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나는 습관처럼 오른쪽 가슴께를 만져보게 된다. 가끔은 새집 속 아이가 잘 있나 들여다보는 어미 새처럼 윗옷을 들춰 두 눈으로 확인하기도 한다. 이제 정말 내 가슴엔 기다란 줄도, 하얀색 반창고도 붙어 있지 않다. 평평하고 밋밋한 가슴께의 감촉이 아직도 신기하고 믿기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발병 

1년 반 전 갑작스러운 백혈병 발병으로 나는 가슴에 줄 3개를 달았다. 골수검사의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 수술대로 끌려간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갑작스러운 발병 소식에 슬퍼하고 놀랄 틈도 주지 않은 채 진행된 급박한 치료 일정은 당시 내 넋을 나가게 하기 충분했다. 그 순간은 생각지도 못한 발병의 충격보다 내 몸에 가해지는 물리적 압박이 너무 무섭고 두려워서, 이 시간만 지나면 살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 가슴에 삽입된 줄은 의학 용어로 '히크만 카테터'라 불렸다. 오랜 시간 각종 약물과 혈액, 수액 등의 투여가 필수인 내 치료의 특성상, 치료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시술이었다. 시술 전 선생님은 나에게 말했다. 

"환자분, 온몸에 구멍 안 만들려고 하는 거니까 조금만 참으면 돼요. 이거 없이 치료 하려면 주삿바늘에 온몸이 남아나질 않아."

나를 안심시키려고 했던 우리 선생님의 의도는 오히려 나를 더 떨게 했다. 아이를 둘이나 낳은 나에게 이 정도 시술은 껌일 거라던 주변의 위로도 잘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난 두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좀 더 의젓하고 씩씩한 엄마가 될 거라고 되뇌며 거사를 잘 치렀다. 

3개월이면 뗄 수 있을 거라던 그 긴 줄들은 생각보다 오래 나와 함께 했다. 동료 환자들이 하나 둘 히크만과 멀어져 갈 때도 난 끈덕지게 이 줄을 부여잡고 있었다. 아직 피 수치가 많이 낮아 잦은 수혈이 필요했고 각종 부작용에 입원도 수시로 해야 했다. 

옷 입기, 샤워하기, 아이들과 안기 등 일상생활에서는 조심 또 조심해야 했다. 실수로 줄이 당겨지거나 감염이라도 되면 내가 겪은 것 이상으로 위험하고도 번거로운 상황이 연출될 터였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손쉽게 줄을 돌돌 말며 샤워하기도 껌인 시절이 왔다. 

시술 후 처음 집에 갈 땐 내 몸에 달린 긴 줄을 보고 아이들이 충격받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아이들은 신기하게만 바라봤다. 빨간 면봉으로 소독하고 반창고를 붙이는 작업을 할 때면 턱 밑까지 고개를 들이밀고 유심히 관찰했다. 이러한 이벤트도 머지않아 아이들에게는 일상이 되었고, 가끔은 나도 내 몸에 세 개의 기다란 줄이 있다는 것을 잊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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