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부터 군산 한길문고 상주작가(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작가회의가 운영하는 '2018년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가 되었습니다. 문학 코디네이터로 작은서점의 문학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자리를 만듭니다. 이 연재는 그 기록입니다. - 기자말  
 
  
군산 우리문고가 있는 거리는 '군산의 명동'이라고 불리던 영동과 마주보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조성된 상점 거리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문고에서 오른쪽으로 끼고 돌면, 극장 골목이 나왔다. 군것질거리를 파는 노점상들은 늦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떨이 장사를 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발소리는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군산 임피에서 태어난 채만식 작가가 1937년 가을부터 신문에 연재한 장편소설 <탁류>. 주인공 초봉이를 비롯한 수많은 등장인물들은 우리문고가 있는 이 거리를 지나다녔다.
 
세월은 흐르고, 수탈당한 고통의 흔적도 우리 역사라고 재평가 받는 시대가 왔다. 개발이 비껴간 군산은 '근대문화 도시'라는 상징을 얻었다. 도시는 소설 속에 나오는 사람들의 일상을 길어 올렸다. 그들 삶의 터전이었던 길을 '탁류길'이라고 이름 붙였다.

탁류길은 근대역사박물관에서 시작한다. 초행자들은 착실하게 루트를 따른다. 신흥동 일본식 가옥과 일본식 절집 동국사를 보고는 큰 길을 건넌다. 산동네와 산동네를 잇느라 공중에 떠 있는 다리 위에서 정주사집 문학비(초봉이 아버지)를 만난다.
 
다리를 건너가면 쌈지공원과 해돋이공원이 나온다. 산 말랭이의 골목과 집들이 사라진 자리에 만든 공원이다. 여행자들은 군산 시내의 전경이 보이는 정자에 서서 <탁류>의 한 구절을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둔뱀이는 개복동보다도 더하게 언덕비탈로 제비집 같은 오막살이집들이 달라붙었고, 올라가는 좁다란 골목길은 코를 다치게 경사가 급하다."
 
   
초봉이가 오르내린 콩나물 고개에서 천천히 내려온 여행자들은 영화 <타짜>를 찍은 중국음식점 빈해원으로 향한다. 그 길에는 우리문고가 있다. 어떤 여행자는 서점 안으로 성큼 들어와서 책을 구경한다. 일요일이라서 혼자 근무하는 우리문고 이은재 대표는 다른 고장 사람이 몰고 온 외지의 냄새를 기분 좋게 받아들인다.
 
"여행자들이 군산에 오니까 영향을 받긴 하죠. 서점에 들어와서 구경이라도 하고 가시잖아요. 어제도 어떤 분이 오셔 가지고, 우리문고에 꼭 들러야 한다는 블로그 글을 읽고 왔대요. 여기가 탁류길 지나는 길이거든요."
 

이은재 대표는 원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서점은 정확히 10년 전에 열었다. 책을 판매한 가격만큼만 총판에 올려 보내면 된다고 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땅 짚고 헤엄치기처럼, 관리만 잘 하면 된다는 지인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다. 그래서 낭만적인 생각도 했다. 가을이 오면, 바바리코트를 입고 서점에서 일할 줄 알았다.
 
쉴 틈이 없는 게 서점 일이었다. 날마다 신간이 나오고, 서가에 꽂힌 구간을 빼서 반품해야 했다. 그 일을 제때 하지 않으면 문제가 복잡해졌다. 늘 무거운 책을 끌고 나르니까 팔다리가 저리고 몸이 쑤셨다. 쉬는 날은 1년에 두 번, 추석과 설날뿐이었다.

"새 책 입고하고, 손님들한테 원하는 책을 찾아드리는 게 정말 좋아요. 단골 분들이 계세요. 한 달에 한 번, A4 용지에 책을 열댓 권씩 팩스로 보내와요. 그거 구해서 연락드리면 찾아가시고요. 그런 일만 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문고는 참고서보다 일반 단행본이 더 많이 팔리는데 갈수록 매출이 떨어지는 게 힘들죠."
 
삶의 한복판에서 시대의 변화를 알아채는 것은 어렵다. 장강의 뒤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듯이 상권은 새로 생긴 주거지구로 가버렸다. '구시가'라 불리는 거리에 위치한 우리문고의 경영은 군산에서 현대중공업이나 GM 대우가 철수하기 전부터 어려웠다. 극장들은 문을 닫았고, 그렇게 손님들이 많이 찾던 영동 상가에도 빈 점포가 늘었다.
 

2018년 가을. 우리문고에는 튼튼한 동아줄이 내려왔다. 문체부와 한국작가회의가 힘을 보태주는'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이었다. 이은재 대표가 서점을 시작할 때부터 생각했던 작가 초청 강연회를 할 수 있게 됐다. 돈도 많이 들 것 같고, 어떻게 첫 발을 디뎌야 할지 몰라서 엄두도 못 냈던 일을 말이다.
 
"서점에 사람들이 막 북적였으면 좋겠어요."
 
이은재 대표의 바람은 한 가지였다. 그는 한 달에 2회, 7개월간 14회의 작가 강연회를 한다는 현수막을 서점 앞에 내걸었다. 책을 사러 온 손님들은 초청 작가 목록을 읽고는 "여기 서점에서 한다고요?"라고 물었다. "그날 올게요"라고 신청한 사람은 없었지만.
 
나는 '10년 만에 여는 우리문고 작가 강연회'를 SNS와 군산에서 활동하는 여러 독서모임들에게 알렸다. 맙소사! 첫 번째 날아온 소식은 비보. 딱 원하던 강연이라면서 꼭 올 거라던 단체에서 다른 일정이 있다고 했다.
 
하루 앞으로 다가온 작가 강연회. 신청한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제발요~"라고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줄 만큼의 마력이 생길 수도 있을까. 솔직히 나는 믿지 않았다. 첫 강연을 해줄 김기은 작가에게 실토했다. 사람들이 별로 안 올 것 같다고, 그래도 좋은 강연을 해주라고.
 
  
11월 10일 토요일, 우리문고의 첫 작가 강연회에 첫 번째로 온 사람은 이은미 선생님이었다. 학생들에게 독서와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계속 읽고 쓰는 사람이었다. 전날 한길문고에서 진행한 '나도 시작할 수 있는 글쓰기'에도 왔다. 나는 두 번째로 만나는 이은미 선생님을 오랜 벗처럼 끌어안았다.
 
우리문고는 작가 강연회를 할 공간이 따로 없다. 누워있는 책을 치운 판매대가 책상이었다. 독자들은 그 매대를 사이에 두고 앉으면 된다. 의자는 여섯 개였다. 오후 3시, 빈자리가 있지만 시작해야 했다.
 
사람들에게 글쓰기 강연을 해줄 김기은 작가를 소개했다.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2002년에는 MBC 창작동화대상을 받았다고. 군산에서 태어나 자랐고, 군산에서 살면서 글을 쓰고 있는 작가라고.
 
김기은 작가는 작은 목소리로도 사람들을 금방 사로잡았다. 나 혼자만 '빈 의자가 다 찰 것인가'를 고민했다. 번뇌의 시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혼자서도 가꿔온 사람들이 빈자리를 채웠다. 이은재 대표는 서서 듣는 사람들에게 의자를 가져다주었다. 
 
  
울컥했다. 심훈의 <상록수>가 생각날 정도였다. 교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아이들이 창틀에서, 나무 위에서 채영신 선생의 수업을 듣던 날처럼, 우리문고 강연회에 조금 늦게 온 사람들은 매대 끝에 앉아서 이야기를 들었다. 김기은 작가 얼굴이 보이지 않는데도 고개를 끄덕이고 뭔가를 써내려갔다.
 
활력 넘치는 강의도 질문 시간에는 침묵에 빠진다. 우리문고에서는 달랐다. 사람들은, 초등학교 2학년 때 꿈을 작가로 정하고 계속 글 쓰는 일을 해온 김기은 작가에게 물었다. 탁구 경기의 랠리처럼 30분 넘게 서로의 말이 오갔다. "스쳐지나가는 물건 하나에서도 상징성을 찾고 글을 완성해보라"는 작가의 말을 받아 적었다.
 
"좀 급했는데 시작하니까 적응이 되는 것 같았어요. 다음에는 더 잘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날 밤 10시 6분, 우리문고 이은재 대표는 카톡을 보내왔다. 세 문장으로 된 짧은 글에서 '다음에는'이라는 말이 참 좋았다. 그 문자를 입력하는 순간에는 "언제까지 버틸지 모르겠어요"라는 말은 절대로 끼어들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문고 이은재 대표가 머릿속으로 그리기만 했던 작가 강연회는 10년 만에 이루어졌다. 동네서점에 사람들이 북적였으면 좋겠다는 그의 또 다른 생각도 실현되는 날이 올까. 가능성을 닫지는 말자. 상상은 그대로 현실이 되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