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은 권력 상징으로 왕을 뜻한다. 고려 왕은 용의 후손을 자처하는데 왕건의 할머니가 용왕의 딸 용녀이다. 의정부 회룡사는 함흥차사로 유명한 함흥에서 이성계가 돌아오면서, 은둔한 무학대사를 찾아와서 절 이름을 회룡사라 하였다.

훈민정음으로 된 최초 작품인 용비어천가는 '용(임금)이 날아올라 하늘을 다스린다'라는 뜻으로 조선 왕조의 역성혁명을 정당화한다. 조선시대에는 용안이나 용상처럼 왕의 신체를 상징하는 용어나 의식주 생활에서 쓰이는 각종 도구 등에 용이 머리말로 나온다. 왕이 한 명이듯이 용도 두 마리가 같이 살 수 없다.

땅이 넓은 중국의 경우, 수나라는 37년에 망하고, 명과 청나라도 300년을 넘기지 못할 정도로 군웅이 할거한다. 반면에 우리 역사에서 군웅할거는 후삼국시대가 마지막이다. 고려는 475년을 유지했고, 조선은 518년을 이어가면서 역성혁명이 없었다.

전국에 분포하는 아기 장수(장사) 얘기는 실패한 민중의 구원자를 상징한다. 나라가 어지러울 때, 우리나라에서는 '정도령', 불교나 기독교에서는 '미륵불', '메시아', 러시아에서는 '라진의 까마귀'처럼 세상을 바꿀 영웅을 애타게 기다렸다. 백성의 기다림과 실패에 대한 한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기 장수는 토룡(지렁이) 수준에서 끝났고, 우투리 장수 등은 이무기 단계에서 좌절한 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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