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기사
18세 아들 앞에서 상의 탈의…'55세' 英배우, 토플리스 화보 '깜짝'
영국 출신 할리우드 배우 엘리자베스 헐리가 파격적인 토플리스(상의 탈의) 화보를 선보였다. 엘리자베스 헐리는 26일(한국시간)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진 2장을 공개했다. 공개된 사진 속 엘리자베스 헐리는 눈밭을 배경으로 상의를 벗은 채, 작은 화이트 비키니 하의만 입은 모습이다. 엘리자베스 헐리는 독특한 패...
원래 나를 위해 절약하려고 했다. 불안에서 비롯된 생존형 절약이랄까. 아껴서 남는 돈으로 남편이랑 이 험한 100세 인생에서 살아남고 싶을 뿐이었다. 푼돈을 모으다 보면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오마이뉴스에 <최소한의 소비>를 2년 조금 넘게 연재했다. 절약에 너무 몰입한 탓일까. 연재가 끝을 향해 치달을수록, 풍요로운 생활이 두려워졌다. 생활비가 줄었다. 절약을 훈련해서 4인 가족 한 달 생활비는 90만 원이었는데, 더 많이 줄었다. 2020년 10월, 11월, 12월 내내 70만 원 선에서 생활비를 마감했다.

소유가 범죄처럼 느껴진다는 마하트마 간디의 말처럼, 나는 풍요로우면 죄책감이 들었다. 당연했다. 미세먼지는 지독해졌고, 수도권의 매립지는 과포화에 이르렀다. 청소년들은 '우리도 늙어서 죽고 싶다'며 등교 거부를 했으며, 코로나 바이러스로 아이들은 등교 불가한 날들이 늘어갔다.

기후 위기와 쓰레기 팬데믹은 편리함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조금씩 더 불편하게 살기로 했다. 블라우스 옷 솔기가 튿어지면 비루한 바느질 솜씨를 부려봤다. 옷의 수명을 2년 늘리면 환경 영향력을 20~30% 줄일 수 있으니까. 콩나물 비닐 하나도 씻어서 재사용했다. 볕이 잘 드는 날에는 '오늘 씻은 콩나물 비닐이 잘 마르겠구만' 하고 흡족했다. 

그리고 용기 없이는 바깥 음식을 차마 먹을 수가 없었다. 용기 없는 시금치 한 줌도 죄스러웠다. 코로나 시대, 나는 장바구니에 용기를 넣어다니기 시작했다. '용기내 캠페인'에 참여한 것이다. 용기내 캠페인이란, 일회용 포장용기 사용을 줄이기 위해, 다회용 용기에 포장 없이 내용물만 받아오는 시민 운동이다.

동네 마트와 만두가게, 김밥집, 칼국수집, 빵집에서 꽃가게, 아이스크림 전문점까지 도장깨기 하듯, 나의 용기를 받아주는 가게들을 찾아나섰다. 그런데 빈 용기를 낼 때마다 나에게 이웃이 한 명, 한 명씩 늘었다. 물건을 사고 계산만 하면 끝이던 마트에 낯익은 사람들이 늘어갔다.

용기를 내자, 이웃이 늘었다

첫 도전은 당근이었다. 마트에 비치된 비닐 한 장도 아찔했다. 가방에서 리유즈백(망사형 다회용 면주머니)을 꺼냈다. 마트에서 손을 가방에 넣으니 몸이 뻣뻣해졌다. 물건을 훔치는 걸로 오해하시면 어쩌지? 손동작 하나도 조심스러웠다. 결백을 증명해듯, 순수하게 물건만 사고 있다고 온몸으로 말하듯, 당근을 리유즈백에 담자마자 뚜벅뚜벅 저울로 향했다.

"어, 이거 당근이에요?"
"네. 두 개 담았어요."


개인용 용기에 담으면 안 된다고 하실지도 모르니 나도 모르게 간곡해졌다. 자세는 낮게, 표정은 간절하게, 말투는 굽신거리며!

"요즘 비닐을 너무 많이 쓰는 것 같아 줄여보고 싶습니다!"

면접관 앞의 입사지원생처럼 비장했다. 점원분은 활짝 웃으시며 간결하게 말씀하셨다.

"와, 이거 괜찮네요!"

다행히 한 고비 넘겼다. 다음은 계산대다. 역시나 고개를 갸웃하셨다.

"어머, 이게 뭔가요?"
"비닐 대신 쓰는 망이에요. 저라도 비닐을 줄여보려고 샀어요."
"애국자네! 진짜 애국자네요. 마트에서 일하다 보면 비닐 쓰는 거... 어휴, 말도 못 해요. 나 하나의 작은 변화! 사장님께도 꼭 말씀드릴게요. 우리도 비닐 줄이기 하자고."

 
 
이날 이후, 여기 마트에 편안하게 다닌다. 섬초도, 연근도, 표고버섯도 담았다. 따뜻한 눈 인사를 나눠주시고, 데려간 어린 두 딸에게 바나나를 하나씩 쥐어주시기도 했다. 섬초 주머니에는 작은 귤 두 개도 담아주셨다.

다른 마트에서는 점원분께서 상추를 한 움큼 쥐어 리유즈백에 넣어주셨다. 새댁이 좋은 일 해주니 너무 고맙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마트에서 덤이라니. 리유즈백과 함께라면 관계가 이어졌다.

나는 자주 굽신거리며 빈 용기를 들고서는, 플라스틱과 비닐을 도무지 쓸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만둣집 사장님께서 우리집 밀폐용기에 만두 한 알, 한 알 밀가루 굴려 담아주시다 보면 송구해서 몸 둘 바를 몰랐다. 덕분에 스티로폼 그릇 하나를 안 썼다.

"저 때문에 괜히 힘드셔요. 죄송해서 어떡해요."
"아이고, 뭘 이 정도 가지고."


칼국수집에서 빈 용기에 면만 받아온 적도 있었다. 마트에서 파는 생칼국수의 플라스틱 받침이 마음에 쓰여, 용기를 냈다. 미리 전화를 걸어 면만 포장 가능한지 여쭤본 후, 칼국수집 사장님은 재밌는 손님이라며 허락해주셨다.

두꺼운 유리문을 열고 들어갔다. 사장님께서는 이미 5인분 같은 4인분 준비했다며 환하게 웃고 계셨다. 살림꾼 절약가는 입이 귀에 걸린 채, 씻어 둔 플라스틱 딸기팩을 내밀었다. 집에 있는 밀폐용기들이 너무 작아 가져간 거였다. 빈 딸기팩을 내밀자 사장님 눈이 놀란 토끼 눈처럼 동그래졌다.

"아유, 비닐에 담아줄게요."
"비닐 줄이고 싶어서 챙겨왔어요. 여기 담아주세요."


사장님께서는 흐뭇하게 담아주셨다. 코로나 끝나면 애들 데리고 식당에 와서 먹을게요, 인사말을 남기고 경쾌하게 문을 나섰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동네 꽃집에서는 사장님이 꽃병을 집에서 가져왔으니, 제값보다 적게 받으시겠다 하셨다. 값을 깎다니. 이런 민폐가 어디 있나 싶어 극구 사양했다. 그랬더니 작은 종이에 응원의 글을 써주셨다. 플라스틱을 줄이려고 시작한 일인데, 격려와 칭찬과 응원이 겹겹이 쌓여갔다.
 
 
진정한 '쓰덕'을 만나다

여느 때와 같이 리유즈백에 청양고추를 담고 있었다. 무게를 다는데, 점원분께서 꾀꼬리 같은 높고 맑은 톤으로 칭찬 세례를 쏟아주셨다.

"이거 너무 좋네요!"
"비닐 줄이려고 쓰고 있어요."
"저도 환경 오염 너무 걱정이에요. 예전에 장바구니를 천 명에게 나눠준 적도 있답니다. 비닐 대신 쓰는 이런 물건도 한 번 만들어봐야겠어요."
"와, 좋죠! 비닐 대신 쓰면 얼마나 좋은데요! 리유즈백이란 건데, 인터넷에 팔아요."


혹여 '리유즈백'이란 단어를 잊어버리실까봐, '리유즈(reuse)'라고, '재사용'의 영어 해석이라고 힘주어 한 글자씩 말씀드렸다. 그런데 누가 누굴 가르쳤나. 나는 굼벵이 앞에서 주름잡는 한 마리 쥐며느리였다. 쓰덕(쓰레기 덕후) 중의 쓰덕들만 알고 있는 '양파망'을 제안하셨다.

"뭘 사요. 양파망이 딱인데. 노끈도 예쁘게 꼬아서 끝부분만 불로 살짝 지지면 재사용할 수 있어요."
"진짜 고수시네요! 멋지세요! 비닐도, 양파망도 소중히 여기는 그런 세상이 올까요?"
"해봐야죠. 그리고 감자나 당근처럼 흙 있는 건 망에 못 넣잖아요. 시(市)에다가 건의해서 현수막 모아봐도 좋을 것 같아요. 못 쓰는 현수막으로 주머니 만들면, 흙 있는 것들도 다 담을 수 있겠네요."

양파망에 현수막까지, 스케일이 남다르셨다. 이분, 뭔가 예사롭지 않다.

"혹시 사장님이세요?"
"여기가 우리 아들 가게예요."


이러니 우리 동네 가게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의 돈이 이분들에게 흘러가면 얼마나 좋을까. 청양고추를 담아 집으로 오는 길. 북극한파인데도 신이 나서 하나도 춥지 않았다. 이웃이 있어 겨울이 춥지 않을 수 있다니.  
 
 
기후 위기와 쓰레기 팬데믹에 대응하고자 용기내 캠페인에 동참했다. 매번 빈 용기를 챙겨야 하니 조금은 불편하고, 텀블러 없는 날에는 커피 한 잔의 욕망도 견뎌야 했다. 커피 없는 오후라니. 꽤나 인내심이 필요했다. 때로는 분리수거장에 수북한 스티로폼 박스를 보면 속상할 때도 있었다. 세상은 비닐 한 장 줄이려는 나의 노력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이 속상함을 도닥여준 이들은 우리 동네 사장님들, 점원분들이다. 플라스틱에 담아 미리 준비한 상품보다, 소비자의 자잘한 요구에 맞춰 모양도 크기도 다른 용기에 담으면, 어쩔 수 없이 시간과 품이 든다. 아무래도 죄송스러워 굽신거리다 보면, 그분들은 예의 바르지만 조금 성가신 손님에게 눈길을 준다.

그 눈길을 받아 이야기가 흐르고, 나는 사장님을, 사장님은 나를 알게 된다. 어쩌면 쓰레기 지옥 같은 이 세상에서 살아남고 싶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용기를 내고 나서야 비로소 동네 사람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이 동네에 온 지 7년 만에.
 
배보다 배꼽이 크다

아내의 민원 현장을 같이 둘렀다가 오는 길에 도정공장(RPC)에 들러 차가 꽉 찰 정도로 쌀 딩겨 2포대, 싸레기 2포대, 배추 2포대를 구해 왔다. 딩겨는 수시로 바닥에 깔아 주고 싸레기는 배추 부스러기와 함께 먹이로 줄 것인데 아마 몇 달은 먹이지 싶다.

우리 집 양식은 5가지다. 쌀, 진도견 사료, 소형견 사료, 고양이 사료. 닭 사료인데, 돈으로 따져 공식화하면 이렇다.

쌀>소형견>고양이>진도견>닭,
쌀×2 =소형견+고양이+진도견+닭,
쌀+닭<소형견+고양이+진도견.


수입은 계란이 전부이니 생산성이 있는 것은 쌀사료 뿐, 나머지는 죄다 먹고 싸는 용도라서 비경제적이나 인문학적 가치를 따질 때는 영 허망하지는 않다. 어제는 아침에도 계란을 안 낳았고 민원 현장을 다녀와서 저녁에 또 가 봐도 없고, 오늘 아침에 나가 언 물을 녹이고 싸래기와 배추를 줄 때도 없었다. 오늘은 종일 거울의 각도를 조정하기 위해 나갈 때마다 봐도 없었기에 나흘 동안 양계업은 완전히 공쳤다.
 
 
허술한 초보에게 온 충고들 

양계 일지를 본 밴친(밴드 친구)이나 페친들이 여러 충고를 해줬다. 그동안 온라인, 오프라인의 지인들은 격려와 칭찬, 염려, 조롱, 야유를 아낌없이 보내 주었다.

ㅡ 청계를 더 넣어 키워라.
ㅡ 아니다. 다른 닭을 섞어 넣으면 싸움이 나는데 그것은 닭싸움이 아니라 개싸움 수준이다.
ㅡ 수탉이 계속 시끄럽게 울면 먹이를 줄 때 말을 걸며 더 정을 줘라.
ㅡ 닭에게는 상추가 최고다. 내년에는 텃밭에 상추를 많이 심어라.
ㅡ 무슨 소리. 나도 상추를 좋아하니 심는 김에 좀 나눠 달라.
ㅡ 수동식 태양광 스마트 시스템은 해외토픽감이다.
ㅡ 밥 팔아 똥 사먹을래? 그냥 달걀 사서 먹어라.


고작 닭 다섯 마리를 키우는 사람에게 주는 넘치는 사랑일 것이나 말들이 서로 부딪치고 넘쳐서 아둔한 나는 하나도 고를 수가 없다.

닭들은 막대기 위에 모여서 밤잠을 자고 낮잠은 짚더미 바닥에 앉아서 자는데 계란을 낳는 중인지, 아니면 그냥 쉬고 있는 중인지는 아직 분간하지 못한다. 하여튼 오늘도 닭들은 종일 쪼아 먹고 잘 놀고 잘 울었지만, 알 낳는 볏짚은 텅 비었다.

달걀 안 먹는다며?

양계일을 시작한 지 10일이 지난 오늘, 꼴랑 계란 세 개를 쳐다 보며 지나간 시간들을 생각했다. 지난 주 일요일에 놀다가 간 다섯 살 외손주가 닭장에서 계란을 꺼내며 "나는 이제 계란하고 치킨은 안 먹어. 불쌍해서"라고 했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진짜 이 경험으로 편식을 하면 어쩌나 싶어 나의 양계업을 후회하기도 했다.

그런데 월요일에 큰딸이 사진과 함께 사연을 보냈다. 치킨을 맛있게 먹는 손주에게 "이제 치킨은 안 먹는다며?"라고 물었더니 "외할아버지 닭은 그냥 보기만 하고 다른 아저씨 닭은 먹어도 돼"라고 했단다.

아, 그 나이에 출구전략을 깨우친 것일까. 아무튼 날이 풀려서 오늘은 달걀을 낳겠지. 방금 아홉번 째로 확인하고 왔으니 열번 째는 틀림없을 거다.

덧붙임. 농업계열 교사, 그 중에서도 동물전공인 모 후배가 "겨울에는 자신의 생존을 위한 에너지 비축으로 인해 달걀을 낳지 않는데, 인공적으로 일조량을 늘리면 알을 낳기도 한다"고 일러 주었다. 그래서 내가 "나의 수동식 태양광 스마트 시스템으로도 안 되냐?"고 물어 보니 "피식"하며 웃었다. 이렇게 버릇없는 후배인 줄은 몰랐다. 

(제4화에서 계속)
2020년 4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발신자 '오마이뉴스'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2013년 제가 쓴 글이 '잉걸' 기사로 채택되면서 시민기자로 감동적인 데뷔를 했습니다. 그렇게 8년 정도 시민기자를 하며 오마이뉴스로부터 전화를 몇 번 받았는데, 그때마다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되었습니다. 

평범한 시민기자에게 본사 기자님으로부터의 전화는 영광스러우면서도 '내가 뭘 잘못했나?'라는 두려움을 느낄 만큼 긴장되는 일이었거든요. 대부분 그렇게 긴장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전화는 평소와 내용이 좀 달랐습니다.

"기자님, 이번에 저희 라이프플러스팀(사는이야기, 여행, 책동네, 문화 검토 전담)에서 시민기자 기획단을 꾸리는데요. 기획단은 저희 팀에서 실험적으로 시도하는 프로젝트예요. 핵심은 시민기자님들과 직접 소통하는 거고요. 기사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기사 아이템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나누는 거예요. 기사를 쓰는 모임이 아니라, 어떤 기사가 나오면 좋을지 논의 하는 그런 성격이에요. 김용만 기자님은 아이디어가 많으시니까 같이 하시면 좋을 것 같아 전화 드렸어요."

엄청 기분이 좋았습니다. 솔직히 오마이뉴스가 우리나라 언론 중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제 마음 속 오마이뉴스는 평범한 제가 기사를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줬고, 한때 서평단으로 활동하는 기회를 줬으며 좋은 분들을 알게 해준 친근한 언론사였습니다. 고민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넵!!! 함께 하겠습니다!!"

시민기자가 직접 기사 기획에 참여한다는 것

한 달 후 5월 15일 첫 온라인 회의를 했습니다. 포항 이창희 시민기자, 용인 이혜선 시민기자, 창원에 사는 저, 그리고 최은경, 이주영 편집기자와 함께 였습니다. 첫 만남이라 인사를 나누고 서로 소개를 했습니다. 처음 보는 분도 있었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왠지 모를 친근함이 느껴졌습니다.
 
 
첫 회의 분위기는 유쾌했습니다. 마침 코로나 상황이었고 코로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제안을 했습니다. '코로나 시대의 교육'에 대해 현장 교사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기사가 있었으면 하는데 괜찮을지 물었습니다.

이날 회의에선 '좋은 생각이다'는 평을 받았고 며칠 후 오마이뉴스 사회부 편집기자가 연락을 주셨습니다. 기사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습니다. 신기했습니다. 제가 기획단 회의에서 나눈 대화가 현실이 된 거니까요. 

저는 이 내용을 제가 활동 중인 '실천교육교사모임' 회원 선생님들께 알렸고 유치원, 초등, 중등, 특수 선생님들까지 스스로 기사를 써서 <오마이뉴스>에 보내셨습니다. 선생님들은 의아해 하셨습니다.

"김용만 선생님, 제가 쓴 이 글이 기사 거리가 될까요?"
"오마이뉴스는 형식을 우선하지 않습니다. 제 경험상 솔직한 글, 현장의 목소리를 귀 기울이는 언론입니다. 우선 보내 보세요."


선생님들이 쓰신 글은 며칠 후 기사로 채택되어 온라인으로 발행이 되었습니다.

"선생님, 진짜 제가 쓴 글이 <오마이뉴스>에 발행되었어요. 너무 신기해요. 제가 계속 기사를 써도 될까요?"
"당연하죠. 선생님, 선생님이 시민기자가 되셔서 저 또한 기분이 좋습니다. 언론이 관심 가져주길 기다리지 말고 우리 일은 우리가 직접 쓰면 됩니다. 시민기자가 되심을 축하드립니다."

 
 
실천교육교사모임 선생님들의 현장기사는 '릴레이 기고 : 코로나 시대 교육을 말하다'는 제목으로 총 16화가 실렸습니다. 많은 관심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기사를 직접 쓰신 선생님들께서는 매우 좋은 경험으로 남았습니다. 

"제가 쓴 글이 기사가 될지 생각도 못했어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등록했어요. 앞으로도 기사를 계속 쓰고 싶어요."

저는 이 모든 것이 시민기자 기획단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다리를 놓아준 것 뿐인데, 저도 굉장히 뿌듯했습니다.
 
기획단 회의는 그후 매달 1회씩 진행되었습니다. 6월부터는 내부 인사이동으로 이주영 편집기자 대신 김예지 편집기자가 합류했습니다. 그렇게 2020년 12월 마지막 회의까지 총 7차례에 걸쳐 온라인 회의를 했고 '코로나 시대의 교육' 이외에도 기획단 회의를 통해 많은 기획이 만들어지고 청탁을 통해 기사로 나왔습니다.

다음은 지난 한 해, 시민기자 기획단에서 논의한 결과들이자 실제 기사로 나온 기획들을 정리해 본 것입니다.

- 코로나 시대 교육을 말하다
- 코로나 시대, 달라진 일상은? 어떻게 소통하고 있습니까?
- 코로나 시대, 나만의 시간 보내는 법 : 
놀면 뭐하니?
- 코로나 시대에 달라진 여행 법 소개
- 환경에도 관심을! 환경을 위한 소소하고 확실한 실천법
- 코로나 우울,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 : 
나만의 심리방역
- 그리운 직장 생활의 맛
- 코로나 격차
- 1인가구 재택러들의 현실 등등. 

전국에 흩어져 있지만, 이어져 있는 시민기자들


용인에 사시는 이혜선 시민기자는 개인적으로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는 블로거이기도 하셨습니다. 이혜선 시민기자는 기획단 회의 때 나온 소재를 글쓰기 모임 분들과 공유하며 더 많은 기사가 지면에 실리는 마중물 역할을 하셨습니다. 포항에 사시는 이창희 시민기자는 매 회의 때마다 "이날을 기다렸다"라며 유쾌한 언변으로 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셨습니다. 회의 주제에 대한 기사도 많이 쓰셨습니다.

김예지 편집기자는 늦은 시간까지 회의 내용을 기록하고, 우리들이 말하는 내용을 정리해서 기사의 방향을 잡아주는 수고를 하셨습니다. 최은경 편집기자는 사는이야기를 검토하는 팀에서 오래 일하신 만큼, 특유의 예리함과 포근함으로 회의 진행을 하셨고 소재 거리들을 잘 정리해 주셨습니다.

저요? 저는 회의의 개그, 분위기를 담당했습니다. 기획으로 정리된 내용에서 제가 쓸 수 있는 기사들은 썼습니다. 따로 보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캐릭터들이지만 5명은 재미있고 유익하게 기획단을 해냈습니다. 그게 벌써 한 달 전이네요. 2020년 12월 17일 마지막 회의를 하는 데 뭉클했습니다. 그새 정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2021년에는 좀 더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다른 모임들을 기획한다고 하니, 적어도 우리가 실패작은 아닌 것 같습니다. 

2020년은 코로나 시대이다 보니 코로나 관련 일상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회의 때 주제를 특별히 강제하지 않았습니다. 회의 전 주제 아이템을 알려주시긴 했지만, '지금 사람들이 관심 있는 것은 뭘까? 지금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뭘까? 지금 내가 관심 있는 것은 뭐지?'를 이야기 하며 기획 아이템을 논의했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템들은 우리만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다른 시민기자들이 직접 기사를 씀으로써 오마이뉴스를 통해 세상과 만났습니다. 거창한 정치, 경제 기사는 아니지만 무시할 수 없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시민기자 기획단 회의가 끝나고 활동하신 시민기자님들은 '소속감을 주는 모임이라 좋았다', '사는이야기 팀뿐만 아니라 더 많은 부서에서 세대별, 지역별, 상황별로 시민기자들과 소통하면 더 좋겠다', '오마이뉴스와 직접 소통한 경험이 감동적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대, 일상의 이야기를 오마이뉴스를 통해 계속 접하고 싶다'는 후기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시민기자 기획단은 오마이뉴스였기에 가능했다고 확신합니다. 오마이뉴스의 힘은 사는 이야기, 나의 글이 기사가 되는 언론, 소외된 분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는 역할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거든요. 

저에게 2020년은 힘겨웠던 코로나의 해였지만 동시에 '오마이뉴스 기획단'의 해이기도 했습니다. 함께 했기에 의미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모임과 활동이 계속 되면 좋겠습니다. 

오동통한 돼지곱창을 잘 손질해 노릇노릇 구워 먹으면 쫄깃쫄깃 고소한 맛이 일품인 삽다리곱창. 씹을수록 고소함과 담백함을 자랑하는 곱창구이를 즐긴 후 얼큰하고 진한 곱창전골을 빼놓을 수 있으랴. 한껏 땀 빼며 비워낸 그릇을 만족한 얼굴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스스로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삽교사람뿐만 아니라 예산군민과 전국민을 매료시킨 삽다리곱창, 언제부터 즐겨먹기 시작한 것일까?

돼지고기가 흔하지 않던 시절, 사람들은 곱창 등 부산물을 구하면 대부분 삶아 새우젓에 찍어 먹었다. 마치 요즘 순대를 주문하면 함께 나오는 허파와 간 같은 부산물처럼 말이다.

삶아만 먹던 것을 연탄불에 굽기 시작하면서 서민들이 별미가 된 것이 삽다리곱창의 원조다.
 
"옛날에는 대폿집이라고 주막처럼 막걸리 마시던 곳이 있었어요. 시장에 하나, 방아리 도축장 옆에도 하나 있었지요. 그곳에 가면 안주거리로 곱창이나 새끼보를 삶아 내줬는데, 이것을 어쩌다 굽게 된 거죠. 돼지고기 곱창에서 고소한 기름이 나오니 냄새 안 나게 잘 손질해 먹으면 참 맛있었어요."
 
 
충남 예산군 삽교 토박이 전병성(64)씨가 옛 기억을 더듬더니 "연탄불에 음식을 조리하던 때라 밤 굽는 적쇠에 곱창을 구우면 타지 않도록 계속 저어야 했어요. 불이 세면 깔판을 넣어 세기를 조절하며 팔힘을 써 쉴새 없이 뒤집었어요"라고 생생한 묘사도 덧붙인다. 

가스가 공급되면서 연탄에 굽던 방식은 일반 불판으로 바뀌었지만, 곱창을 맛있게 먹기 위해선 여전히 열심히 주걱으로 뒤집어야 한다. 동글동글한 곱창을 골고루 노릇노릇하게 익히는 방법이다. 기름이 조금씩 나올 때쯤 마늘을 넣어 함께 구워내면 완성이다.
 
전골은 지금처럼 채소가 다양하지 않았던 초기에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냉이를 넣어 은은향 향을 살리고 잡내를 없앤 뒤, 새우젓과 신김치로 맛을 내 허기진 속을 달랬다. 냉이를 넣는 방법은 변치 않고 삽교식당 곳곳에서 이어오고 있다. 전골을 비우고 나면 참기름과 각종 채소를 넣고 밥을 볶아먹는 맛 또한 일품이다.

그 당시 대폿집이나 식당은 대부분 삽교 방아리 도살장에서 곱창을 구해왔다. 삽다리곱창이 맛있는 비법 중 하나다.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점점 곱창을 구워 파는 식당이 늘었고, 합덕이나 서울 독산동 도축장 등에서도 재료를 대오기 시작했다. 
 
 

삽교에서 오래된 곱창집은 1963년 시장에 문을 연 '신창집'과 1964년 도축장 옆에서 시작해 오가로 자리를 옮긴 '할머니딸 숯불곱창마을'이다. 두 곳 모두 2대째 대를 이어오고 있다. 벌써 60년 가까이 이어오는 맛이다. 현재 삽교에는 곱창전문점 10여개가 운영 중이다.

2013년부터는 삽교 '섶다리'와 함께 곱창을 먹고 즐기는 주민주도형 '삽다리축제'가 이어져 오고 있다. 삽다리곱창을 알리기 위해 마련한 무료시식코너는 관람객들의 입맛을 사로잡았고, 이를 맛보려 수백여미터 늘어선 관람객들의 모습이 장관을 이루기도 했다.

"먹거리가 풍부하지 않아 고기를 접하기 어려웠던 시절 곱창을 맛있게 먹던 어른들이 자식들을 데려와 함께 먹었고, 그 어렸던 자녀들이 이제 중년이 돼 향수 속 별미를 다시금 찾는 거예요. 고소한 곱창에 소주 한잔 기울이며 옛이야기 나누면 그보다 좋은 시간이 있을까요."

삽교곱창에 담긴 향수의 맛, 함께 즐겨보자.
 
 
산골짜기 산막에 사는 촌놈 송인효의 첫 방송 무대, 화려하고 행복하고 때론 화나고 우울했던 잔치는 끝났습니다. 화려하고 나름 행복했던 방송 무대 그 이면에 숨겨진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러니까 지난해 가을이었습니다. 평소 경쟁이라면 그 어떤 것이든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던 큰 아들 송인효가 느닷없이 어느 방송사의 포크송 경선에 나간다고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계면쩍게 말했습니다.

"거시기네 아빠가 경선 안 나가면 못 만나게 한다구 해서..."
"꼭 그것 때문에 나가는 거냐?"
"당연히 아니지. 나도 이번 기회에 경선 같은 거 경험해 보고 싶기두 하구, 겸사겸사 신청했지 뭐..."
"그래 잘 생각했다. 니 노래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들리는지 알아보기도 하고..."


녀석이 경선에 참여 한다고 할 때 고등학교 3학년, 대학입시를 며칠 앞두고 촛불집회에 나가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대학은 졸업장을 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사람만이 꼭 배우고 싶은 공부를 하기 위해 필요하다'라는 나름 개똥철학으로 대학 진출을 포기한 녀석이 수능을 보겠다고 그랬습니다. 수능을 본 이유는 경쟁을 뚫고 대학에 가고자 한 것이 아니라 도대체 대학입학 시험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었던 촌놈의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이번 포크송 경선처럼 말입니다.

아무튼 여자 친구 아버지의 권유를 핑계 삼아 음악 전문방송에서 주최하는 기타 치고 노래하는 포크송 경선에 5편의 노래를 동영상으로 만들어 제출했습니다. 예선전 심사는 코로나 때문에 현장 오디션 대신 동영상과 간단한 오디션을 통해 이뤄졌습니다. 예선에 올라가면 방송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나름 기대를 했습니다.

녀석이 알고 지내는 뮤지션들은 줄줄이 예선 진출 통지를 받고 있는데 녀석에게는 발표 마지막 날에도 연락이 없어 떨어졌나 했습니다. 하지만 발표 마지막 날, 늦은 밤에 제작진으로부터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백만 송이 장미'로 첫 번째 방송 공연

예선에 오르자 본인이나 지 애비나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기왕 예선에 올랐으니 본선까지 가보자는 의지를 다졌습니다. 하지만 쟁쟁한 뮤지션들 틈에서 과연 산골 촌놈이 홀로 배우고 익힌 솜씨로 예선을 통과해 본선까지 오를 수 있을지는 불투명 했습니다.

"밥은 먹었냐?"
"아니."
"거기서 밥 안 줘?"
"안 주던디. 각자 도시락 싸와서 먹었어."
"그려? 너무하네. 어지간히 살만하믄 도시락 한 개씩 돌리지. 암튼 첫 방송 무대 떨지 말고 잘해라."


인효는 오전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진행된 예선전에서 우리 가족의 예상을 깨고 보기 좋게 본선에 올라갔습니다. 예선에서 부른 노래는 평소 지 애비가 좋아했던 노래라서 어려서부터 들어왔던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 나름 반응이 좋았던 모양입니다. 심사위원 전원 합격을 받았으니까요.
 
 
예선은 운 좋게 통과했지만 본선에 올라온 뮤지션들 면면을 살펴보니 한국대중음악상 수상자를 비롯해 이미 인터넷이나 방송을 통해 알려진 기라성 같은 뮤지션들도 더러 눈에 띄었습니다. 이미 알려진 유명 뮤지션들이나 예술대학교, 기획사 등을 통해 전문적으로 노래를 배운 친구들 틈에서 살아남을지 의문이었습니다.

예선에 오를 때는 방송 제작팀이 이른 새벽에 우리가 사는 산막을 찾아와 드론까지 띄워 대략의 하루일과를 촬영해 갔는데, 본선에 오르자 무슨 인터뷰며 리허설 등등으로 서울을 뻔질나게 오갔습니다. 암튼 예선을 통과하자 두 팀이 한 팀으로 조를 이뤄 다른 조와 맞붙는 데드 매치 형식으로 한 팀이 떨어지거나 두 팀 다 떨어지는 살벌한 경선이 시작되었습니다.

형제처럼 가까워진 곡두와 경쟁 붙여

송인효는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뮤지션 곡두와 한 조가 되었습니다. 곡두는 인효보다 12살이 더 많은 띠 동갑 형님이었는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비슷하다보니 만나자 마자 연애하는 사이처럼 아주 가까워졌습니다. 경선을 떠나 두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인연을 맺은 것 자체로 만족한다 할 정도로 서로 호흡이 잘 맞았습니다.

"밥은 먹었냐. 이번에도 밥 안 주디?"
"이번에는 김밥 나눠줘서 두 줄 먹었어."


산막에서 월세 살이 하는 인효 같은 가난한 뮤지션들에게는 소비지출 총액에서 식료품비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듯이 먹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손님들이 찾아오면 아무리 가난해도 달랑 김밥 몇 줄로 대접하지는 않습니다. 그나마 김밥 두 줄은 오전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아무것도 제공받지 않았던 예선전에 비하면 방송국에서 호의를 베푼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곡두와 인효는 '꼭두새벽'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양보하고 배려해가며 대학가요제에서 활주로가 불렀던 '탈춤'을 선택해 두 사람 말대로 '걸판지게' 무대를 선보여 본선 2차전에 올라갔습니다. 이 두 사람의 공연은 본선에 올라온 뮤지션들이 꼽은 최고의 무대로 선정되기도 했답니다. 이날은 방송국에서 뭔 바람이 불었는지 녹화가 끝나자 뮤지션들에게 교통비조로 3만원씩 지급했다고 합니다.
 
 
세 번째 무대를 앞두고는 우울하고 끔직한 공연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경선 상대가 산막을 오가며 급속도로 가까워진 곡두였던 것입니다. 둘 중 하나가 떨어지거나 둘 다 떨어지거나. 침울한 목소리로 인효 녀석이 그 얘기를 했을 때 내 입에서 욕설이 튀어 나왔습니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 아무리 경선이라도 그렇지, 친한 사이끼리 붙여 놓다니."
"경선이 원래 그렇댜. 대충 알고 참여 했으니 감수해야지 어쩌겠어."


산골 촌놈이 비로소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딛고 올라서야 하는 경선의 쓴맛을 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인간의 속성이 그렇듯이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두 사람 모두 누가 떨어지고 올라가든 상관없이 자신의 무대에만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인효가 떨어지고 곡두가 올라가면 후회 없이 축하 해주면 될 것이었습니다. 또한 인효가 올라가면 곡두 역시 마찬가지의 심정이었고요.

"이번에도 밥 안 주디?"
"아니 이번에는 도시락 나눠줘서 먹었어. 근디 왜 자꾸만 밥 주냐고 물어봐?"
"오랜 시간 앉혀 놓고 최소한 밥은 줘야지. 그게 인간의 도리지, 암튼 이제부터 도시락 줄라나 보다."


세미파이널로 가는 마지막 관문에서 송인효는 한영애의 '조율'을, 곡두는 아이돌가수 유아의 노래 '숲의 아이'를 편곡해 멋진 무대를 장식했는데, 아쉽게도 곡두가 떨어졌습니다. 곡두는 인효에게 아낌없는 축하를 보내왔고, 인효는 곡두가 떨어지자 진심으로 곡두가 자신보다 더 잘 부른 것 같다며 세미파이널에 오른 기쁨을 접고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우승을 향해 욕심껏 즐거운 상상도 했지만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세미파이널, 준결승에 송인효를 비롯해 최종 8명이 올라갔습니다. 촌놈이 얼떨결에 준결승까지 오른 것입니다. 물론 언젠가는 방송에 나가 멋진 공연을 하게 될 것이라는 상상은 했지만 이렇게 어느 날 갑자기 느닷없이 찾아오리라 예상 못했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종잡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본선에만 올라도 만족한다 해놓고 어느새 못마땅했던 경선을 다 잊고 우승까지 욕심내는 즐거운 상상에 빠지기도 했으니까요.

"야 인효야, 만약에 말이다. 노래 잘하는 친구들이 많아 우승할 리 없지만, 만약에 우승하면 그 돈 어떻게 쓸래?"
"일단 그 돈으로 음악 장비 사고, 신나게 여행도 가고, 인상이(동생) 하고 엄마 아버지한테 나눠주고... 그리고 또 이번 경선에 참여한 뮤지션들이 출연료는 물론이고 교통비도 제대로 받지 못 했으니까, 예선에 올랐던 뮤지션들에게 천만 원 정도 쓰고 싶어. 최소한 점심 값하고 교통비 할 수 있게."

"누구한테 나눠준다고? 자씩이 우승 가능성 없으니께 그냥 하는 소리지?"
"진짜야. 우승할 확률은 거의 없지만 뮤지션들에게 꼭 그러고 싶어. 1년 동안 홍대 클럽 전전하면서 뮤지션들이 얼마나 열악한 조건에서 노래하는지 알게 됐거든."
"하하하! 돈 한 푼도 없는 거지같은 놈이 좋다. 송인효다워서 좋다. 그려, 우승 가능성은 거의 없응께 기분 좋은 상상이라도 하자. 우승해서 진짜로 뮤지션들에게 나눠 주면 더 좋고."


그런데 녀석은 노래에만 신경을 썼지 결승전에 올라가는 관문에서 사전투표로 점수를 매긴다는 사실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심사위원 점수만으로 결승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언택트 관객점수'라는 것으로 결승진출이 좌우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세미파이널에서는 심사위원 점수 600점과 언택트 관객점수 400점으로 최종 4명을 선정했습니다. 인효는 어려서부터 산에서 살아온 심성을 최대한 살려 밴드의 도움 없이 기타연주와 목소리 하나만으로 양희은의 '한계령'을 불렀습니다. 이 노래로 심사위원 김윤아씨의 극찬을 받아가며 심사위원 전체 점수 3위에 올랐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들 인효가 결승에 올라갈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언택트 관객 점수'가 최하위에 머물렀습니다. 결국 종합점수 5위에 그쳐 아쉽게 탈락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결승에 오르는 관문에서 아쉬웠던 여파가 하루 이틀 지속되었습니다. 우리가 사전에 '언택트 관객 투표'라는 것이 결승 진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히 알았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투표할 수 있도록 전화를 돌렸을 것이었습니다.

"인효야 차라리 잘됐다. 여기서 멈춘 것이. 만약 우리가 주변 사람들에게 투표에 참여해 달라고 전화해서 결승에 올라갔다면 당당하지 못했을 것 같다. 그 누구보다도 자신한테 평생 큰 오점으로 남게 될 것이고 늘 찝찝하고 그랬을 것이다."
"그려, 아빠 말대로 오히려 잘된 거 같혀. 전화하질 않은 게."
"그려 잉. 만약 알았다면 그 유혹을 감당하기 힘들었을 텐디 오히려 잘됐다. 그 어떤 기운이 거기서 딱 멈추게 해준 것 같다. 더 이상 욕심 부리지 말라고. 그리고 너 대신 누군가 기쁨을 누렸으니 그것으로 됐다."


주변 사람들은 인효가 준결승까지 올라갔었기에 출연료를 꽤나 받은 줄 알고 조심스럽게 물어봅니다.

"그래도 방송국에서 공연했으니까. 준결승까지 오르는 동안 출연료는 어느 정도 받았을 거 아닙니까?"
"전혀요. 출연료는 단 한 푼 못 받았답니다."


그랬습니다. 준결승전까지 네 차례 공연하면서 인터뷰며 합주 등등으로 서울을 십 수차례 오고갔는데, 교통비조로 받은 3만원이 전부였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방송을 통해 송인효는 사람 좋고 노래 실력 좋은 뮤지션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방송 덕분에 송인효 이름 석 자를 알렸습니다. 마지막 경선 '한계령'을 부른 송인효에게 "이 세계를 소환하는 자. 다른 세계로 우리를 초대해준. 성별과 나이를 초월하는 목소리를..." 가졌다고 자우림 김윤아 심사위원의 과분한 평가를 받은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분명 방송 덕분에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주변 분들이 즐거워했고 음악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어 심사위원들 말대로 기교가 부족한 인효 스스로 경선이 거듭될수록 자신의 노래에 어떤 점이 부족한지를 점검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촌놈이 난생 처음 협찬사 양복도 빼입어 보고, 방송을 통해 낯설고 재밌는 경험도 많이 했지만 앞에서 잠깐씩 불만을 언급했듯이 아쉬운 점 또한 많았습니다.

가난한 뮤지션들에게 교통비라도

얼마 전 인효에게 포크송 경선을 통해 친분을 쌓았던 한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이 글을 쓰기로 작정하게 된 전화였습니다.

"그 친구 보기에 헐렁헐렁해도 노래 참 좋은데 경선 떨어지고 머 한다냐?"
"공사판에서 막노동하고 있대."


그 친구뿐 아니라 인효를 비롯해 경제적인 어려움을 딛고 힘겹게 노래하는 친구들이 수두룩하답니다. 막노동을 해가며 자신의 노래를 희망으로 삼고 있는 가난한 뮤지션들, 내 아들의 친구는 내 친구이기도 합니다. 그 친구의 열악한 상황은 인효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 친구들이 밥은 제대로 챙겨 먹고 노래를 부르는지 뮤지션을 둔 애비로서 걱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경선에 나온 뮤지션 중에는 대학생이나 기획사에 소속되어 있는 친구들도 많지만 시급 아르바이트나 막노동을 해가면서 노래 부르는 친구들도 많다고 합니다.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공연 무대는 말 할 것도 없고 일자리도 찾기 힘듭니다. 인효처럼 소속된 단체가 없거나 일정 소득에 못미치는 뮤지션들은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프리랜서 지원금조차 해당 사항이 되질 않습니다.

"예전에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뮤지션들 얘기 들어보면 이것도 많이 좋아진 것이라고 하데. 그땐 수고비는 고사하고 단 한 줄의 김밥도 주지 않았다네."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방송 출연 한 것만 해도 감지덕지로 여기라는 것인가요? 문제는 이런 불공정한 사례들이 방송 연예계에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방송 프로그램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특히 음악 방송은 노래하는 뮤지션들이 없으면 방송을 내보낼 수 없습니다. 방송국이 먹고 사는 것은 그들이 있기에 가능합니다. 요즘은 유행처럼 방송국 여기저기에서 다양한 아이템으로 노래 경선을 하고 있답니다. 하여 방송국 관계자들에게 한마디 던지고 싶습니다.

거대 기업이 운영하는 방송국이 방송 출연하는 뮤지션들에게 교통비조차 제대로 줄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가요? 내가 사는 산막에서는 매년 단 한 푼의 정부 지원금이나 후원사 없이 '배부른 잔치'라는 작은 음악회를 열고 있습니다(작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취소). 잔치에 참여한 관객들의 자발적 후원으로 뮤지션들에게 하루 종일 먹고 마실 것을 제공하고 최소한의 교통비까지 챙겨 줍니다.(관련기사 / 모든 것이 무료, 배부른 잔치에 초대 합니다 http://omn.kr/1iofo)

방송국 관계자 여러분! 10만 원짜리 월세로 사는 이곳 산막살림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방송국의 필요에 따라 십수 차례, 서울을 오가며 네 차례의 방송 공연에 3만원이 뭡니까? 어지간히 먹고 살만 하면 방송에 출연하는 무명의 가난한 뮤지션들에게 최소한의 교통비라도 꼬박꼬박 챙겨주세요.
 
 

1966년 9월 3일부터 이곳 터(지리산함양시장 제2주차장 부근)를 지키고 있는 맛나식당.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담고 있는 맛나식당의 문이 열리며 한 남성이 들어온다.

"안 보이데." 맛나식당의 최고 손맛을 자랑하는 유정임(85세) 어르신이 짧게 말을 던진다. "요 며칠 좀 바빴심니더" 문 앞 테이블에 서슴없이 앉는 남성의 테이블에 소주 한 병이 놓인다.

"그거 주라." 할머니가 며느리에게 눈짓 하며 말하자 정순점(61)씨는 냉장고에서 꺼낸 가오리를 접시에 담아 "어머니가 꼭 챙겨놓고 오시면 드리라꼬" 하며 건넨다.

남성은 메뉴판에도 없는 가오리를 안주 삼아 어중간한 시간을 달래며 20년 단골의 위엄이 어떤 건지 말없이 보여준다. 맛나식당을 운영하는 정순점씨는 이곳의 네 번째 주인이다. 순점씨는 맛나식당을 올해로 21년째 운영하고 있다.

"장사라꼬는 생각도 안 해보고 집에서 살림만 살았지예. 어머니가 해 보자케서 시키는 대로 하면서 지금껏 배우고 같이하고 있어예."
 

유정임 여사는 20여년간 식육점을 운영하다 며느리와 같이 맛나식당을 인수했다. 맛나식당의 최고인기메뉴는 고추장삼겹살. 초벌구이로 나온 삼겹살을 연탄불에 구워먹는 맛은 가히 일품이다. 특히 아는 사람만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야외연탄구이 테이블은 고기맛에 분위기까지 양념해서 먹을 수 있다.

"할매가 고기 쓰는 거 보면 놀랠 낀걸, 삼겹살 두께가 고마 똑같애." 이런 추임새는 단골의 역할이란 듯 남성이 불쑥 말을 보탠다.
 

맛나식당의 고추장은 익히 소문이 자자해 돈을 주고 사겠다는 사람도 있다. 1년에 몇 번씩 담아내는 고추장 비법은 유 여사가 며느리에게만 전수해준다. 식당 뒤 장독대엔 직접 담근 고추장, 된장, 간장이 깊은 맛을 내고 있다.

"요까지 온 김에 내가 보여줄라꼬, 고추장 색깔 한번 보소." 유 여사를 따라 장독대로 갔던 기자는 손가락으로 고추장을 찍어 맛보고 싶은 유혹을 꾹 참는다.

맛나식당의 모든 음식은 며느리 순점씨가 만들지만 비법은 시어머니에게서 배웠다. "어머니가 다 가르쳐주시지예, 연세가 있으셔도 오래 같이했더니 눈짓 손짓으로 다 알아들어예."

모든 음식, 반찬을 직접 만들어 내니 손님이 몰려올 땐 시어머니 도움 없인 순점씨 혼자 힘들다. 특히 점심을 매일 이곳에서 해결하는 단골이 있어 반찬을 때마다 바꿔야 하니 더욱 신경이 쓰인다. 내일 반찬은 뭘로 할지 순점씨는 잠들기 전까지 고민하곤 한다.
 

맛나식당을 운영하며 삼남매도 키운 순점씨는 함양에 사는 딸 덕분에 손주도 매일 만나니 좋다. "우리 말고 요놈도 찍어주소" 증조할머니의 손길이 익숙한 듯 얼굴을 쓰담는 유 여사의 손을 비비는 한결이. "3학년짜리가 노래를 어찌나 잘하는지. 문화원 행사에서 노래를 불러 금상을 받았어예." 할머니의 자랑이 익숙한 듯 한결이는 웃음으로 모든 대답을 대신한다.

할머니가 해 주는 음식은 뭐든지 맛있다는 한결이는 "동그랑땡도 맛있고 본적도 없고 이름도 모르는 것들이 다 맛있어요." "나물보고 글카는기라..." 본적도 없고 이름도 없는 음식, 나물은 손님 상에 내는 음식 중 하나다. 손주 입에도, 손님 입에도 들어가니 순점씨의 음식에는 차별이 없다.

"한 겨울에 먹는 쑥국도 빼모 안 되지예, 고기 묵고 국수 묵는 거 까묵으모 안 되고..." 이쯤되면 이 남성은 맛나식당 홍보대사로도 손색없는 진정한 단골이다. 겨울에도 쑥향이 그대로 살아있는 쑥국은 맛나식당의 별미다.

"쑥을 캐 오는 할매가 있어예. 잘 저장했다가 겨울에 내놓으모 제철 때보다 향이 찐하다꼬 손님들이 좋아해예." 잔치국수를 먹겠다면 고추장삼겹살 한 점은 남겨놔야 한다. 국수 양에 놀라지 말고 고기를 얹어 먹으면 맛이 두 배가 된다.
 

처음 왔던 손님이 맛나식당 맛만 보면 다른 손님을 데리고 온다. "잘해주니 또 오시지, 또 오시니 더 잘해주야지. 어머니 없이는 안 돼요. 백살까지 사셔야지. 그때까지만 꼭 같이 할라꼬예."

맛나식당 한가운데 놓인 연탄 아궁이 속에는 연탄불이 뭉근하게 타고 있고 순점씨는 저녁 손님이 몰려오기 전 장사 준비를 위해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할아버지 '다감'이 작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손녀가 키우는 물고기 '누리'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도움을 청했다. '다감'으로 지으면 어떠냐고 했더니 대 만족이다. 멀리 미국 텍사스에 있는 손녀가 감사 메시지를 보내왔다.
 
 
내 작은 애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을 때다. '치와와' 종이었던 것 같다. 조그맣고 눈자위가 거멓고, 털이 잔잔하게 윤이 나던 앙증맞은 그런 강아지였다. 이름은 다롱이. 어머니가 지은 이름이다. 목에 방울을 달았다고 해서 다롱이. 다롱다롱 다롱이...

온 식구가 다롱이에게 정이 들었다. 아이들, 아내, 어머니까지 다롱이만 찾았다. 꼬리를 흔들고 반기는 다롱이... 학교 다녀오면 다롱이가 무사한가. 아프지는 않는가. 다롱이만 살폈다.

비 오는 어느 날, 다롱이가 잠깐 외출했다가 지나가던 차에 사고가 나고 말았다. 작은 애는 다롱이를 안고 동물 병원으로 달렸다. 하지만 숨이 멎은 뒤였다. 울고불고 하던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뒷산에 고이 묻어 주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 뒤로 동물에게 정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아내나 애들이 동물을 키우려고 하면 한사코 반대다. 정이 들면 떼기 쉽지 않은 것이 이유다. 사고를 당하면 안정이 쉽지 않다. 그러나 지금은 다양한 동물이나 물고기 등을 키우면서 색다른 즐거움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더군다나 어린아이들은 호기심이 많을 때다. 희망과 위안의 동기가 될 수도 있다. 나의 걱정은 지나친 기우가 아니었을까.

비대면 시대가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더욱 심각하다. 신경이 쓰인다. 작은 애가 집에만 있는 손녀에게 애완용 물고기를 선물한 모양이다. 손녀는 어항 이름을 'Lynn's aquarium'로 지었다. 세 친구들이 들어왔다. 기린, 누리, 난주다.

"기린과 난주는 베프 사이에요."

손녀는 물고기가 꼬리를 흔들며 헤엄치는 모습에 푹 빠진 모양이다. 먹이도 주고 물갈이도 해주면서 관찰하기 시작했다. 기린과 난주가 같이 붙어 다니는 것을 보니 베프 사이라는 것이다. 하긴 산란기가 되면 수컷이 암컷을 따라다니며 유혹한다는데...

그런데 기린이 죽고 말았다. 손녀는 단짝인 난주가 걱정이 된 모양이다. 새로운 친구 다정이를 입양하고 누리 이름도 다감으로 고치고 환경을 바꿔 줬다. 비대면 시대를 극복하는 지혜를 스스로 터득한 듯하다. 아픔을 느끼고 더욱 단단해지면서 성장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