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가 과거 에도였을 때의 이야기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에 입성한 것은 1590년 8월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봉토 이전 명령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에도는 저지대 습지의 버려진 땅이었다. 농지도 택지도 부족했다. 경쟁자인 자신을 멀리 보내버리고자 하는 의도가 명확했지만, 그로서는 텐카비토(天下人)라는 당시 쇼군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억울하면 쇼군이 되는 수 밖에. 

버려진 땅이던 도쿄, 위기가 기회로

뜻밖의 봉토 이전이었지만 장점도 있었다. 에도 개척을 핑계로 임진왜란에 참전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덕분에 다른 다이묘들이 전쟁에 돈을 쏟아붓고 있을 때, 그는 착실히 자신의 군대와 영토를 늘려갈 수 있었다.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 이듬해인 1601년, 본격적으로 도로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곧 막이 오를 에도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 첫번째 도로가 바로 교토에서 에도까지 동해안을 따라 걷는 도카이도(東海道)였단다.
 
당시 교토에서 에도까지는 얼마나 걸렸을까? 도카이도를 통한 교토와 에도 사이의 거리는 124리 8정, 약 495.5km다. 당시 성인 남성이 하루 평균 30~40km을 걸었다는 검을 감안하면 도카이도 완주에는 보통 2주가 걸렸다는 이야기다.

이들이 동쪽 바닷가를 따라 걸었던 이유는 바닷가가 비교적 평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산을 피해 걷더라도 여행자들은 결국 해발 846m의 하코네산을 맞닥뜨리게 된다. 하코네산을 넘는 구간은 미시마(三島)에서 오다와라(小田原)에 이르는 길인데, 그 길이가 8리(里), 즉 32km여서 이 구간을 하치리(八里)라고 불렀다.
 
하코네산은 칼데라 지형이어서 급경사가 많은 데다, 이끼가 많아 미끄러지기 쉬운 길이었다. 전해지는 지명들 중 '여자가 넘어진 언덕(女ころばし坂)'은 말을 탄 부인이 낙마로 사망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원숭이 미끄러지는 언덕(猿滑りの坂)'은 정상부쪽 가파른 고개에 붙여진 이름이다. '하코네 하치리'라는 옛 노래 속에 '하코네 산은 천하의 험지(箱根の山は、天下の嶮)' 라는 가사가 남아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1719년에 일본을 방문했던 조선통신사 신유한도 하코네 하치리를 넘으며 해유록(海遊錄)에 '길이 험하고 몹시 가파르다'는 기록을 남겼다. 당시 함께 가던 일본 외교관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가 가마에서 내려 걷자 신유한이 그 연유를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는 "이 봉우리는 아주 험해서 말을 타고 가면 내가 다칠까 두렵고, 가마를 타고 가면 남을 다치게 할까 두렵다. 내가 힘든 게 낫다"라고 답했다고 한다(출처: 다카하시 치하야, <에도의 여행자들>).

이 길을 여러 번 지나갔던 일본 관리는, 말이나 가마를 타느니 차라리 걷는 게 낫겠다고 택한 것이다.
 
에도 시절의 도로 포장, 이시다다미(石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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