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야, 너 감쪽같이 연기했구나~ 선생님은 척 보면 안다. 누가 네가 말 못 한다고 해? 네 연기에 다른 선생님들이 다 속았네, 속았어. 이제부터 언어치료실에서 행동으로 대답하는 건 없다. 다 말로 표현해야 해."
 
다시 돌아온 A군. 목소리조차 잘 나오지 않아 애를 먹었던 친구다. 이제 말을 할 수 있는데, 이걸 말을 할 수 있다고 하기가 좀 애매한 면이 있다. 뭐랄까? 말소리가 '늘어난 카세트테이프 말'처럼 하는 탓에, 한 단어를 말하는 데에도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A군의 발화는 속도가 느리고, 조음기관의 움직임이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말의 명료도가 떨어진다. 일단 말 속도가 너무 느리니까 스스로도 말로 표현하기보다는 제스처를 이용해서 표현하려고 한다. A는 대부분의 의사소통을 이전에 타원으로 가기 전 나와 연습했던 보완대체의사소통(AAC) 방법 중 하나로 엄지와 검지로 'o : 예'를, 양손 검지 두 개를 포개어서 'x : 아니요'를 표현한다.
 
AAC는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선택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말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말대신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서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의사표현의 가장 기본인 '예/아니요'를 약속된 제스처로 표현한다면, A군처럼 손가락을 이용해 '예/아니오'를 표현할 수도 있고, '예-아니오'를 포함한 각종 의미를 갖고 있는 그림을 모아 둔 그림판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의사를 표현할 수도 있다. 각자의 상황에 맞게 선택하게 한다.
 
그때는 이게 최선이었다. A군은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A군의 발화 가능성을 확인했다. 충분히 발성이 가능하고, 발화도 가능하다.

하지만 많이 느리다. 이름 세 글자를 말하는데 1분 가량이 걸린다. 1분이 왜?라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한번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1분간 말하기를 해보면 그게 정말 천천히라는 걸 느낄 수 있을 거다. A군은 자신의 이름을 말할 때 1음절을 말하고 좀 쉬고, 2번째 음절을 말하고, 발성이 안 돼서 다시 두 번째 음절을 또 말하고, 발성을 위한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다시 3번째 음절을 말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3음절밖에 안 되는 이름을 말할 때도 이러한데, 더 긴 발화로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어떻겠는가. 말하기 근육들이 지쳐서 발음은 더 부정확해지고, 목소리도 더 자주 안 나오는 상태가 반복될 것이고, 입모양만 하는 발화를 계속하게 될 것이다. 거기에 a는 콧소리(과 비음/과다 비성)도 심해서 맹맹한 소리로 말명료도가 더 떨어진다.
 
이러다 보니 A군과 치료 중 대화를 할 때 A군의 말이 자꾸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말하기가 힘드니까 그런가 보다 했는데, 요 녀석 눈치 빤한 녀석이다 보니 일부러 반말을 하고 있었던 거였다. 물론 힘드니까 짧게 말하는 것도 있긴 하지만, 왜 그 느낌적 느낌 있지 않는가, 쎄~한. 그래서 이제부터 무조건 선생님한테 반말을 금지라고 일렀다.
 
"A야, 너 자꾸 말이 짧다~, 선생님이 첫사랑에 실패만 안 했어도 너만 한 아들이 있어. 너 자꾸 선생님한테 반말할 거야?" 하니 "푸~어" 하며 웃는다. 웃는 모습은 백만 불 짜리다. 이 어린 녀석이 이렇다는 게 마음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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