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간모옥(數間茅屋)을 벽계수(碧溪水) 앏픠 두고,
송죽(松竹) 울울리(鬱鬱裏)예 풍월 주인(風月主人) 되어셔라.
(초가 몇 간을 푸른 시냇가 앞에 지어 놓고,
소나무 대나무 울창한 숲속에서 풍월 주인이 되었도다.)
- <상춘곡> 가사 일부


정읍 칠보면 원촌마을의 뒷산인 성황산(125m)에는 가사 문학의 효시 작품인 정극인(丁克仁, 1401~1481)의 <상춘곡> 전체 문장이 오솔길 곳곳에 팻말에 씌어 전시되었다. 5백 년 전의 시가 문장이지만 그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지 않은 정극인의 가사 <상춘곡>의 배경인 정읍 성황산을 찾아 탐방 여행하였다.

성황산에서 5월 초순의 신록 숲 사이로 만경강, 동진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인 호남정맥의 묵방산이 멀리 바라보인다. 호남정맥 동쪽의 섬진강 옥정호의 강물은 유역변경 하여 칠보발전소를 거쳐 동진강 상류의 수량을 풍부하게 하였다. 

이 산 앞에 옛날에는 맑은 호수가 있었는데, 그 호수의 맑고 푸른 물결과 백사장 곁에 선비들은 정자를 짓고 예술과 학문에 정진하였다. 성황산 앞의 칠보물테마체험전시관 가까이 숲속에 정극인의 동상과 상춘곡 시비가 세워져 있다. 상춘곡 둘레길은 이곳에서부터 오솔길로 성황산을 올라가서 무성서원으로 내려가는 코스로 조성되었다. 
 
정극인은 1437년(세종 19년)에 성균관 유생일 때 척불 항쟁의 중심에서 유생들의 권당을 주도하였다. 그는 이 일로 유배 되었고 유배를 마친 후에 이곳으로 와서 초가삼간을 짓고 '불우헌(不憂軒)'이라 이름 지어 은둔하였다.

그는 서릿발 같은 기개로 행동하는 당찬 선비였다. 1453년(단종 1년)에 과거에 합격(53세)하여 관직에 있다가 단종의 왕위 찬탈에 반대하여 이곳에 다시 은거하였다. 1472년(성종 1년)에는 관직에서 은퇴하여 세번 째로 돌아와 한글 가사 '상춘곡(賞春曲)'을 짓고 안빈낙도하며 태인학당을 열었다.

상춘곡 둘레길에 있는 정자인 한정(閒亭)에는 면앙정(俛仰亭) 송순(宋純, 1493~1582)의 오언율시가 전해 온다. 이 한시에 드러나는 풍류와 당찬 기백은 불우헌 정극인의 <상춘곡> 영향을 받았음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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