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37번 국도가 지나는 충북 옥천군 옥천읍 죽향리 주은옥향아파트 단지 건너편으로 언뜻 뒤뚱이며 걸어가는 닭이 보인다. 천연스레 아스팔트 도로 옆으로 걸어가는 그 모습에 의아함이 고개를 든다. 불쑥 튀어나온 저 닭이 어디서 온 닭인가, 출처가 궁금해 가까이 다가가 보니 식당 주차장 한편에서 산책을 즐기는 닭 무리가 있다. 주차장 입구 옆에 수풀 아래도 한 무리 닭이 배를 깔고선 한낮의 일광욕을 즐긴다.

생경한 풍경에 말을 잊은 사이 장대근씨가 다가와 이들을 소개한다. 식당 '의정부 부대찌개&배부른생오리'를 운영하는, 그리고 이 닭들을 먹이고 키우는 이다. "저 암탉이 제일 어른이에요. 8년도 넘었으니 할머니지. 그 옆에서 모이 쪼아 먹는 애가 제일 어리고요. 쟤는 지난여름에 태어났어요."

대식구 탄생 비화

무려 닭 14명(命)을 키우는 장대근·강미숙씨 부부가 옥천읍 죽향리에서 닭들과 함께 터전을 꾸리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장대근씨의 아버지가 밭을 일구던 이곳에 이사를 오면서부터다. 밭만 가득한 땅에 건물이 세워지고 주차장이 생기던 때, 그 자리를 함께 지키던 하얀 닭이 한 명 있었다.

"걔는 매번 벚나무 중간에 올라가 잠을 잤어요. 4년 전쯤 길고양이에게 물려 죽었지만요. 처음에는 하얀 오골계 한 마리만 있었는데, 지인들이 청계를 주셔서 4마리가 됐어요. 아까 말한 할머니 닭도 그때부터 살던 닭이에요." (장대근씨)
 
청계와 오골계 4명과 함께 지냈던 10여 년 전과 달리 지금은 조선닭까지 더해 14명으로 그 수가 부쩍 늘었는데 강미숙씨는 그 이유를 "자기네들끼리 꽁냥꽁냥해서"라고 말한다.

"첫 부화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했어요. 남편이 알 품을 땐 따뜻해야 한다고 담요며 모이며 다 거기로 날랐죠. 그렇게 21일 동안 꿈쩍하지 않고 있더니 병아리를 부화시키더라고요." (강미숙씨)

알을 지정된 장소에 두면 닭들이 그곳을 알 낳는 장소로 인지한다는데, 이를 몰랐을 땐 담장 아래, 수풀 틈 등 곳곳으로 알을 찾으러 다녀야 했다. 지금은 세 장소에 알 두어 개를 남겨 일정한 자리에 알을 낳도록 유도하지만, 알 품기를 좋아하는 습성 탓에 자주 알을 빼가면 다른 장소에서 몰래 낳기도 한단다.

"지금은 좀 덜한데 날 따뜻해지면 알을 자꾸 품으려 그래요. 지난해에 할머니 닭이 저 풀밭에서 몰래 열 마리 품어서 부화시켰어요. 웬 병아리가 나타나서 CCTV로 확인해 보니까 줄지어서 주차장으로 데리고 왔더라고요. 여기가 자기들 집이라고 알려줬나 보죠(웃음)." (장대근씨)

이미 닭을 많이 키우고 있어 최대한 병아리가 부화하지 않게 하지만 이렇게 몰래 부화시키는 일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손님 중 병아리를 키우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주기도 한다.

또 다른 재밌는 사실은 자기가 낳지 않은 알도 같이 품게 하면 자식처럼 돌보고, 같이 부화한 병아리들과 형제자매처럼 지낸다는 것이다. 그렇게 같은 암탉이 품어 키우면 같은 무리가 되는데 현재 14명의 닭은 세 무리로 영역을 나눠 지낸다. 화단에 동그란 자국을 남기며 나란히 진흙 목욕을 하고, 떨어진 과실을 함께 쪼아먹으며 말이다.

우리가 몰랐던 닭의 비밀
 
장대근·강미숙씨 부부가 닭을 오래 키우며 발견한 새로운 사실이 있다. 어리석은 사람을 이르는 멸칭인 '닭대가리'가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라는 것. 강미숙씨는 "주차장 바로 앞이 도로고, 점심에는 식당을 찾는 손님 차도 많은데 차 사고가 단 한 번도 없었다"며 "닭들이 제가 안전한 곳이 어딘지를 정확히 알고 영역을 지킨다"고 설명한다. 주차장에서 자유로이 닭을 풀어놓고 키울 수 있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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