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에 나뭇가지마다 새순이 돋고 꽃봉오리가 부풀어 오른다. 나에게 봄은 친정엄마의 계절이다. 생신이 있는 계절이기도 하고 해마다 봄이면 야산으로 냉이나 두릅, 쑥 등을 뜯으러 다니셨다.

그래서인지 엄마의 품에선 연한 풀꽃 향기가 났다. 곁에 다가가면 숲길을 걷는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지고 가슴 속 허기가 채워 졌다.

몇 해 전 겨울, 엄마는 인근 노인정에서 치매 검사를 받으셨다. 그리고 치매가 의심스럽다는 진단 결과가 나왔다. 나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당시 엄마는 손자들에게 구구단을 가르쳐주고 함께 딱지치기를 하는 명랑하고 똑똑한 할머니셨다. 공부와 놀이가 끝나면 아이들과 피자를 드시며 웃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처음 대학병원을 찾은 이유도 치매가 아니라는 결과를 받아 주변의 의심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어느 날 오후 신경과를 찾은 우리 모녀는 의사 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안경 너머로 의사가 부드럽게 물었다.

"할머니 여기 뭐 타고 오셨어요?"
"여기... 버스 타고 왔어요..."


조금 전에 택시에서 내렸는데 이게 무슨 말일까. 이날 나는 내가 엄마의 치매 증상에 대해 무지했던 건 아닐까 스스로를 책망했다.

그 후 며칠에 걸쳐 엄마는 이런저런 검사를 했고, 결국 초기 치매 진단을 받았다. 어리둥절한 채로 약을 받아왔지만 이 상태에서 더 악화되지 않게 잘 보살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가까이 살면 서로가 좋으니 자식들 옆으로 이사하시라 권하면, 엄마는 한사코 거절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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