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기사
더존비즈온, Japan IT Week에서 AX 솔루션 선보인다
더존비즈온(대표 김용우)이 4월 23~25일 일본 도쿄 빅사이트에서 열리는 ‘Japan IT Week’에 참가해 다양한 기업용 AX 솔루션을 선보인다. 일본 법인 ‘제노랩’을 통해 올해부터 본격적인 글로벌 시장 확대에 나선 가운데 일본 최대 규모의 IT 산업 전시회에서 전 세계...

작년 1월 중순 무렵, 가족들 사이에 처음으로 단체 대화방이 생겼다. 카톡방을 만든 방장은 천홍씨와 귀녀씨의 첫째 아들, 나에게는 큰삼촌이었다.

종종 SNS에 돌아다니는 가족 단체 대화방에서의 화목한 에피소드와 캡쳐화면들을 보면서, 나는 나에게도 이런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먹고 살기 바빠서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갑작스레 만들어진 대화방이었지만 그 소식이 누구보다 반가웠다.

다만, 다들 바쁘게 지내는 탓에 소소한 얘깃거리가 자주 오가지는 않았다. 주기적으로 병원에 다니시는 할아버지의 건강 소식을 전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큰삼촌은 3남매 중 맏이로, 늘 다정하고 헌신적인 성격이다. 10년이 넘도록 나의 조부모님(천홍, 귀녀)을 모시며 밤낮으로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을 만큼 어딜 가도 '효자' 소리를 듣는 듬직한 큰아들이다.

1942년에 태어난 만 82세, 내 외할머니 귀녀씨 역시 그런 큰아들이 고맙고도 짠하다고 말씀하신다.

"자기 식구들 먹고 살기도 힘든데, 우리까지 신경 쓰려니 얼마나 고생이야. 남들은 다 효자 뒀다고 부러워하는데, 어떨 때 보면 짠하고 안됐지."

만 나이가 도입되지 않았다면 진즉 앞자리가 바뀌었을 큰삼촌은, 여전히 일과 가족의 중심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하지만 삼촌에게도 세월은 비껴갈 수 없는 존재였다. 평소 고질병이었던 허리 통증이, 작년에 결국 추간판 탈출증(허리디스크)으로 진행되면서 한동안은 걷는 것도 어렵게 되어버린 것이다.

든든하고 유일한 가족 버팀목에 금이 간 상황이니, 모두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삼촌은 애써 금을 메꾸며 다시금 일어서야만 했다.

그런 가족들에게 더 이상 짐이 되고 싶지 않았던 할머니는, 어렵게 시작한 인생 2막의 문을 일찍 닫고자 하셨다. 80대 중반에 가까운 할머니는 23년 3월부터, 나와 함께 유튜브 <귀한 녀자 귀녀 씨>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관련 기사: 겁나면 "까짓것" 외치라는 80대 유튜버 외할머니 https://omn.kr/2aalh ).

전체 내용보기
4월이 되면서 이곳 경북 북부지역에도 개나리가 꽃을 피우고 있다. 아직 꽃망울을 머금고 있는 녀석도 있지만 곳곳에서 노랗게 제 세상이 왔노라고 알린다. 그도 그럴 것이 최고기온이 15도를 넘는 등 계절의 순환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계절의 순환만큼 어김없이 찾아온 게 또 있다. 해마다 봄철이면 전국을 벌겋게 물들이는 산불 또한 그렇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애원하고 호소하건만 봄날 온 산천을 들썩이게 하는 산불은 정말 원망스럽다. 산불로 생명을 잃고 전 재산을 다 날린 주민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이곳 안동과 의성, 청송, 영양, 영덕의 산불 피해민들은 아직 돌아갈 집조차 없다. 논밭, 과수원을 잃은 사람은 집은 물론 직업까지도 잃어버렸다. 머리 하나 누울 자리가 없는 데다 일할 터전을 잃었으니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정부에서 보상에 나섰지만 평생 일군 터전을 어떻게 되살릴 수 있겠는가? 대부분 70~80대 노인들인데 여생을 컨테이너에서 살아갈 수도 없다. 아무리 쓰러지는 집이라도 내 집이 최고라는 어르신들의 앞날이 걱정이다.

전체 내용보기
"저기요, 핸드폰 좀 빌릴 수 있을까요?"

횡단보도 앞에서 처음 보는 할머니에게 다급하게 말을 걸었다. 할머니가 내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신다. 주저하는 할머니보다 먼저 반응한 건 뜻밖에도 옆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아주머니였다.

"어머님, 절대 빌려주지 마세요! 핸드폰으로 뭔 짓을 할 줄 알고 빌려줘? 아주 나쁜 년 같으니라고! 그냥!"

그제야 내가 얼마나 오해받기 쉬운 모습인지 깨달았다. 검은 잠바에 검은 마스크, 그리고 검은 모자까지 눌러쓴 모습. 내가 생각해도 수상해 보이는 차림새였다. 그런데 나는 절대 나쁜 년은 아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불과 몇 초 전, 그러니까 아빠 차에서 내리기 전까지만 해도 세상 무해한 사람이었다.


전체 내용보기
올해 봄은 정말 요란하게 오는 것 같다. 3월은 겨울옷이 들락달락하며 부산스럽게 지나갔다. 올해는 매화가 한창 피어야 할 시기에 봉오리를 꼭 닫고 있어 상인들의 애간장을 녹였다. 이상기온 현상은 봄꽃들에게 가장 혼란을 준다. 지금은 만발한 매화와 개나리, 목련이 앞다퉈 봄을 수놓고 있다. 일찍 피기 시작하던 목련이 요즘 며칠 동안의 낮은 기온으로 얼어버려 누렇게 떠 버린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래도 봄철에는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 매화축제와 벚꽃축제라는 이름을 빌려 겨우내 억눌렸던 가슴을 활짝 펴게 된다. 산에는 진달래가 모진 겨울을 견디고 나와 붉게 피어 있고, 주택가의 작은 울타리에도 개나리가 노랗게 물들이고 있다. 진달래와 개나리가 봄을 재촉하여 오고, 벚꽃이 피기 시작하면 봄은 절정에 이른다.

벚꽃은 제주도에서 3월 20일을 시작으로 춘천까지 하루 약 30킬로미터씩 북상한다. 벚꽃 개화는 기온이 가장 중요하다. 평균 기온이 10도 이상 유지되면 꽃이 피기 시작한다. '서울에 벚꽃이 피었다'고 말하려면 서울기상관측소 내의 표준목에 3송이가 피어야 한다. 여의도에서는 2000년부터 별도로 표준목을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국회의사당 북문 건너편 수목관리번호 118번, 119번, 120번이다. 이 벚나무 한 가지에 각각 3송이 이상이 피어야 '여의도에 벚꽃이 피었다'고 말한다.

벚꽃은 종류가 다양하고 종류에 따라 피는 시기가 다르다. 벚꽃이 피고 나면 이어서 왕벚꽃이 핀다. 우리나라에 가장 많이 심어져 있고, 송이가 탐스러워 좋아한다. 왕벚꽃이 지고 나면 겹벚꽃이 더 탐스런 모습으로 핀다. 종류 별로 벚꽃을 심어두면 최소 한 달 이상을 즐길 수 있다.

개화란 꽃봉오리가 피었을 때를 말하는데 한 나무에서 한 가지에 세 송이 이상이 피었을 때를 말한다. 개화가 시작되면 1주일 뒤에 만개가 된다. 만개는 80% 이상의 꽃이 피어있을 때를 말한다. 만개는 기온, 강수량, 일조량, 품종에 따라 달라지지만 요즘은 기후 변화로 점점 빨라지고 있는 추세이다. 만개 후 3~4일이 지나면 꽃잎이 흩날리기 시작하는 벚꽃비가 내린다. 벚꽃 피는 시기 중 일주일을 놓치면 그 한 해는 벚꽃 구경도 못하고 쏜살같이 지나가 버릴 수도 있다.

전체 내용보기
북극은 어디까지일까요? 북위 66.3도 이북의 육지와 바다, 하늘 등을 말합니다. 우리는 뉴스를 통해 북극의 해빙이 녹아내리고 있고 영구동토층이 녹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지난 여름 제주바다에는 28도 이상의 고수온 경보가 61일째 지속됐고, 서귀포 앞 바닷속에는 녹아내린 듯 형태가 일그러진 연산호들이 나타났습니다. 북극해도 녹아내리고 제주바다도 녹아내리는 안타까운 상황에서, 북극해의 사람들과 제주바다의 사람들이 함께 만났습니다.

알래스카, 워싱턴 DC, 캐나다에서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해양보호운동을 하는 활동가 8명이 2025년 3월 1일~3월 9일까지 제주를 찾았습니다.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은 이들의 체류기간 동안 이들과 함께 제주바다에 직접 들어가 보고, 해녀들과의 간담회 자리를 마련하고, 해양포럼을 열어 시민들과 대화하는 프로그램 등을 진행했습니다.

제주에 온 북극해 사람들 중 캐나다 북부에 거주하며 환경단체 '오션스 노스(Oceans North)'에서 활동하는 이누이트 원주민 힐루 타쿠나(Hilu Tagoona 이하 힐루)를 지난 3월 8일 제주의 섬 마라도에서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마을 환경 망치는 우라늄 채굴... '불허' 결정은 받아냈지만


-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재 힐루가 살고 계신 곳은 어디인가요?

"현재 캐나다 북부에 있는 누나부트(Nunavut) 주에 살고 있습니다. 대대로 누나부트에서 오래 살아왔는데 제가 태어난 곳은 캐나다의 위니펙이란 곳입니다.

예전에는 집에서 조산사를 불러 아기를 낳았지만 의사가 있는 병원에서 아기를 낳아야 한다는 법이 생기면서 저희 엄마는 집에서부터 1,600킬로미터 떨어진 남쪽 지역에 있는 위니펙에 와서 저를 낳았습니다. 누나부트의 면적은 캐나다의 약 20%를 차지하는 지역이긴 한데 인구는 약 4만 2천 명으로 매우 적은 곳입니다."


- 힐루가 활동하고 있는 '오션스 노스(Oceans North)'는 어떤 일을 하는 단체인가요? 거기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오션스 노스'는 캐나다와 그린란드 지역의 해양 및 북극 생태계를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춘 환경보호 단체입니다. 이누이트 원주민 공동체와 과학자들이 협력하여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활동, 지속가능한 어업, 그리고 해양보호구역 확대 같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2019년부터 이사로 활동했고요. 2022년 1월부터는 스텝으로 결합해 일하고 있습니다."

- 기후위기, 환경과 해양보호 같은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제가 사는 지역인 누나부트에 광물인 우라늄을 채굴하려는 이슈가 발생했어요. 저는 이것을 막아내려고 주민들과 함께 단체를 만들어 활동했는데 이것을 통해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 누나부트의 우라늄 채취 반대 활동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전체 내용보기

여수로 온 4.3의 생존자

"저희 엄마는 아버지가 사는 여수까지 안 따라오려고 했었나 봐요. 근데 뭐 임신한 몸으로 어쩔 수가 없어 가지고 여수로 따라와서 살게 됐죠. 여수에 와서도 제주에 대해서는 정말 입도 뻥긋 안 했어요. 그러다가 연세가 많이 드신 뒤에야 제주 얘기를 조금씩 하셨지요.

그제야 엄마가 여수로 오기 이전에 결혼한 적 있었다는 사실을 저희도 알게 된 거죠. 저희 딸들이 엄마 곁에 둘러앉아 용기 있게 물어봐 드리고 얘기를 들어 드리고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저희 엄마가 엄청 얘기하기 좋아하고 머리도 비상하고 이러신 분이셨어요."

- 그러면은 어머님이 몇 년도에 여수로 나오신 거예요.

"제주 4.3이 있고 난 다음에 제 아버지는 제주를 갔더라고요. 나는 그때 4.3 그 진압군으로 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에요. 6. 25 지나고 제주도로 군대를 갔어요. 배치된 곳이 제주도인 거예요. 당시 여수 사람들은 배 타면 제주가 가까우니까 제주도로 군대를 갔나 봐요. 결혼한 상태였는데 군대를 갔더라고요."

- 그때는 다 결혼해서 군대 가고 그랬어요.

"4.3이 1948년이잖아요? 여순사건도 1948년도이고."

- 그러면 아버지가 한국 전쟁기에 제주에 가신 거예요?

"아버지는 그랬죠. 정확한 해는 모르나 6. 25 나고 간 것 같아요."

- 어머님이 진짜 기적적으로 살으셨네요. 산속에 들어갔다 내려왔는데도...

"엄마 말이 총부리 앞에 여러 번 섰다 하더라고요."


온 가족을 지켜낸 어머니

"근데도 엄마가 이렇게 여수에 와서 사시면서는 제주말을 전혀 안 쓰고 사셨어요. 사람들이 부를 때는 다 제주도에서 온 줄 아니까 '제주댁, 제주댁' 하는데도 제주말을 일부러 안 쓰셨지요. 그 사람들에게 엄마 표현대로 한다면 손가락질 당할까 봐 그랬죠. 우리한테도 그렇게 엄격하시고 지나치게 엄격하셔서 엄마를 무서워했어요. 그러니까 저는 늘 아버지만 따라다녔어요.

전체 내용보기
그립다는 것, 보고 싶고 만나고 싶다는 것은 어쩌면 마음 안에 숨겨 놓은 보석 같은 감정인지도 모른다. 때론 삶에 지치면 찾아가 따뜻한 온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부모 자식도 그런 관계일 거란 생각을 한다. 그립고 또 그리운 애달픈 관계가 부모 자식의 관계가 아닐지.

자식이 찾아온다는 걸 말리는 일은 아프다. 얼마 전 엄마 아프다고 찾아오겠다는 딸을 만류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였다. 엄마를 찾아 갈 수도 없는 딸은 "엄마, 며칠 전 갑자기 새벽에 눈을 뜨고 생각하니 갈 곳이 없는 거야, 그래서 유 서방 이랑 새벽같이 속초로 달려가 바다 만 보고 점심만 먹고 돌아왔어" 한다. 그 말이 나를 아프게 했다.

딸이 힘들구나, 사업을 하고 있는 사위가 힘든 모양이다. 세상이란 언제나 전쟁 속, 그 속에서 살아 낸다는 것은 만만치 않다. 어디든 마음을 기대고 살아 갈 힘을 얻어야 한다. 세상에 그랬구나, 그때 바다를 보면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딸은, 얼마나 마음이 시렸으면 어디라도 마음을 기대고 싶었으면 새벽같이 바다를 보러 달려갔을까. 누가 반겨 준다고, 그 마음을 헤아리는 내 마음도 시리고 아팠다. 사람 사는 일은 모두가 아프다. 아픈 데서 피지 않은 꽃이 어디 있겠는가. 산다는 것은 고통과 동반하다. 그것이 인생인 것이다. 삶이란 고통이 천천히 꽃처럼 피어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고해다. 수많은 걸림돌과 장애물이 앞을 가리고 있다. 그걸 뚫고 살아가야 하는 일, 참 산다는 것은 만만치 않다. 엄마인 나는 그걸 직감한다. 자식들에게 언제나 촉을 세우고 살고 있다. 엄마는 어쩌면 등 뒤에도 눈이 있다는 말이 맞는 말일 것이다. 세상과 이별할 때까지는.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