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평화를 말하지만, 평화의 길에 대해서는 상반된 소리가 있다. 첫째는, 무대응적 절대 평화론이다. 보복과 폭력은 또 다른 보복과 폭력을 불러올 것이기에 사랑과 용서, 비폭력을 호소한다. 역사 속에서 이런 노력이 원수(악인)의 마음을 움직여 화해와 평화를 이뤄낸 사례도 적지 않다.

나도 목사이지만, 눈앞의 현실을 부정하거나 완성된 종말의 윤리를 곧바로 적용하는 건 조심스럽다. 국가와 사회가 존재하는 한 군대와 경찰, 사법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고, 지나치게 추상적, 이상적 평화론은 오히려 약자의 생명과 인권을 희생시킬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현실론을 내세워 이와 정반대의 주장이 쉽게 힘을 얻는다. 요즘 국제사회에서 일반화된 힘에 의한 평화론이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고 했던 로마 제국의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 레나투스가 대표적이며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상대도 두려워하고 역설적으로 평화가 유지된다'는 말이다.

아이러니한 건 1990년대 세계 냉전체제가 끝난 뒤 30여 년인 최근 세계는 유례없이 '힘의 평화' 신봉자들로 넘쳐난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이스라엘은 물론 남북한도 갈수록 이를 종교처럼 숭배하고 있다.

권력과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원래 힘에 의한 평화를 선호한다. 대통령과 수상은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목소리가 클수록 인기는 올라가고 전쟁이 나도 자기와 가족은 안전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장군도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죽는 건 사병과 초급장교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블라디미르 푸틴, 베냐민 네타냐후, 조 바이든, 시진핑, 김정은과 윤석열의 발언에는 힘이 있고 거침이 없다. 모두 타인의 목숨을 담보로 잡은 용기이며, 목숨이든 재산이든 자신들은 크게 잃을 게 없다. '북진통일'을 목 놓아 외치던 이승만 대통령이 막상 전쟁이 나자 수도 방어를 포기하고 일찌감치 대전으로 피난 가고, 12.12사태 당시 대부분 지휘관은 그저 관망하고 있던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거침없는 '힘의 평화론'

특히 한반도에 사는 우리는 정치라곤 해본 적 없는 윤석열 대통령의 거침없는 힘의 평화론을 크게 주의해야 한다. 윤 정부 이전에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강경하게 대응한 적은 많다. 그러나 한편에선 강경한 규탄 발언과 군사적 대응, 국제사회의 비난을 이끌어내면서도 다른 한편 물밑 협상과 중국 등을 통해 서로의 수위가 더는 높아지지 않도록 관리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통령 자신이 가장 앞장서 북한은 물론 중국에 적대하고 미국, 일본과의 군사동맹만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다. 더구나 상시적 한반도 위기를 관리해야 할 대한민국 대통령이 남북과 한반도를 넘어 대만, 필리핀 등 동아시아 상황과 우크라이나 등 유럽 사태까지 끌어들여 함부로 개입하려는 위태한 행보를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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