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TV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보면서 "나도 나중에 이순신 장군과 같은 훌륭한 영웅이 되고 싶다"는 꿈을 품었더랬다.

이순신을 너무 사랑하고 존경한 나머지 중학생 시절부터 <난중일기>를 비롯한 이순신 관련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었고, 방학 때만 되면 아산·여수·통영·사천·해남 등 이순신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곳을 열심히 누볐다.

그를 너무 흠모한 나머지, 그의 취미마저도 닮고 싶었다. 내가 전통활쏘기(국궁)를 시작하게 된 여러 이유 중 하나이다. 실제로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 장군은 주로 동료 장수들과 장기·바둑을 두거나 활쏘기로 여가를 보냈다고 나온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역시 '활쏘기'였다.

오는 4월 28일은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실제로 이순신 장군은 얼마나 활을 자주 쏘았을까?
 
문헌에 나오는 어마어마한 연습량 

<난중일기>를 읽다 보면 자주 마주하는 구절이 있다.

"出東軒公事後射帿(출동헌공사후사후: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에 활을 쏘았다)."

출근하여 업무를 처리한 뒤, 활쏘기로 하루를 마감하는 것이 이순신의 일상이었다. 
 
2008년 나온 한 연구(아래 참고문헌 2번)에 의하면, <난중일기>에는 활쏘기와 관련된 기록이 총 264회 등장하는데, 임진왜란 기간을 2539일로 환산하면 대략 열흘에 한 번꼴로 활쏘기(습사)를 즐긴 셈이라 한다. 


얼핏 '생각보다 활을 자주 쏘지는 않았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출동 기간에는 일기를 거의 쓰지 못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누락된 날짜에도 습사를 진행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전투와 공무 등으로 정신없이 바빴을 장군의 일과를 생각하면, 거꾸로 그 바쁜 와중에도 습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순신은 보통 한 번에 10순(50발) 정도 활을 쏘았다. 그러나 습사량은 그때그때 달랐다. 적게는 3순(15발)을 쏜 적도 있고 많게는 30순(150발)까지도 습사를 한 기록이 보인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시기에는 활쏘기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몸의 컨디션에 따라 습사량도 천차만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하루에 30순까지 쐈다는 기록은 놀랍다. 보통 건장한 성인 남성도 8~9순 내외로 습사를 하고 나면, 아무리 쉬엄쉬엄 쏜다고 해도 슬슬 팔힘도 빠지고 집중력도 떨어져서 시수를 유지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깨 등에 무리가 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30순이라니. 더군다나 조선시대 장수들이 썼던 군용 활은 지금 현대인들이 쓰는 취미용 활과 달리 장력이 훨씬 센 강궁이었다고 하니, 이순신 장군은 체력도 범상치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억기의 활쏘기, 형편없어 우습다"... 자신감 있던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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