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4월, 신안군의 압해도와 암태도를 잇는 천사대교가 개통되었다. 길이가 무려 7.2km에 이르는 데다 현수교와 사장교가 연결된 참신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금세 신안의 명물이자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천사대교 덕분에 목포에서 신안으로 접근하는 것이 매우 수월해졌다. 여전히 배를 타야만 갈 수 있는 섬이 훨씬 많지만 천사대교는 섬의 고장 신안의 중요한 길이 되었다.

우리는 신안으로 간다

신안엔 섬과 바다가 어우러진 멋진 풍광이 있다. 기암괴석의 비경이 있고 갯벌이 있고 천일염이 있다. 홍어와 병어 같은 생선이 있고 맛깔나는 먹거리가 즐비하다. 최근엔 특히 신안군이 꽃과 뮤지엄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다채로운 꽃과 문화예술의 향취가 함께 한다.

색깔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컬러 마케팅, 꽃과 나무로 지역을 재생하는 그린 마케팅, 예술로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는 아트 마케팅이라 할 수 있다(김병희·김신동·홍경수, <보랏빛 섬이 온다>). 최근 사람들이 자꾸만 신안으로 향하는 까닭이다. 
   
 
그런데 여기에 역사와 사람이 빠질 수 없다. 신안의 섬에는 신석기시대 때부터 사람들이 살았다. 고대 시대가 되면 강력한 해상세력이 터를 잡았다.

왕건에 맞섰던 능창이라는 인물이 대표적이다. 장산도 신의도 안좌도 등지에 남아 있는 석실 고분이 고대 해상세력의 흔적이다. 고려시대엔 송나라 사절단이 흑산도 비금도 임자도를 경유해 개경을 오갔고, 원나라 무역선이 증도 앞바다에서 침몰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엔 프랑스 난파선이 비금도에 표착해 프랑스 선원들이 비금도 주민들과 교류를 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엔 숱한 인물들이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했고, 근대기엔 암태도 주민들이 소작쟁의 투쟁에 참여해 승리를 쟁취했다. 신안의 섬들이 한반도 서남단의 요충지이다보니, 일제의 침략과 수탈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그 삶의 흔적은 신안의 섬 곳곳에 남아 신안의 역사가 되었다.
 
섬의 길, 신안의 길

바다로 둘러싸인 섬은 소통과 고립의 양면을 지닌다. 섬은 바다를 건너는 통로이기도 하고 바다에 갇힌 탓에 단절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고립으로 보는 관점이 많았다. 하지만 인류는 섬과 바다를 길로 만들었고, 그 섬과 바다에서 문명의 교류가 이뤄졌다. 신안의 섬들도 예외일 수는 없다.

신안군은 섬의 길 프로젝트를 멋지게 기획해 성공을 거두었다. 바로 '섬티아고 순례길'이다.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를 잇는 12km 둘레길에 12사도의 공간을 조성했다. 바닷물에 잠겼다 드러나는 노둣길은 신비롭게 다가온다. 그래서일까.

섬티아고 순례길은 이제 특정 종교나 단순 관광의 차원을 넘어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코스로 자리 잡았다. 섬과 바다의 아름다운 풍광은 물론이고, 섬에 담긴 지난한 역사와 섬사람들의 애환까지 돌아보게 한다. 그렇기에 섬티아고 순례길은 신안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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