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춘', 이 단어의 진의를 깨닫기 시작한 것이 언제쯤부터였을까. 아마도 인생은 한순간의 소풍 같은 것이라고 느끼기 시작했던 즈음이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한 장의 사진이라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봄날의 한 때가 담긴 스틸 사진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따스하고 밝고 예쁜 봄날이다.

나는 지금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바람에 나부끼는 눈꽃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 곳에서 이 생각을 하고 앉아 있다. 곧이어 나는 그 봄을 좀 더 가까이 만끽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걷는다.

한 걸음 한 걸음 봄날의 진의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누군가의 진심을 알려면 그 사람의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하듯, 나는 봄날의 진심이라도 알려는 듯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곳에는 한 장의 스틸사진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내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한 그루의 벚꽃 나무 아래 앉아 웃고 있는 사진이다. 바닥에 앉아 계시는 할머니의 오른손에는 지팡이가 들려 있다. 그 옆에는 내 어머니가 쪼그려 앉아 있다. 둘 다 하얀 이를 드러내 웃고 있다. 행복해 보인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그들은 함께 걸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직립이 힘들어진 두 여자

지금 내 할머니는 그녀와 딸과 그 딸의 딸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한 채 종일 누워 천장만 보고 있고, 내 어머니는 고된 허리 수술 뒤 하루의 절반 이상을 침대에 누워서 지낸다. 더 이상 직립이 힘들어진 두 여자. 나는 봄의 중심을 걸으며 생각한다. 그녀들의 봄은 지금 어떻게 지나가고 있을까.
 
내 어머니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할머니, 그리고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어머니. 봄을 느낄 수 있다는 건 내가 내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리라. 나는 가끔은 내 어머니에게 묻고 싶었다. 대체 왜 나를 이 힘겨운 세상 속에 던져 놓았느냐고, 왜 나를 낳았느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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