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면 습지대에서 식산봉, 쌍월을 지나 마을길로 거쳐오는 동안 일출봉은 모양을 조금씩 달리하며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고, 다시 다가온다. 광치기 해변을 출발, 돌고 돌아서 도착한 곳이 출발지 인근이다. 2시간 여를 걸어왔다. 뛰어봤자 일출봉 손바닥 안이라고 해야 할까.

올레 걷기의 묘미는 이런 것이다. 지름길로 가면 단 몇 십분 거리지만, 굳이 쉬운 길을 택하지 않는다. '끊어진 길을 잇고, 잊힌 길을 찾고, 사라진 길을 불러내어 제주올레가 되었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 이유다.

오조리의 마지막 바닷길이다. 아름다운 조화라고 해야 할까. 억새와 바다, 일출봉이 한데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이다. 메마른 줄기와 열매가 삭막해 보이기는커녕 돋보인다. 여기에 빛까지 더해진다면 금상첨화 일 것 같다. 

감귤 판매, 그런데 사람이 없다
 
오후 1시, 점심은 고성리에서 제주도 향토 음식 돔베국수를 먹었다. 돼지뼈를 우려낸  육수에 돔배고기를 곁들여 주는 국수는 시원하고, 뜨끈하고, 담백하다. 배를 채우고 대수산봉으로 향한다. 30여 분 걸었을까. 서성일출로 도로변이다. 한라봉 자판기(?)가 눈에 들어온다.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은 과일 귤, 귤은 값도 비싸지 않아 병문안 때 가볍게 들고 가곤 했다. 겨울철 국민 과일이다. 지금은 그 귤은 들어가고, 개량종인 천혜향이나 한라봉이 출시되고 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제주 도로변에서 한라봉을 파는 무인판매대를 만났다. 세상에 이런 일이...

제주의 새로운 풍속도라고 해야 할까. 간혹 해외 도시에서나 듣던 이야기다. 지하철에 지갑을 놓고 내렸는데 가져가는 사람이 없었다든가, 어느 도시에는 자동차 경적을 들을 수 없다는 것들 말이다. 감귤 한 봉지에 천 원은 거저다. 제주에는 감귤 자판기가 있다.

대수산봉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과 섭지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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