 발작 이후 3주 만에 두 번째 발작이 있었지만 주사를 맞고 발작기 약을 먹는 것으로 힘들지 않게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첫 번째 발작 후 두 달이 지난 주에 찾아 온 세 번째 발작은 아주 고통스러웠습니다.

통풍 발작으로 발이 퉁퉁 붓고 걸어 다닐 수 없을 만큼 아픈 것도 육체적인 고통이었지만, 두 달 만에 세 번째 통풍 발작이 일어났다는 것과 앞으로 이렇게 자주 발작이 일어나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겠다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였습니다. 

통풍 발작이 처음 일어난 지난 3월 중순부터 요산 수치를 낮춰주는 약을 매일 먹고 있습니다. 어느새 2달이 지났지만 완치의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습니다. 병원에서 처방해주는 통풍약은 크게 두 가지 종류입니다. 

통풍 발작이 왔을 때 먹는 응급약과 발작기가 지난 후에 먹는 잠복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통풍 발작이 왔을 때 먹는 약은 보통 3일 정도 약을 처방해줍니다. 통증이 심한 경우에는 주사를 처방해주기도 합니다. 

                    


발작기가 지나고 안정기에 먹는 약은 2주 이상씩 처방해줍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발작이후에 처방 받은 안정기 약은 처음엔 하루 세 번 복용하다가 피검사를 해보고 요산 수치가 올라가지 않으면 하루 두 번, 한 번으로 복용 횟수를 줄였습니다. 

지난 주 세 번째 발작이 왔을 때, 발작기 복용약 3일치를 받아왔는데 통증이 가라앉고 붓기가 가라 앉으면 안정기 약으로 바꾸라고 하여,  발작 후 만 이틀이 지나고부터 안정기 약을 하루 한 번씩 먹고 있습니다. 

원인 모르는 증상 치료... 약 먹어도 요산수치 오르락 내리락

처음엔 급작스런 통증 때문에 전혀 알아채지 못했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통풍 증상의 변화를 스스로 알아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통증만 알아챘지만 통증 부위에 나타나는 자각 증상을 잘 살펴보니 굳이 피검사를 해보지 않아도 요산 수치가 높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겠더군요. 

발이 화끈 거리면서 미세한 따끔 거림이나 저릿한 느낌이 오면 요산 수치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 날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받아보면 어김없이 요산 수치가 정상을 넘어섭니다. 처음 통풍 발작이 왔을 때는 요산수치가 10이 넘어 갔었지만, 화끈거림, 따끔거림, 저릿한 느낌이 왔을 때는 정상 수치인 7을 살짝 넘어서더군요.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하루 한 번씩 약을 꾸준히 먹고 있는데도 좀 처럼 요산 수치가 정상으로 안정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통풍 발작 이후 지난 한 달 반 동안 맥주는 물론이고 어떤 술도 마시지 않았으며 소, 돼지, 닭 같은 육류도 먹지 않고 있습니다. 등푸른 생선은 물론이고 생선의 알이나 내장 등 요산 수치를 높인다는 음식은 모두 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좀처럼 요산수치가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처음 찾아간 정형외과 병원 진료는 피검사를 해보고 요산 수치가 높으면 통풍 약을 처방해주고, 요산 수치가 내려가면 약을 줄여주는 것이 전부입니다. 예컨대 증상을 완화시켜 주기는 하는데 원인을 알기 위한 검사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사실 저는 정확히 원인도  모르면서 통풍 발작이 일어나고 요산 수치가 높으면 의사가 처방해주는 요산 생성을 억제시키는 약을 먹고 있는 셈입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고 국내에서 가장 회원이 많다고 하는 '통풍 환자 카페'를 가봐도 원인을 속시원하게 밝혀놓은 곳은 없었습니다. 

통풍 환자 카페에는 요산 측정하는 기계를 구입하여 매일 수치를 측정하면서 좀더 정밀한 식이요법을 권하고 있었고, 여러 가지 다양한 민간요법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몸 속에 생긴 요산이 제대로 배출되지 않아 축적되어서 통증이 생기는 것이 통풍"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의사의 진료와 인터넷에서 찾아 본 것 통풍에 대한 여러 정보를 종합해봐도 요산이 배출되지 않는 까닭을 속 시원히 알 수는 없었습니다. 

통풍 환자 지인은 많은데 완치했다는 사람 없어

오마이뉴스에 통풍일기를 쓰고나서 주변 지인들로부터 "나도 통풍을 앓고 있었다", "내가 아는 OO도 통풍을 앓고 있더라" 하는 이야기를 엄청나게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누구에게서도 "통풍이 완전히 나았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오마이뉴스 기사를 보고 연락을 해 온 어떤 분들은 "통풍을 완전히 낫게 해 줄 수 있다, 통풍은 알고 보면 그리 힘든 병이 아니다, 간단하게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시고, 택배로 자신이 만든 특효약을 보내 온 분도 있습니다만, 가족들과 의논하여 돌려보냈습니다. 

처음 갔던 정형외과에서 가벼운 두 번째 발작이 지나가고 "3주만 더 약을 먹어보고 요산수치가 정상을 유지하면 하루 한 번 먹는 약을 끊어도 될 것 같다"고 해서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발작 이후 3주 만에 피검사를 했더니 요산수치가 정상보다 조금 더 높게 나왔고, 피 검사 이틀 후에는 세 번째 통풍발작이 찾아오니 만성 '불치병'으로 평생 함께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마음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통풍에 걸린 후로 오마이뉴스와 블로그에 기사를 쓰기 위애 여러 자료를 찾아보면서 통풍 환자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페이스북에 링크를 걸어 둔 오마이뉴스 기사를 보고 많은 분들이 걱정과 위로를 해주었는데, 장문의 댓글을 보내 주신 한의사도 있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잘 아는 분이라 며칠 후 한의원을 찾아갔더니, 긴 시간 동안 통풍의 원인과 치료 방법에 관하여 자세히 알려주었습니다. 

한의사와 상담을 하고나서 일단 한방치료와 병원치료를 병행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한의사가 진단한 저의 통풍은 과도한 '운동'이 첫 번째 원인이라고 하더군요. 보통 통풍의 원인으로 과한 음주와 동물성 지취를 원인으로 이야기 하지만 저의 경우는 과한 운동과 과로가 원인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음 기사는 한방 치료 경험담으로 이어집니다.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상류' 사람이다. '하류' 사람들과 안 어울리는 건 아니지만 자주 어울리지는 않는다. 나는 하류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체질적으로 상류인간이다. 

하류와는 달리 상류에서는 눈만 뜨면 산과 숲이요, 맑은 개울물과 깨끗한 공기가 넘쳐난다. 밤이면 별들이 쏟아진다. 미세먼지도 훨씬 덜하다. 상류는 사람의 몸과 기분을 쾌적하게 한다. 새벽에 일어나서 마당에 나서면 이보다 더한 축복이 있으랴 싶다. 

상류의 산골 새벽은 여린 배추 속잎 같은 연둣빛 이미지다. 밭에 호미를 들고 나가면 점점 투명하게 날이 맑아 온다. 날은 '밝아'오는 게 아니라 '맑아'온다는 것을 상류 사람만이 안다. 나는 체질적으로 이런 일상이 맞다. 천부적인 상류인간인 것이다. 해발 600 고지가 넘는 곳이니 극 상류인간.

상류 사람에게도 시련이 없는 건 아니다. 도대체 어찌어찌하여 이곳까지 이런 쓰레기들이 몰려오는지 알 길이 없다. 겨우내 반쯤 흙에 묻히거나 얼어 붙어 숨죽이고 있다가 봄이 되어 세상이 가벼워지자 쓰레기들이 준동을 한다. 여기저기 눈에 띄기 시작하다가 바람이 불면 위아래 없이 구르기도 하고 날리기도 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흔하고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검정비닐이다. 상점에서 종량제 폴리프로필렌 마대(일명 피피PP 마대)를 3000원씩 두 개를 사 와서 집 앞 도로 아래와 계곡 기슭을 탐지견처럼 샅샅이 훑었다. 한나절이면 될 줄 알았는데 이틀이 걸렸다. 마대 두 개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준비한 마대 두 개는 금방 차 버리고 일반 마대도 대여섯 개나 더 채워졌다.


검정비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웬걸 파란비닐, 빨강비닐, 노랑비닐도 있었다. 커다란 파란비닐 봉투에는 천안함을 두 쪽 냈다는 북한 어뢰추진체에 쓰여 있던 글씨체로 '강동구청'이라는 글씨가 찍혀 있었다. 강동구청이면 여기서 얼마냐. 500리 길을 달려 참 멀리도 왔다. 

어떤 비닐봉지는 꽁꽁 묶여 있었는데 그 속에는 그야말로 백화점이었다. 삼겹살 살점이 말라붙은 은박지 접시가 있었고 양말 한 짝, 소주병, 고등어 굽는 석쇠, 참치 캔이 들어 있었다. 우산살이 다 꺾인 우산은 왜 비닐 속에 있어야 할까? 실패에 꽤 두툼하게 감긴 낚싯줄도 있었다. 장갑을 꼈지만 깨진 유리병을 담다가 내 손끝에 상처도 났다.

이 낚싯줄을 보고는 떠오르는 게 있어 집에 가서 낚싯대처럼 쭉쭉 뻗어나가는 로프식 고지톱(높은 나뭇가지를 자르는 톱)을 가져와서 비탈길 아래로 굴러 가 걸려있는 쓰레기를 뽑기인형 게임하듯이 건져 올렸다. 콕 찍어서 살살 당겨 올리면 아슬아슬하게 달려서 온다. 제법 재미있다.

쓰레기 탐색작업이 폭포가 있는 곳까지 진출했는데 그곳은 참 가관이었다. 그 비싼 북어 한 마리가 제상에 놓여 있었고 막걸리 병이나 일회용 접시들은 바로 옆 바위 틈새에 쌓아 태워버렸는데 타다만 잔해들이 마구 흩어져 있었다. 누가 이랬을까. 무슨 액을 막고 무슨 복을 빌러 와서는 이토록 계곡을 어지럽혔을까. 신령님이 이런 경우에도 복을 내려줄까? 

읍내에서 농기계와 4륜 트럭을 몰고 와서 밭뙈기 농사를 짓는 사람이 지나가다가 나를 보고는 "어이~ 거기서 뭐해?" 하면서 차를 세웠다. 그렇다. 저 사람이 마구 뿌려대는 제초제 병과 농약 봉지도 여럿 주워서 따로 모아 놨었다. 그는 내가 무슨 약초 캐는 줄 알았는지 차에서 내려 물끄러미 비탈길 아래로 내려다 보길래 쓰레기 치우는 중이라고 했다. 
낙심천만이라는 표정을 짓는 그는 "군청에 얘기하면 될 텐데 왜 그려~ "하고는 휭 지나갔다.



맞다. 군청에 얘기하면 된다. 요즘은 군청 공무원이 옛날 머슴만도 못한지 눈이 와도 군청, 길이 패여도 군청, 비가 와서 토사가 나도 군청, 옆집 강아지가 병아리를 물어 죽여도 군청을 부른다. 면사무소는 아랫 사람들이라 높은 데부터 부르는 건지 알수가 없다. 언젠가는 동네 사람 하나가 술 먹고 트럭을 길에 세워둔 채 주정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직접 해결하지 않고 119로 전화하는 걸 봤다. 암. 나만이라도 참자. 군청 좀 쉬게 해야지. 

쓰레기를 집 앞으로 옮겨서 다 부려놓고 종류별로 분리수거를 하는데 이장님이 애 쓴다면서 면사무소에서 100리터짜리 볼그레한 마대 두 개를 갖다 주셨다. 어림도 없어서 다시 읍내 상점에 나가서 피피 마대 두 개를 6000원 주고 더 사왔다. 이 정도는 해야 상류 사람답지 않겠는가. 상류층이 도덕적 책무를 다 한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돈 많고 권세있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알게 모르게 혜택을 입는 모든 사람들이 실쳔해야 할 덕목이리라.

날마다 떠올라 주는 고마운 태양. 공짜로 마실 수 있는 공기. 햇살과 단비. 꼭지만 틀면 나오는 물. 잘 딲여진 도로. 색색가지로 피어나는 꽃들. 이들은 내 노력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이 모두로부터 나는 혜택을 입는다. 특권을 누린다. 내 도덕적 책무를 더 찾아봐야 할 이유다.


주역을 연구하는 그 친구는 2014년 12월, 멀지 않아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뜬금없는 말이라고 흘려들었던 이 예언은 시기는 좀 늦춰졌지만 제대로 맞아떨어져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월세를 살고 있던 저의 사주를 풀어 보며 "너는 집을 사겠다"고 예언하기에 그냥 피식 웃고 말았지만, 그 뒤 얼마 되지 않는 돈을 탈탈 털고 은행에서 엄청난 돈을 빌려 저렴한 아파트를 구입하게 됐습니다.

 

이 친구가 지난해 가을 또 다시 큼직한 예언 하나를 던졌습니다.


"내년(2018년) 2월쯤에는 우리가 북한에 뭘 퍼준다느니 해서 문재인 정부가 크게 곤욕을 치른다. 하지만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남북관계가 빠른 속도로 호전되면서 통일에 버금가는 상황까지 올 것이다. 돈 있으면 남북경협 관련 주식을 사라."

 

세상의 기운이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고 이 친구는 단지 그 흐름을 감지하는 것이겠지만, 어쨌든 이 친구의 말은 하나하나 맞아 들어갔습니다.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린 올해 2월에는 '평양올림픽'이니 해서 보수 세력이 엄청나게 몰아붙였지만,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와 함께 남북관계는 제가 할 수 있는 상상, 그 이상의 속도로 진전되며 현대사의 변곡점을 만들고 있습니다.(요 근래 며칠 남북 간, 북미 간에 미묘한 긴장이 흐르고 있지만, 이 친구가 또 예측을 했습니다. 5월 말쯤이면 이 또한 풀릴 것이라고 말이지요. 그래서 조바심을 좀 누그러뜨립니다.)

 

 

경상북도와 강원도의 경계를 이루는 석개재 고갯마루에서 태백시 통리역을 향해 산행을 시작합니다. 오늘 산행할 거리는 거의 20㎞입니다. 지난 구간 산행 때 15㎞ 넘는 거리는 이젠 무리다, 15㎞ 넘는 산행은 하지 말자, 이렇게 다짐했지만 오늘 코스도 중간에 끊을 만한 적당한 지점이 없어 좀 힘든 산행을 이어 갑니다.

 

힘든 산행을 풀어갈 단 한 가지 방법은 천천히 가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럴 것 같습니다. 천천히,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 나가면 결코 이루지 못할 일은 없을 것 같은 기분 좋은 느낌이 듭니다.

 

산행의 고단함, 꽃구경으로 달래며

 

오늘 산행의 고단함을 잊게 해 주는 커다란 즐거움이 있으니 그것은 꽃구경입니다. 인근 백두대간의 금대봉, 대덕산이 '야생화 천국'이니 '천상의 화원'이니 하는 이름이 붙을 만큼 봄이면 많은 꽃이 피어나지만, 거기서 그리 멀지 않은 오늘의 석개재~면산~통리역 구간도 울긋불긋 피어난 갖가지 야생화로 꽃밭을 이뤘습니다.

 

 

'꽃밭'이라는 낱말이 딱 들어맞을 만큼 너른 밭을 이루며 피어난 꽃은 피나물입니다. 밤하늘에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을 쫙 뿌려 놓은 듯한 은하수처럼 어두운 숲속에는 노랗게 반짝이는 피나물이 끝없이 펼쳐집니다. 한 가지 꽃이 이렇게 널따랗게 펼쳐진 광경을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눈이 호사를 누린다고 하는데 호사도 이런 호사가 있을까 싶습니다. 눈이 아득해지고 가슴은 콩닥거립니다. 반쯤 벌어진 입 사이로 "허~~" 하고 감탄사가 툭 튀어나옵니다. 이게 바로 천상의 화원, 하늘나라 꽃밭입니다. 힘들게 산에 올랐다고 하지만 되돌려받는 혜택이 너무 큽니다.


피나물은 꽃이나 잎 모양이 양지꽃과 비슷하지만 스케일이 다릅니다. 양지꽃이 아기 손톱만 하다고 하면 피나물은 꽃 크기가 아기 손바닥만 하다고 보면 됩니다. 그렇게 큰 꽃이 숲속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피어나니 이런 장관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줄기를 자르면 끈적끈적한 황적색 즙이 나와서 피나물이라는 조금은 섬뜩한 이름을 얻었습니다. 우리 들꽃은 대개 순우리말 이름을 지니는데 이리저리 돌리지 않고 척척 이름을 붙여 버립니다.


 

'피'로 시작하지만 '나물' 또한 붙어 있으니 먹을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독성이 있으니 봄에 돋아나는 어린 순만 먹고, 그것도 잘 우려내어 독성을 없앤 뒤 먹어야 한답니다. 어지간하면 먹지 않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눈이 호사를 누린 다음에는 발이 또한 호사를 누립니다. 남자가 여자의 손을 지그시 잡고 "꽃길만 걷게 해 줄게"하며 작업에 들어갈 때의 그 꽃길을 저의 두 발이 걸어갑니다. 꽃밭 사이로 가느다란 길이 나 있고, 꽃 한 송이라도 밟을세라 저는 조심스레 발을 떼어 놓습니다.

 

바람꽃... 종류도 참 많다


회리바람꽃도 보입니다. '바람꽃'은 종류가 참 많은데, 꽃이나 잎 모양이 다 제각각입니다. 회리바람꽃은 연두색 꽃송이가 작고 수수하게 생겨 소박한 모습입니다. 꽃 피는 모습이 회오리치는 것 같아 '회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어디가 회오리치는 모습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홀아비바람꽃도 만나고 꿩의바람꽃도 만납니다. 홀아비바람꽃은 홀아비라는 낱말이 주는 구질구질한 느낌이 아니라 산뜻하고 깨끗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다만 뿌리에서 꽃대가 딱 하나 올라온다고 해서 '홀아비꽃대'라는 예쁜 꽃처럼 홀아비라는 접두어가 붙었을 뿐입니다. 꿩의 바람꽃은 화사하게 피어난 꽃이 꿩의 어떤 모습을 닮아서 그런 이름을 얻었겠지만, 꿩을 자세히 본 적이 없으니 어떻게 닮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벌깨덩굴, 둥굴레, 홀아비꽃대, 구슬붕이, 얼레지, 노랑무늬붓꽃, 쥐오줌풀, 왜현호색… 꽃향기에 취한 채 꽃길을 걸어갑니다. 눈은 어질어질, 코는 벌름벌름, 다리는 비틀비틀…….


그러다가 까만 딱정벌레 한 마리를 만납니다. 이놈이 뭘 물고 갑니다. 그 자리에 앉아 들여다 보니 콩알만한 산짐승 똥 한 개를 물고 뒷걸음질 치며 갑니다. 고라니 똥이나 뭐 그런 것 같습니다. 소똥을 굴리며 가는 게 아니니 소똥구리는 아닐 것 같은데 인상착의는 소똥구리와 비슷합니다. 혹시 소똥이 없어진 마을을 떠나(사료 먹인 소의 똥은 소똥구리가 먹을 수 없다 하니) 산으로 이주한 변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잡념처럼 해 봅니다.

 

 

똥 한 개를 물고 열심히 옮기던 이놈은 침입자가 가까이 있음을 느꼈는지 똥을 물고는 나무토막 아래로 숨어 버립니다(산행 뒤 포탈에서 검색을 해 보니 이놈은 소똥구리의 친척으로 산속에서 고라니나 산양 같은 짐승의 똥을 먹고 사는 애기뿔소똥구리인 듯합니다).

 

소똥구리의 친척도 만나고

 

몸을 일으켜 가던 길을 다시 걸어갑니다. 인기척을 느낀 고라니가 도망가는 소리가 숲속을 흔듭니다. 남한에서는 오지 중의 오지에 속하는 이곳에는 표범이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야생동물 지킴이가 10년 전 이곳에서 표범을 목격했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표범… 무섭기는 하겠지만 표범도 사람이 무서울 것이라고 위안을 삼아 봅니다. 더욱이 오늘은 산행 팀도 만나고, 나물 캐러 온 일행도 만나고 했으니 표범이 알아서 멀리 피했을 것입니다.

 

삼척 쪽에서 보면 '멀리 있는 산'이어서 '먼 산'이었다가 아무 맥락도 없이 '면산'으로 바뀐 산봉우리에 오릅니다. 아마도 일제강점기 때 지명을 한자로 바꿔 버리면서 그렇게 된 게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먼'이라는 한자는 없으니까요.

 

 

 

면산을 지나 구랄산에 오릅니다. 봉우리 안내판에는 심마니들이 쉬어 가던 굴이 많아서 '굴알산'이었다가 발음하기 쉽게 '구랄산'으로 바뀌었다 하는데 '구라'가 아닌지 의심해 봅니다.


그리고 좀 색다른 추측을 해 봅니다. 면산에서 구랄산을 바라보면 구랄산은 불알 두 쪽이 나란히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봉우리 두 개가 꼭 남자 거기처럼 보이는 것이지요. 그래서 '불알산'이라고 직설적으로 부르다가(우리 선인들은 직설법을 좋아했습니다) 후세에 오면서 이름이 좀 그렇네 어쩌구 하면서 비슷한 듯 다른 구랄산으로 바꿔 버린 게 아닐까 하는 나름 합리적인 추론도 해 봅니다.

 

 

토산령, 한개고개, 고비덕재… 고개도 여럿 지나갑니다. 모든 고갯길이 서쪽 태백시 쪽으로는 완만하지만 동쪽 삼척시 쪽으로는 급하기 짝이 없습니다. 소금, 생선 따위를 지고 이고 삼척 쪽에서 올라오며 땀깨나 눈물깨나 흘렸을 선인들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땅속으로 터널이 뚫려 이제는 영동선 기차가 다니지 않는 통리역 옛 역사 앞을 지나며 오늘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 낙동정맥 26구간 종주

- 날짜 / 2018년 5월 5일 (토)

- 위치 / 경상북도 봉화군, 강원도 삼척시, 태백시

- 날씨 / 오전에 맑다가 오후에 흐렸고, 몹시 거센 바람이 거친 소리를 내며 종일 산을 휩쓸고 다녔습니다.

- 산행 거리 / 20㎞

- 소요 시간 / 9시간 10분

- 산행 코스(북진) / 석개재 → 1010봉 → 면산 → 구랄산 → 토산령 → 한개고개 → 육백지맥 분기점 → 백병산 갈림길 → 고비덕재 → 면안등재 → 옛 통리역

- 동행 / 이번에도 산행 거리가 길어 아내 없이 혼자 산행해야 했습니다.

 

며칠 전 한 모임에 나가 저녁을 먹었습니다. 모두 여섯이 모였는데 그중 좌장격인 선배 한 분이 신나서 목청을 높였습니다. 식사 시간 내내…… 다른 후배들은 말할 기회를 좀처럼 얻지 못했습니다. 몹시 불편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새로이 마음을 먹었습니다.

 

결심 26 / 말을 많이 듣자. 아내와 아이들, 부모님, 친구들, 선후배, 회사 직원들… 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자. 나는 말을 좀 줄이자.


빙수가게를 개업한 언니와 형부를 축하해 주기 위해 고등학생 처제가 보낸 개업 축하 화분의 문구가 주변 사람들에게 흐뭇한 미소를 짓게 했다.


어린 처제가 보낸 축하 화분에는 "아직도 형부 등골이 부족하다", 형부 등골 브레이커 여고생 처제가"라고 적혀있다.


적은 용돈으로 축하화분을 보내며 은연 중에 귀여운 협박성 문구를 적어보낸 어린 처제가 형부는 사랑스럽기만 하다.


이를 본 주민들은 "형부 돈많이 벌어야 할듯", "용돈 안 줄 수가 없겠네" 등의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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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걸 이렇게 많이 사세요?"

"딸도 주고 ....(며느리도 주고 혼자말로 들리는 둥 마는 둥)"

"그러시구나~~"


채소가게 여주인이 내가 김칫거리를 잔뜩 사니 하는 말이다. '딸도 주고'의 뒷말은 '며느리도 주고 싶어서'인데 그 말이 자신 있게 나오지 않았다. 며칠 전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나서다.


어느새 묵은 김치보다 햇김치가 입맛을 돋우는 요즘. 얼마 전 처음으로 햇김치를 맛보기로 조금 해서 먹으니 묵은지에는 손이 가지 않는다. 입맛을 잃어가는 요즘 햇김치는 입맛을 당기게 한다.


얼갈이와 열무는 소금에 절이면 생각만큼 많지가 않기도 하고 생각 같아서는 딸도 주고 며느리도 주고 싶은 마음에 넉넉히 산 것이 사실이다.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나면서도 많이 샀던 이유는 그래도 며느리도 주고 싶은 마음이 커서다.


하지만 며칠 전 친구가 했던 말이 김치를 다하도록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친구의 말에 의하면, 김치찌개가 아주 맛있게 되었다고 한다. 마침 저녁을 먹을 무렵이고 맛있게 된 김치찌개를 보니 아들 생각이 나더란다. 그의 말에 나도 100%, 아니 그 이상 공감한다. 맛있게 된 음식을 보면 자식들이 생각나는 것은 세상 어떤 부모도 똑같을 것이다.


그 친구는 아들과 한 아파트 단지에서 동만 다르게 산다. 그래서 며느리한테 전화를 했단다. "김치찌개 맛있게 되어서 너희들 생각나는데 좀 갖다 주고 싶다"했더니 며느리가 처음 반응이 시원치 않다고 했다. 그래도 친구는 "내가 김치찌개만 주고 금세 나올 거야"해서 갖다 주었다고 한다. 그는  김치찌개만 건네주고 정말 5분도 안 있다가 나왔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씁쓸한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맛있게 잘 먹을 아들며느리를 생각하니 좋은 마음도 들었다고 한다.


그 말에도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만큼 고개가 끄덕여진다.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한 가지가 또 생각났다. 아들집에 반찬을 갖다 주고 싶으면 경비실에 맡기고 가는 시어머니를 좋아한다고. 그 외에도 이런 저런 떠도는 말은 많다. 내가 시어머니가 되어 보니 그런 말들이 아주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반찬 정도는 망설임 없이 갖다 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다.


딸아이네는 같은 단지에 살고 아들은 한 단지에는 살지는 않지만 담 하나를 두고 5분 거리에 살고 있다. 자식들이 가까이 사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다. 그렇다고 자주 가지는 않는다.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우린 우리 대로 사생활이 있으니 말이다. 그것은 그 친구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어느새 김치가 다 버무려졌다. 딸아이네 줄 것과 우리 것을 따로 담아 놨다. 며느리는 어떻게 할까? 그런대로 맛있게 되었으니 우리만 먹는 것보다 주고 싶은 마음은 더 간절했다. '햇김치가 맛있게 되었는데 어떻게 할까?' 하고 카카오톡에 올려볼까? 아님 내가 갖다 줄까?'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결정을 내렸다. 내 마음은 서운하지만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모르니 아무것도 하지 말자. 다음에 그 애들이 우리 집에 와서 김치를 먹어보고 맛있으니 조금 달라고 하면 그때 나누어주자 했다.


저녁에 남편이 저녁을 먹으면서 "김치 맛있다. 애들 좀 갖다 주지"한다. "걱정 마. 내가 알아서 할게"하곤 말았다. 입맛에 맞는 김치를 보니 남편도 아들 생각이 났나 보다. 그런 마음은 아버지나 엄마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새삼 해 본다.

작년 봄 모란을 이웃집에서 얻어다 심었다. 올 오월 처음 꽃이 피었다. 어떤 색깔로 우리 곁에 얼굴을 내밀까 궁금했다. 순백의 하얀색으로 다가왔다. 딱 두 송이 꽃이 피었다. 꽃속 세상이 신비스럽다. 너무 반갑고 예쁘다.


모란은 목단이라고도 부른다. 작약과는 꽃은 비슷하지만, 모란은 나무이고 작약은 풀이다.


모란은 꽃이 크고 화려하여 화중지왕(花中之王)이라 한다. 꽃 중의 꽃이니 빼어난 향기를 뿜어내 국색천향(國色天香)이란 별칭을 가졌다.


아름다운 꽃을 가꾸다 뿌리는 약재로 쓰이는 모란. 모란 뿌리껍질을 말려 소염 진통제로, 또한 모란 뿌리는 정혈과 고혈압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계절의 여왕 5월에 피는 모란은 '부귀화(富貴花)'라는 이름으로 민화에도 많이 등장한다. 그래서 꽃말은 부귀. 5월에 피는 모란을 보고 있노라면 영랑(永朗) 김윤식(金允植)의 <모란이 피기까지는>라는 시가 떠오른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사람들은 온갖 시련과 좌절을 겪으면서 살아간다. 허지만 다가올 미래의 희망과 보람에 대한 기다림으로 그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영랑의 시에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모란꽃의 은은한 향기에 끌려 코끝을 가져가 본다. 한마디로 그윽하다.

올해로 의료기관에서 작업치료사로 일한 지 13년이 됐다. 열정 하나만으로 뛰어든 사회초년생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선배의 위치가 됐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때는 '작업치료사'라는 직업이 생소했던 탓인지 만나는 사람마다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보기 일쑤였다. 일일히 생각하고 대답하기 번거로워 어느 순간부터 멘트를 외우게 됐다. 

"목적 있는 활동을 통해 장애인의 일상생활을 돕고, 더 나아가 사회복귀를 도모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제시한 시간에 맞게 그리고 제한된 공간 내에서 할 수 있는 몇 가지 치료활동이 고작이었다. 그런데다 우리나라 민간의료기관 대부분이 그렇듯이 수익을 무시 못해 치료의 질이냐 양이냐를 고민해야 하는 딜레마까지 갖고 있다.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민간의료기관에선 치료의 양에 치중하는 일도 다반사다. 장애인의 삶을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이렇게 치료의 질이 중요한지, 양이 중요한지 고민하는 일 자체가 있어선 안 된다. 그것도 제한된 공간과 시간 내에서 말이다. 

지역사회로 돌아가지 못하는 중도장애인

얼마 전 대학원 은사님을 만나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교수님께선 장애인의 지역사회복귀 비율은 얼마나 되는지 내게 물어보셨다.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요양병원들을 전전하는 '재활 난민'이 많기 때문에 그 비율이 궁금하셨던 것이다. 지역사회복귀를 돕는 게 내 직업인지라 자연스레 그리고 자신 있게 높은 수치로 대답했어야 했는데, 결국은 주관적인 기준으로 10%로 내외라고 대답해 버리고 말았다. 재활난민 현상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그간 치료했던 장애인분들을 머릿속에 떠올려봤다. 수년이 지나도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을 전전하는 경우가 많았고, 집에 돌아가더라도 요양보호사 혹은 가족의 도움 하에 집에만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적은 경우에서 활동지원사와 함께 일부의 사회활동을 하는 분들과. 극소수로 직업에 복귀해서 생업에 종사하는 몇몇 장애인 분들이 떠올랐다. 

중도장애인이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요양병원과 요양원을 전전한다는 건 지역사회기반 시설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역사회기반 시설이라 함은, 지역 내에서 아플 때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의료기관과 장애인들끼리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말한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휠체어 탄 장애인들이 이용하기 어려운 의원(의료기관)이 많고, 설령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해도 장애를 이해하는 의료진을 만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그래서 요즘은 지역사회에서 장애인들이 어떻게 하면 잘 적응하며 살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이런 고민과 맞물려 현재 정책적으로 장애인 주치의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고, 지역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산다는 '커뮤니티 케어'도 보건복지부에서 추진하고 있다. 추진되고 있는 정책들이 중도장애인이 안심하고 지역사회로 돌아갈 수 있는 마중물이 되길 바라고 있다.     

함께 살아가는 것

날씨가 화창한 지난 19일 토요일. 지역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것을 모토로 활동하고 있는 '함께걸음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건강걷기대회를 주관, 실시했다.

서울, 경기 각지의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장애, 비장애 조합원들이 '북서울 꿈의 숲'에 모여 건강걷기 대회를 함께 한 것이다. 이날 100여명의 조합원들이 모였는데, 맑은 날씨만큼 참가자들의 표정도 밝아 보였다. 무엇보다 휠체어 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준비운동도 하고 같이 걷는 모습까지 보여주면서 주위 방문객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우리 일행은 '북서울 꿈의숲'을 크게 한 바퀴 돈 후, 전망대까지 함께 올랐다. 휠체어 탄 장애인이 다니기에 불편함 없는 공원이었지만,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땐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

전동휠체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문이 닫히지 않도록 잡아줘야 했고, 그 과정에서 전동휠체어와 다른 방문객이 물리적으로 부딪히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시설만 갖춰지면 무엇이든 다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막상 이렇게 함께 다녀봐야 무엇이 불편하고 필요한지 알게 된다. 그리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배려를 배우게 된다.  


필자와 건강걷기를 함께한 장애인 분들은 괜시리 내게 미안해하셨다. 휠체어 탄 장애인 신경 쓰느라 고생했다는 의미였다. 전혀 고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지만, 왠지 모르게 그분들 마음속엔 비장애인에 대한 '불필요한 미안함'이 자연스레 자리 잡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천천히 느리게 가도 된다. 대신 함께 가면 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간다는 개개인의 마음가짐이 정부가 추진하는 '커뮤니티 케어'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리라.

함께 걷기 프로그램을 마치고 오면서 현재 의료기관에서 시행되는 좁은 의미의 '재활'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능회복도 중요하지만, 지역사회로 돌아왔을 때를 가정하여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다양하고 실제적인 일상생활훈련이 꼭 필요하다.

의료기관만의 특수한 치료환경이 중도장애인에게 오히려 사회적응의 걸림돌로 작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도장애인이 사회에 안착하려면 무엇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간다는 인식을 갖도록 많은 이들에게 알리는 과정이 우선돼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