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은 어버이날, 하늘나라에 계신 부모님이 그립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5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지는 8년이 지났다. 너나없이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이긴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더 힘겨운 삶을 살다 가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부모님은 한평생 밭농사를 지으며 사셨지만, 논농사가 없다 보니 쌀이 항상 부족하여 보리밥을 먹고 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농사 외에도 틈틈이 부업을 하셨고, 어머니는 한여름 땡볕에도 밭에서 쭈그리고 앉아 호미로 김매는 밭일을 하셨다.

고생만 하셨던 부모님께 나름대로 모신다고 모셨지만 살아생전에 좀 더 잘 모셨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후회가 가슴 한편에 남아 마음이 착잡하다.
 
부모님의 애달픈 자식 사랑

세상 부모님들이 대개 그렇듯이 우리 부모님도 유독 자식에 대한 사랑이 깊으셨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에 형들과 누나는 먹고 살 길을 찾아 일찍부터 도회지로 떠났지만, 막내인 나는 부모님 곁에 가장 오래 머물면서 성장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우리집에는 책상이 없어 방바닥에 엎드려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철이 없었던 나는 어머니께 책상을 사 달라고 졸랐다. 어린 자식의 요구가 안쓰러웠는지 어머니는 어느 장날에 니스칠이 된 앉은뱅이책상을 사 오셨다. 당시에는 책상이 꽤 비쌌고 원목 재질이라 무게도 상당히 무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책상을 어머니는 읍내 장터에서 집까지 머리에 이고 20리(7.8km)도 넘는 길을 걸어서 오셨다. 그 시절에는 화물차도 별로 없었지만, 비싼 운송비 때문에 땀을 뻘뻘 흘리며 손수 이고 오셨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소리 없는 눈물이 가슴을 타고 흐른다.
 
부모님은 형들과 누나를 도회지로 보내고 어린 자식들 걱정에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으셨을 것이다. 어릴 적에 어머니가 가끔씩 부르셨던 한 서린 노랫가락은 어찌나 구슬프게 들렸던지 아직도 귓속을 맴돌고 있다. 어머니는 한 맺힌 서러움을 달래며 가슴 아픈 자식 사랑을 집에 남아 있던 막내에게 쏟으셨다.

아침마다 어머니는 재래식 부엌 가마솥에 밥을 지으시며 계란찜도 같이 해서 주셨다. 보리밥에 계란찜, 보리밥이긴 하지만 내가 먹는 밥에는 쌀 밥알이 더 많았고 달걀도 귀하던 시절에 어머니의 정성 가득한 밥상을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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