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제 시간을 팔 수 있게 됐을 때는 2013년이었습니다. 스무 살이었던 제가 팔게 될 한 시간은 4860원으로 책정됐습니다.

# 4860원이지만 5000원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가 돈이 필요했던 저는 안산의 작은 공장에 찾아갔습니다. 최저임금 시급보다 무려 140원을 더 쳐주는 그 공장은, 어느 유명한 전자회사에 부품을 납품하는 곳이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하게 될 일은 불량품을 골라내고 부품 개수를 맞춰 포장하는 일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중국, 필리핀계 여성들이 많았습니다. 제 시급이 5000원인 것을 알자 필리핀 언니는 입을 삐죽 내밀고 공장주를 흘겨보았습니다. 아마 저보다 적은 시급을 받고 일을 하는 듯했습니다. 어린 저를 유독 살갑게 대해줬던 그 언니에게 최저임금의 존재를 차마 알리지 못했습니다.

공장주는 종종 아침에 출근한 아르바이트생들을 모두 돌려보냈습니다. 일이 없다며 집으로 돌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귀찮은 듯 허공을 보며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는 그 표정은 중세시대에 노예를 부리는 권태로운 귀족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공장주에게는 우리의 사라진 아침 시간과 하루 일당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충분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일은 번번이 계속됐지만, 저는 화를 내지 못했습니다. 밉보였다간 다음 주에 출근하지 못하리라는 예감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비굴함을 배웠습니다.

# 5210원
 
2014년, 21살의 한 시간은 350원이 올라 5210원이 됐습니다. 저는 친구의 소개로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뷔페식 레스토랑에서 근무하게 됐습니다. 자체규정상 초반 3개월은 수습기간이므로, 최저시급에서 500원을 떼어 시급 4710원으로 일당이 계산됐습니다. 저의 시간은 자체규정이라는 명목하에 2013년보다 가치가 낮아졌습니다.

그곳의 계산법은 아주 이상했습니다. 유니폼을 갈아입고 외모를 단정히 하기 위해 15분 일찍 출근해야 했지만, 출근 지문만은 정시에 찍어야 했습니다. 일을 하기 위해서는 검정 구두와 정장 바지, 화사한 색깔의 립스틱, 머리망이 필요했지만 그것은 모두 제 돈으로 마련해야 했습니다.

그곳은 3년이 지나 제게 미지급된 임금이라며 30만 원 정도를 입금했습니다. 저도 모르는 새에 누군가 싸워 받아내준 돈이겠지요. 저와 친구는 마치 공돈이 생긴 기분이라며 깔깔 웃었지만, 그 돈이 우리가 실제 근무한 것에 비해 적게 책정됐다는 사실은 굳이 서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 6030원이지만 5000원
 
 
2016년 23살의 최저임금은 시급 6030원이었습니다. 동네의 작은 편의점은 손님이 없다는 이유로 시급 5000원을 제시했습니다. 일자리가 아쉬웠던 터라 그렇게 5000원에 제 시간을 팔았습니다.

편의점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심심하면 편의점에 찾아와 여자 아르바이트생을 괴롭히는 주정뱅이 아저씨들도 있었습니다. 그중에 자주 오는 민머리 아저씨가 있었는데, 그 아저씨는 자기가 이 빌딩 주인이라고 했습니다. 어쩐지. 사장님이 그에게 매우 상냥했던 것 같습니다.

그 아저씨는 제가 대학생인 것을 알고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러고는 말했습니다.

"너 나랑 데이트하면 대학 졸업까지 시켜줄게."

머릿속이 아득해졌습니다. 너무 무서워 손이 떨렸습니다. 눈물이 나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웃는 표정을 유지하려 노력했습니다. 분위기상 그래야 할 것만 같았습니다. 아저씨는 생각해보라며 제게 비타민 음료를 건넨 후 편의점을 나갔고, 저는 일주일 후 편의점을 그만두었습니다.

# 6470원
 
2017년 24살의 한 시간은 6470원이었습니다. 장거리 통학에 지쳐 있던 저는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시작했습니다. 싱글 침대 하나가 간신히 들어가는 조그만 공간의 방세는 보증금 700만 원 에 월세 46만 원. 보증금은 부모님이 마련해주셨습니다.

저는 방세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평일은 호프집, 주말은 약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잘 봐주신 교수님이 일감을 주셔서 한 주에 3개의 일을 병행하기도 했습니다. 잠을 못 자 눈은 충혈되고 피부는 푸석해졌습니다.

피곤한 눈으로는 좋아하는 책도 읽을 수 없었습니다. 이때는 속으로 중얼중얼 욕만 했던 것 같습니다. 수업시간에는 졸았고, 근무지에서는 웃었습니다. 그렇게 일상을 버텨내는 사이 학점은 엉망진창이 됐고, 저는 국가장학금을 놓쳤습니다.

일하며 모은 돈은 모두 등록금과 대출이자로 나갔습니다. 몹시도 춥던 그해 겨울, 큰맘 먹고 패딩 점퍼를 마련하고 나니, 제 손에 남은 돈은 30여만 원 남짓이었습니다.
 
# 7530원이지만 7600원

올해 저의 한 시간은 7530원입니다. 인심 좋은 호프집은 70원을 더 쳐주어 7600원에 제 한 시간을 샀습니다.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장 부러웠던 사람들은 제 또래의 손님들이었습니다. 그 손님들은 자신의 시간을 팔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 쓰고 있었습니다.

친구들 중에도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 아이들이 꽤 있습니다. 그 친구들은 '용돈'이라는 선택지가 있습니다. 저는 고를 수 없는 선택지가 그 친구들에게는 당연하단 듯이 장착돼 있습니다. 일주일 내내 일하는 제가 안쓰럽다는 듯이 웃는 친구가 얄미웠습니다.
 
2학기가 시작되자 호프집은 갑작스레 문을 닫았고, 저는 그렇게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한 학기에 150만 원까지 빌릴 수 있다는 한국장학재단의 생활비대출 버튼이 저를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남아 있는 학자금대출 원금에 차곡차곡 쌓이는 이자가 저를 압박했습니다. 저는 생활비대출 버튼 대신 부모님께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통화 버튼을 눌렀습니다.

시간을 파는 사람
 
성의 없는 공장주의 태도, 대기업의 부당한 갈취, 징그러운 아저씨의 제안, 피곤에 찌든 일상. 성인이 된 제가 힘든 시간들을 겪은 이유는 제가 시간을 파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한 시간에 대해 저를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가격을 매깁니다. 가격을 매긴다고 그 돈을 보장해주는 사업주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늘 일을 하고 있는데 남은 것은 학자금대출뿐입니다. 대단한 것을 바라 대학에 온 것이 아닌데, 어느새 졸업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 됐습니다. 제가 시간을 파느라 놓친 봉사시간, 영어점수, 자격증을 가진 친구들은 좋은 곳에 취직할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저의 시간을 사준다는 곳이 있으면 썩 내키진 않지만 하는 수 없이, 그렇게 또 시간을 팔겠지요.
 
저는 오늘도 꼬질꼬질한 차림으로 계산대 앞에 섭니다. 꼬질꼬질한 시간을 보내고 있노라면, 온몸의 세포가 다 꼬질꼬질해지는 기분입니다. 눈은 풀리고, 입꼬리는 내려가며, 상냥한 마음씨는 도망갑니다. 과거와 현재의 꼬질꼬질한 시간들이 싫지만 앞으로의 시간들도 꼬질꼬질 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기에 깊은 한숨을 내뱉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누군가 정해놓은 가격에 저의 시간을 팔아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얼마만큼의 시간을 팔아야만 저는 제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요? 

2019학년도 '수능'이 치러지는 집 근처 유성고등학교를 바라보는 마음이 각별하다. 지금 이 시간 수험생들은 점심을 먹고 다시 시험지를 받았을 터, 그동안의 공부한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붇고 있는 집중과 긴장의 교실!
 

학교 주변 도로와 동네 골목도 오늘은 너무 조용하다. 학교를 빙 둘러 정문과 후문, 그리고 쪽문으로 드나들 수 있는 통로는 '출입통제'의 글로 표시를 해놨다.
 

미세먼지가 보통인 오늘, 그래도 큰 추위가 아니라 다행이다. 후문엔 그동안 노란색 학원차가 밤 늦게까지 야자하는 학생들을 기다렸는데, 오늘은 노란차도 쉬겠지.
 

학교 정문 펼침막에 걸린 글의 '감동'은 무엇일까. 수능대박이 감동이 아니라 아이들 꿈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이 '대박'인 날이 되길 기대해본다.
 

"얘들아, 시험보느라 정말 애쓰고 있구나. 동네 아줌마가 응원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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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018년이 막바지에 다다르며 시간의 속도를 절감하고 있었는데, 추워진다 싶더니만 벌써 오늘이 수능이란다.
 
내가 졸업한 후로 입시 제도가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수능을 인생의 가장 큰 관문으로 여기며 긴장하며 시험을 치르고 나오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나는 수능을 처음 보았을 때, 너무 긴장한 나머지 평소보다 낮은 성적을 받았다. 눈앞이 새까매지는 느낌을 받으며 시험을 보았고, 시험장에 나와 부모님의 얼굴을 마주했을 땐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고는 수능의 여파로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은 감정도 느끼며 우울감과 걱정으로 시간을 다 보내기도 했다.
 
딱 10년이 지난 지금은 대입이 인생에서,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뻗어있는 무수한 갈래의 길 중에 한 갈래의 길일뿐임을 알지만 그땐 알지 못 했기 때문이다.
 
물론 노력한 만큼 성적을 받게 되거나, 예상보다 괜찮은 성과를 거둘 수험생들도 많겠지만 상대평가의 특성상, 좌절감을 안게 되는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런 이들 중 그때의 나처럼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은 감정까지 느끼며 우울해할 이들에게 그 단 한 번의 시험이 내 인생의 수많은 가능성을 결정짓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얘기해주고 싶다.
 
물론, 수능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인생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무수한 방향으로 움직이기를 반복한다.
 
예컨대 나는 교사가 되고 싶어 사범대에 진학했지만 결국 지금은 그와 상관없이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다. 항공운항과를 졸업했지만 영어 강사를 하고 있는 친구, 공대에 진학했지만 플로리스트가 된 친구, 대학에 가지 않고 취직을 했다가 사업으로 성공한 친구 등 수많은 주변인들 중에서도 생각지 않았던 진로를 찾아 인생의 방향을 바꾼 이들은 무수히 많다.
 
사실 가장 아쉬운 것은, 총 12년간의 정규교육과정 속에서 삶에 여러 방향이 있고, 그 방향을 찾아가는 방법에도 여러 방향이 있다는 사실을 별로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만 계속 해서 반복되는 많은 시험들과, 가장 큰 관문의 시험인 수능시험이라는 경쟁 속에서 상대적 우위를 차지해야 한다는 목표의식만 학습하게 되기에 나는 수능을 치른 후, 패배자라는 느낌에 좌절감을 맛봤던 것 같다.
 
수시 비중이 커지고 정시 비중이 축소되는 것에 대한 공정성 논란, 최근 발생했던 성적 조작 사건 등 사회 속 현실이 불공정하다는 것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 역시 노력한 만큼 시험 성적을 얻지 못한 수험생들을 힘들게 할 것이라 생각한다.
 
궁극적으로는 교육 현실이 변화해야 할 일이다. 다양한 역량이 고루 평가받을 수 있는 건강한 경쟁의 공정한 발판을 마련해야 할 것이며, 교육과정 동안 경쟁만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자아를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나아갈 여러 방향들을 모색할 기회를 주는 교육 환경 역시 마련되어야 한다.
 
하지만 변화를 계속해서 요구해야 하는 것과는 별개로, 교육현실을 당장 변화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우선, 현재의 상황에서 시험을 치르고 나와 좌절해있을 어린 시절의 나와 같은 이들에게 현실적인 이야기로 격려를 보내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지금 무수한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길목에 서 있는 그들이 당장의 성적으로 모든 미래가 결정되었다 생각해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경우가 정말로 없기를 바란다.

당장 그때의 성적이 만족스럽지 못해도,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할 성적이 나온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가진 역량을 찾아 열심히 가꾸어낸다면 원하는 꿈에 가까이 다가갈 기회는 다른 여러 방향으로도 얻을 수 있음을 나 역시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원하는 만큼의 성적을 성취하지 못한 것은 긴 인생에 있어, 절대 '실패'가 아니다. 이후의 인생에서 어떤 삶을 살지, 무엇을 할지는 지금 주어진 시험성적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이건 상투적인 위로의 말이 아니다. 그 시절, 아까운 시간을 눈물과 좌절감으로 보내버린 나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지만, 그 시절 나에게는 닿을 수 없는 이야기므로 나 대신 그 시절의 내 나이에 머물러있는 중인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가 진심으로 전해지기를 바란다. 
 

오늘(15일) 아침, 부랴부랴 출장을 왔습니다. 아침부터 공기가 싸늘하다, 싶더니... 눈 앞에 신기한 장면이 나타난 거예요. 오~~ +_+
 

잘 보이시나요? 해가 비치는 바다 위로,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바다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처음 봤거든요. ^^
 

갑자기 싸늘해진 날씨 때문인가, 산에서도 들에서도 새벽의 온도차가 만들어낸 신비한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수험생 여러분, 편안한 마음으로 시험 잘~ 치르시길 바랍니다. 가족분들도 응원, 화이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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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뭔데?"

술자리에서 누군가 물었다. 건강이 좋지 않아 그 자리에 불참한 친구 얘기를 하다 '행복론'으로 번졌다.

"건강이 행복이지 다른 무엇이 필요한가."

옆 친구가 큰 소리로 말했다. 이런 자리에 참석하여 술 한잔 하며 얘기 나누고 같이 어울리는 것이 행복인데, 건강이 없으면 어찌 그럴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이다.

"기준을 낮추는 것이 행복이지."

다른 친구가 한마디 했다. 아무리 건강해도 자기보다 잘 입고 잘 먹고 더 멋진 집 사는 사람 쳐다보고 살면 행복하겠느냐고 묻는다. 그러니 쳐다보는 기준을 낮추어야 행복하다는 논리이다. 요즘 유행하는 라이프 스타일.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으로 이어진다. '나만 즐기는 남이 뺏어갈 수 없는 소확행'은 내 마음이 기준이다. 이야기도 마음대로 흐른다.

2년 전 대전서 열린 인생 나눔 워크숍 때 주제질문이 생각난다. '일상(日常)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5개 말해보라'였다. 누군가는 집안 청소 끝내고 커피 한잔 마실 때, 화분 물줄 때 행복하다 했다. 또 유등천 천변 걸을 때, 집 근처 도서관에 들러 책 읽을 때, 친구에게 문자 보낼 때를 말하고 공원 흙길 산보할 때, 책 보면서 낮잠 잘 때라는 사람도 있었다.

대개 40~50대인 인생 나눔 멘토들 얘기다. 나도 비슷했다. '차 마시며 아침신문 읽을 때, 매주 한 번 서당에 가서 한문 공부할 때, 밤늦게 일기 쓸 때, 저녁잠 들기 전 10여분 침대서 뒹굴 거릴 때'였다. 소확행은 자잘한 장작개비처럼 많을수록 좋다. 그래야 생각날 때마다 모닥불처럼 조그만 행복을 피워 올릴 수 있다. 불행에서 빠져나올 기회도 많아진다.

한때 소확행을 키우면, 통나무 장작이 오래 타듯 행복이 길어지지 않을까 상상했었다. 아침신문 읽기를 2시간, 저녁 잠들기 전 명상을 20여 분으로 늘여보았다. 오히려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책보며 낮잠을 2시간 자라면 고역이다. 역시 소확행은 작기 때문에 확실했다. 청소라는 본업이 있어서 커피타임 작은 휴식이 행복하다. 땀 흘리며 열심히 산 오전이 있어서 책보는 낮잠 한 숨이 행복이 된다.

생계유지라는 큰 본업에 매달려 땀 흘리는 요즘 20~30대 청년들 소확행은 무얼까.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혼자 술 마시기, 요리하기, 애완동물 키우기, 영화보기, 홈퍼니싱(집가꾸기), 케렌시아(나만의 휴식처) 등' 많다. 헬조선에 시달리던 많은 젊은 층이 상처받은 마음을 보살피기 위해 소확행에 열광하고 있단다. 예전에는 '내일 큰 성공을 위해 오늘 작은 행복은 희생하라'였는데 요즘은 '내일 큰 성공 포기하더라도 오늘 작은 행복을 놓치지 않겠다'는 흐름이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풍조이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던 청년들이 '나만의 가치를 찾아,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성을 쌓기 위해' 안으로 침잠한다. '기존체제와 미래에 대한 불신'도 작용했을 거다. '의욕과 열정 상실'을 걱정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그동안 너무 남의 눈치를 보는 성공 줄에 서기위해 자기희생을 참아왔다. 이제 '내가 먼저 행복해야 남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로 바뀌는 조짐이다.

문제는 큰 성공대신 소확행을 선택한 청년들이 수십 년 그 길을 가며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공자는 논어 첫줄에 길고 오래갈 확실한 기쁨을 얘기한다. "배우고 그것을 때때로 익히면(때에 맞추어 실천하면) 기쁘지 않겠는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움을 실천할 높은 자리를 얻기 위해 전쟁판이던 중국 천지를 55세부터 14년이나 돌아다니다(轍環) 실패한 공자가 남긴 말씀이다. 공자가 혈기 방장하던 청년시절 한 말이 아니다.

기쁨을 얻는 길, 배움을 실천하는 길은 높은 자리에만 있는 건 아니다. 도올 김용옥은 "대철인이 죽기 전 그의 생애에 대해 남긴 매우 함축적인 언사, 즉 공자의 전 생애를 압축시킨 달인적 회상"이라고 이 말을 풀이했다. 대성인이 전 생애에 걸쳐 몸으로 보여준 긴 '소확행'이다.
 
 
 
 
 
 
 

14일 오후 4시 울산시청 앞에서 울산 경제 살리자는 취지로 울산 노동자 결의대회가 열렸습니다.

1천여 노동자가 모여 시청과 정부에 항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노동자와 노동당, 민중당, 정의당은 오전 10시경 광주형 일자리 반대 기자회견을 했다 하고 이날 집회도 현대차와 정부가 추진하려는 광주형 일자리 문제와 오는 11월 21일 민주노총 총파업 예고를 성토하는 발언으로 이어졌습니다.

노동자들은 광주형 일자리를 나쁜 일자리라 했습니다. 노동자의 임금을 깎아 재벌기업 배불리기라 비판 했습니다. 노동자들은 시장 앞으로 항의서한을 전달하고 이어 시청에서 별로 멀잖은 곳에 있는 여당 울산시당 당사까지 행진 후 자진 해산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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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에 가뭄과 폭염으로 쓰러지고 말라버린 상처가 남아있는 작물을 수확하는 가을걷이가 곳곳에서 한창이다. 지역과 작물에 따라서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기대치를 밑도는 수확량에 실망을 하지만 농사의 결과는 농부가 결정할 수 없는 영역이다.

갈수록 지구온난화의 기후변화가 농사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더욱 그렇다. 농사를 기술이나 과학에 의존하지 않고,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의 순환으로만 짓는 일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가을에 거둬들이는 작물은 많은 부산물(필요로 하지 않는것)을 남긴다. 콩, 깨, 고추, 토마토 등 줄기가 크고 단단한 목질화(木質化)된 잔사는 잎채소와 달리 부피가 크고 쉽게 분해가 안 된다. 그런 이유로 쌓아두었다가 봄이 오면 한줌의 재로 태워버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유를 들어보면, 잔사에서 병충해가 전파되기에 불태우는 것이 안전하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병충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그럴 가능성이 낮음에도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심정을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그 다음으로는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쌓아두면 주변에서 흉을 본다는 이해가 안 되는 말도 듣는다. 그것은 아마도, 방법이 다른 농사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획일화 된 주입식 농사의 한 부분으로 농사 짓고 남은 잔사에도 굴레를 씌워 놓았다.
 
화학농약과 비료가 없던 과거의 농사를 생각해보면 잔사와 풀을 퇴비로 재활용했던 농사가 관행농업이었다. 벼농사도 탈곡을 하고 남은 잔사인 볏짚은 소먹이가 되거나 쌀겨와 함께 논으로 되돌려서 지력(地力)을 높였다. 한 땅에서 자라는 음식과 몸은 하나라는 신토불이(身土不二)는 먹고 남은 것은 다시 흙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순환의 의미도 있다는 생각이다.
  
 
유기순환농사, 버릴 것이 없다
 
물질의 유기순환 관점으로 보면 흙에서 자란 것은 다시 흙으로 되돌려야 한다. 태양으로부터 온 빛에너지(광합성)로 작물은 필요한 양분을 만들고 결실을 맺는다. 이러한 과정에서 토양미생물도 작물로부터 양분을 얻고, 상호작용으로 흙속의 유기물을 분해하여 자신과 작물의 생육에 필요한 에너지를 제공한다.
 
상호작용의 유기순환 농사가 지속되려면, 작물의 잔사를 태우거나 밭 밖으로 버려서는 안 된다. 다음해, 농사가 시작되는 봄이 올 때까지 뽑지 않고 그대로 두거나, 뽑거나 베었더라도 다시 밭으로 되돌려야 한다. 부족하다면 풀도 버릴 것이 아니며, 나무에서 떨어진 잔가지와 낙엽을 넣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농장에서는 작물의 잔사를 흙으로 다시 되돌리고 있으며, 퇴비 사용을 안 하거나 줄이고 있다. 퇴비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퇴비를 넣지 않더라도 작물의 잔사와 낙엽이 퇴비가 되기 떄문이다. 퇴비의 재료가 되는 톱밥은 나무이며, 가을에 떨어지는 나무의 마른 낙엽도 퇴비다. 농사에서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으면 다름에 대한 이해를 못하거나 배척하게 된다.
 
퇴비 사용의 목적이 흙에 유기물을 공급하고, 통기성을 높이는 물리적인 변화를 가져오듯이 작물의 잔사와 낙엽도 같은 효과를 준다. 공기와 물의 순환이 되는 통기성이 좋지 않았던 농장의 흙도 작물 잔사와 낙엽을 많이 사용한 밭은 포슬포슬한 떼알구조로 바뀌고 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딱딱하게 목질화 된 작물의 잔사는 겨울을 지나 봄이 되면, 수분이 빠지고 물질분해가 되어서 가볍고 쉽게 부러진다. 밭을 갈면서 흙속에 넣을 수도 있고, 밭을 갈지 않는 무경운 농사에서는 흙 위에 올려두면 된다. 낙엽도 같은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일 년 내에 미생물에 의해 모두 분해된 부엽토가 되어 흙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