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0일, 미국 <뉴욕타임스>는 난데없이 한국의 벚꽃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그것도 기시다 총리의 방미(4월 8일~14일)를 코앞에 두고 말이다. 신준환 전 국립수목원장을 중심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일본산 벚나무를 토종 제주 왕벚나무로 교체해 가는 '왕벚 프로젝트'에 관한 기사였다. 1면에 이어서 5면 전면에 관련 기사를 꼼꼼하게 다루고 있었다. 

벚꽃 묘목 번식을 위한 노력과 연구원들이 통계와 함께 구체적인 교체 작업 계획을 모두 직접 취재했고, 예민한 주제인 한일 벚꽃 원조 논쟁에 대해서는 양국 전문가의 의견을 모두 실었다. 조심스럽게 양국의 시선을 담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기사였지만, 한국 벚꽃이 한라산의 모계와 부계 사이의 자연종 즉 자생종이고 일본의 경우 인위적 교배에 의한 벚꽃임을 잘 전하고 있었다. 

'벚꽃 교체보다는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방식이 중요하다'고 일본 전문가의 말을 삽입하면서 벚꽃에 '민족주의 프로파간다'가 존재한다는 표현도 사용했다. 긴 내용이었지만 내게는 이런 뚜렷한 메시지로 다가왔다. 

'한국에는 벚꽃의 자생지가 있고, 중요 장소에서부터 국산 왕벚꽃으로 교체할 것이다.' 

제주 왕벚꽃으로 한국 전역을 덮을 능력과 의지가 있다는 이야기다. 벚꽃과 한국을 연결시킨 <뉴욕타임스> 기사가 반가웠던 건, 오랜 타향살이를 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무명의 '식물 전도사'로 살아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처음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건 중학교 역사 선생님 덕분이었다. 잡다한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역사를 다양한 정보와 연결해 가며 수업하시는 선생님과 코드가 맞았다. 선생님의 낚시성 질문에 곧잘 엉뚱한 답을 내뱉으면서도 부끄러움보다 재미가 있었다. 

당시 중학교 뒤에는 부산 원예고등학교가 있었다. 봄에는 '난 전시회'가 있었고 가을이면 꽤 큰 규모의 '국화 축제'가 열렸다. 선생님은 우리가 앉아있는 교실 뒷담 너머가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고, 식물사에 큰 획을 그은 역사적인 장소라고 일러 주셨다. 바이러스에 강한 튼튼한 강원도 감자, 제주 감귤과 유채꽃, 한국형 배추와 무 같은 채소들, 서양인들을 놀라게 한 겹 페튜니아꽃 등이 학교 뒷담 너머에서 연구되었다니.

교과서에서 이름 석 자만 읽고 넘어갔을지도 모르는 천재적인 육종 기술 과학자 '우장춘 박사'를 선생님은 생생하게 끌어올려 주셨었다. 자립 영농을 위해 애쓰는 우 박사를 직접 방문해 지원금을 주기도 했던 이승만 대통령 이야기도 곁들어 들었다. 왜색을 싫어해 벚꽃을 찍어 없애기도 했지만, 미국 워싱턴에 피는 벚꽃이 한국산임을 알리고 싶어 했단다. 

워싱턴에 피는 한국 벚꽃이라니. 선생님의 이야기에 대한 내 기억은 거기에서 그친다. 어른이 된 후 직접 보게 될 줄, 선생님 이야기를 퍼뜨리며 살게 될 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미국으로 옮겨와 살면서 보니 벚꽃은 워싱턴 D.C.의 인공 호수 주변에만 깔린 게 아니었다. 1912년, 일본은 워싱턴 D.C.에 3020그루, 이후 뉴욕에 무려 6천 그루의 벚꽃을 기증했다. 뉴욕에 이사 와 워싱턴 못지않은 벚꽃 축제와 사방에 깔린 벚꽃 가로수를 보고 놀랐다. 버지니아주의 주화이자 주목은 도그우드(Dogwood)라는 꽃나무이다. 아이들 손바닥만한, 크고 하얀 꽃. 그런데 이 꽃보다도 벚꽃 거리가 빠르게 늘어나는 것을 보고 속이 상했었다. 

처음엔 좋아라 꽃구경을 다니다가, 주변 이웃과 관광객들이 '일본 벚꽃'이라 부르는 소리를 들으니 괜한 오기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그런 얘길 들을 때마다 "미안하지만, '동양 벚꽃(Oriental Trees)'이야. 미국이 진주만 공격을 당한 후에 공식 명칭이 바뀌었지. 이게 다 일본 나무도 아니고 한국산도 많아"하고 일부러 말해주곤 했다. 
  
몇 년 전 워싱턴 D.C. 북쪽과 인접한 메릴랜드주에 살 때였다. 근처에 NIH(미국 국립보건원)가 있어서 한국과 일본 연구원 가족이 아파트 단지에 많이 살았다. 봄이 되면 아파트 단지에 둘린 벚꽃 나무가 하얗게 피어오르고, 가을이 되면 황금빛 단풍과 낙엽이 장관을 이루었다. 일본 연구원 가족이 '사쿠라'라고 하는 건 그렇다 치고 미국인들 특히 아이들 학교 선생님들이 그렇게 부르는 건 참기 힘들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우리 아이들에게 작문 숙제나 글짓기 대회에 나가 '한국산 제주 왕벚꽃'을 주제로 글을 쓰게 한 것이.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시키려다 보니 나도 공부 아닌 공부를 하게 되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딸은, 반세기 전 자신의 생일과 같은 날 왜 워싱턴의 한 대학 교정에 벚나무를 심게 되었는지 작문을 해 유명 교육출판사 '스콜라스틱'에서 주는 상을 받기도 했다. 

'한국 벚꽃' 이름을 찾아주려는 선조들의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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