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핑계 삼다보니 어린이날이 순식간에 스킵되었다. 마침 둘째도 아프고 해서 더더욱 무엇을 할지 상상력이 메말라 버린 것도 큰 몫을 했다. 첫째에게 어린이날 비가 와서 슬프지 않냐고 물으니 '슬프지 그래도 어린이날이잖아'라는 근사한 대답을 들었다.
 
그래도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 싶었다. 아이가 요즘 푹 빠져 있는 포켓몬 가오레 게임이라도 실컷 시켜 주려고 게임기가 있는 롯데월드 몰과 근처에 있는 홈플러스로 향했다. 아이는 그것만으로 충분해 보였다.
 
돌아오는 길에 집 앞에 있는 순댓국 집에 들렀다. 전에 아이에게 맛이 없다고 한 걸 기억하는지 "아빠 여기 전에 진짜 맛 없다고 했으면서 왜 가는 거야?" 묻기에, "내가 그때 느꼈던 맛 없음이 진짜 인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테이블에 앉아서 순댓국 하나를 시켜서 사이좋게 나눠먹었다. 나와 아이를 보는 종업원들의 시선이 마치 <우동 한 그릇>에 나오는 풍경 같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상하게 전에는 분명히 맛이 없었는데 오늘은 맛 이라는 게 있었다.

다대기를 빼서 인가, 아니면 같이 나눠 먹어서일까, 비가 오는 날이면 감출 수 없는 순댓국 맛의 증폭인가, 신기했다. 디저트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서 입에 물고 천천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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