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초 휴가 겸 여행으로 부산에 다녀왔다. 광안리와 해운대에 가보니, 산촌과 내륙 도심 지역에만 살았던 내게는 다소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바다와 해수욕장의 경계부를 맨발로 산책하는 이들이 보인다. 바지 소매 끝단을 걷어올리고, 바다에서 걷는 것도 아니고, 모래사장에서 걷는 것도 아닌 산책을 일상처럼 즐기는 이들이다. 찰싹찰싹 바닷물이 적셨다가 빠져나가는 모래 바닥에 발자국이 남는다.

그런데 해양 자원을 매개로 한 관광 산업이 극단적으로 개발된 광안리와 해운대 말고 걸을만한 길은 없을까? 외지인이 드물면서도 걷기 좋은 길 말이다.

구포나 동래의 흔적이 남아있는 지역을 가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구포와 동래의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또 다른 부산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일제강점기 이전 부산은 구포와 동래라는 지역 정체성으로 구분된다는 책 내용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책 <부산에 살지만>에서 부산은 구포를 중심으로 하는 낙동강 문화권과 울산 양산 동래를 잇는 동래읍성 문화권이 독자적으로 양립되어 있다고 정리한다.

동래로 향했다. 숙소에서 구포보다 동래가 가까웠고 몇 개의 비건 옵션 식당도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의 흔적을 최대한 발견하기 위해 동래읍성과 동래시장을 가보기로 했다. 동래읍성은 옛 도시의 물리적 형태를 관찰할 수 있는 장소고 동래시장은 경제와 문화를 관찰할 수 있는 장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복천고분군 오르니 하늘과 가까워진 기분

수안역 5번 출구나 7번 출구에서 20분 정도 걷다 보면 복천동고분군을 마주할 수 있다. 잔디의 녹색빛깔에 마음이 안정되었다. 낮은 오르막길에 위치한 복천동고분군은 언덕처럼 봉긋 솟아있다.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어떨지 기대됐다. 
 
언덕 위로 오르자 푸른 하늘과 가까워진듯한 기분이었다. 동쪽으로는 망월산이, 북서쪽으로는 동래읍성 풍경이 보였다. 동래라는 도시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해운대나 광안리 해안가를 따라 빽빽히 솟은 고층빌딩과 아파트숲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몇몇 분이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한적한 분위기였다. 푸른빛으로 물든 산 중간중간이 벚꽃나무의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이제 막 봄이 왔다는 신호다.

언덕에는 야외전시장이 자리잡고 있다. 복천동고분군은 가야시대 무덤으로서 당시 유물이 함께 출토되었는데 철기 문화와 풍습을 알 수 있는 유적이다. 역사를 좋아하고 지적 호기심이 있는 이들은 야외전시장과 복천박물관을 방문해 볼 것을 추천한다.

한적해 좋은 동래읍성... 안내판 가리고 선 주차 차량들

복천동고분군을 지나 복천박물관을 지나면 동래읍성이 나온다. 통상 보행자들을 위해 만들어둔 걷기 좋은 길에는 차량이 없는 게 상식일 것이다. 하지만 박물관에서 읍성으로 가는 보행로 양측에 차량이 줄지어 주차되어 있다. 차들에 가려져 탐방코스 안내도와 같은 표지판이 보이지도 않는다.

걷다 보니 주차된 차량의 원인을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보행로 왼편 저층 주거지 때문이었다. 주차시설이 부족해서 차량이 모두 보행로로 올라온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을 방치하고 있는 걸까. 집으로 돌아와 검색해 보니 원인을 알 수 있었다. 복천박물관, 동래읍성 주변이 '복산1재개발구역(이하 복산1구역)'에 해당한다. 복산1구역은 다수 매체 보도를 통해 문화재 경관을 고려해 정비될 재개발 구역으로 소개되고 있다. 재개발이 진행되면 보행로 위 주차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될 테니 방치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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