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어쩌려고 이런 걸 이제서 배운단 말이에요?"
 

일곱 살 손녀가 마을 학교에 할머니를 따라왔다가, 한글 기초 공부하는 할머니를 보고 깜짝 놀라 한 말이다.

새로 초등부 과정을 시작한 L 마을 학교엔 손녀를 돌보는 최 학생이 있다. 손녀를 유치원에 보내고 오기 때문에 항상 공부 시작 10분 후(마을 학교 수업 시작은 9시) 도착하는 학생이다.

오늘은 유치원이 쉬는 날이라 정시에 손녀를 데리고 왔다. '어머니, 아기, 모자, 바구니'란 낱말을 10칸 노트에 쓰는 할머니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또박또박 뱉어낸 말. 어린이의 말이라 모두 한바탕 웃었지만, 최 학생에겐 가슴 시린 말이다.
 
L 마을 학교 수업 끝내고 시내버스를 탔다. 이곳은 거리가 꽤 멀어서 1시간 20분(승용차는 30분 소요되지만, 시내버스라서) 걸려야 집에 갈 수 있다. 나는 이 시간을 이용해 책을 읽기로 했다.

오늘은 한 번 더 읽고 싶은 배지영 작가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을 가져왔다. 책을 폈지만,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일곱 살 손녀가 할머니한테 한 그 말이 귓가에서 여름밤 모깃소리처럼 앵앵거려 도무지 내용이 들어오지 않아 책을 덮었다.
 
태어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을 누구나 안다. 어느 시대에 태어났는지, 어떤 부모를 만나는지가 한 사람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살아가며 알게 된다. 주어진 삶에 충실하게 살다 보니 여기까지 온 할머니의 삶이다. 일곱 살 손녀는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살며 자신 입장에서 바라본 할머니 모습에 대하여 느낀 대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최 학생은 아무도 모르게 가슴 깊숙이 자리한 못 배운 상처에 두껍게 눌러앉은 딱지가 또 생으로 떨어졌다. 새 살 돋지 못하고 평생 가슴에 붙어있다가 생으로 떨어진 딱지에선 피가 철철 흐르겠지. 피가 흘러내리면 며칠이 걸려야 딱지는 생길 것이다.

딱지 떨어지면 새살이 돋아나야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계속 딱지가 붙어 있을 수밖에 없는 분들. 딱지 떨어진 자리에 새살이 돋아나 그 자리에 다시는 피가 나지 못하게 아물도록 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 생각돼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문해교육을 하는 것이다. 이 일을 하는 첫 번째 이유이다.
 
황혼 길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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