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의 팔금도는 암태도와 안좌도 사이에 있다. 암태도에서 중앙대교를 건너면 팔금도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편으로 철쭉공원과 옐로우섬 표석이 잇달아 보인다. 봄이 되면 철쭉공원에 철쭉이 피고, 옐로우섬 표석 주변은 유채꽃이 넘쳐난다. 유채꽃 단지에선 매년 4월 유채꽃 축제가 열린다. 올해는 4월 12일부터 21일까지 열린다.
 
팔금도에서의 이순신

철쭉공원엔 군영소 표석이 세워졌다. 여기엔 '軍營所 丁酉 十月 李舜臣 一心'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충무공 이순신의 친필을 집자(集字)하여 새긴 것이다. 이순신과 팔금도의 인연은 1597년 정유년 10월(음력)로 거슬러 올라간다.
 
1597년 9월,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거의 궤멸한 조선 수군을 재건해 명량대첩을 일궈냈다. 대첩 직후 이순신은 곧바로 명량에서 빠져나와 군선을 수리하고 전투를 준비할 수 있는 새로운 수군 기지를 물색했다. 당사도, 어의도, 칠산 앞바다, 법성포, 홍농, 위도, 고군산도까지 북상했다.

다시 옥구, 변산, 법성포, 어의도로 남하했다. 그리고 10월 11일 발음도(發音島)에 도착해 10월 29일까지 머물렀다. 이어 고하도로 옮겨 108일 동안 머물렀고 다시 고금도로 기지를 옮겼다. 고금도에서 수군 전력을 회복한 이순신은 1598년 11월 노량해전을 승전으로 이끌었다. 당시 발음도에서 쓴 '난중일기'를 보자.
안편발음도(安便發音島)에 도착하니 바람이 순하고 날씨도 화창했다. 배에서 내려서 제일 높은 산봉우리에 올라가 배를 감추어 둘만한 곳을 살펴보았다. 동쪽은 앞에 섬이 있어 멀리 바라볼 수 없지만 북쪽으로는 나주와 영암의 월출산까지 터졌고 서쪽으로는 비금도까지 통하여 눈앞이 시원하였다. ('난중일기' 1597년 10월 11일)
새벽 두 시쯤 꿈을 꾸었다. 내가 말을 타고 언덕 위로 가는 데, 말이 발을 헛디뎌 냇물 가운데로 떨어졌으나 쓰러지지는 않았다. 막내 아들 면(葂)이 끌어안은 것 같았는데 그러다 잠에서 깨었다. 이게 무슨 징조인지 모르겠다. … 저녁에 천안에서 온 어떤 사람이 집안 편지를 전했다. 편지를 뜯기도 전에 뼈와 살이 떨리고 정신이 아찔하고 어지러웠다. 대충 겉봉을 뜯고 열(둘째 아들)의 편지를 보니, '통곡(慟哭)' 두 글자가 씌어 있어 면이 전사했음을 짐작했다. 어느새 간담이 떨어져 목 놓아 통곡하였다. 하늘은 어찌 이다지도 인자하지 못하는고. …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이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사니, 이런 어그러진 이치가 어디 있는가. 천지가 캄캄하고 해조차 빛이 변했구나. 슬프고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난중일기' 1597년 10월 14일)
내일이 막내의 죽음을 들은 지 나흘째가 된다. 마음 놓고 통곡할 수도 없어, 군영 안에 있는 강막지의 집으로 갔다. ('난중일기' 1597년 10월 16일)
 
발음도에 머무는 동안 이순신은 막내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들었다. 청천벽력 같은 충격이었지만 전쟁터의 지휘관이었기에 마음 놓고 슬퍼할 수 없었다. 와중에 이순신은 발음도에 사는 강막지라는 사람의 집에 가서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난중일기>에는 강막지라는 인물이 4차례 등장한다. 강막지는 발음도 지역의 방위에 참여하는 토착민으로, 소도 많이 길렀다. 이순신이 그이 집에 열흘 정도 기거한 것으로 보아 강막지는 통제사 이순신이 참척의 슬픔을 이겨내는데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듯하다.

그런데 발음도가 어느 섬인지를 놓고 논란이 있었다. 장산도, 안창도(안좌도), 소안도라는 견해들이 있었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최근에는 팔금도라는 견해가 유력하게 부각했다. <난중일기>의 내용과 지형상 가장 일치하고 실제 전투를 준비하는데 가장 효율적인 곳이 팔금도라는 견해다.

한 발 더 나아가 강막지가 팔금도의 유력한 토착민 출신이라는 연구 결과(정현창·김병인, 〈발음도와 팔금도·장산도 그리고 강막지〉, 2018)도 나왔다. 연구자들은 발음도 후보로 거론되는 섬 지역에서 강씨의 입도(入島) 내력을 추적했다. 그 결과 정유재란 당시 강씨는 팔금도에서만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러한 연구 등에 힘입어 최근엔 '발음도=팔금도'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2017년 팔금도 철쭉공원에 군영소 표석을 설치한 것이다. 팔금도의 주민들 사이에 전해오는 이야기와 여러 고증을 토대로 중앙대교 남단인 팔금도 북쪽 해안(철쭉공원)이 이순신 군영이 위치했던 곳으로 추정했다.

팔금도에 머물렀던 기간은 이순신의 생애에서 가장 슬프고 가장 힘겨운 시기였다. 그러나 비통함은 끝내 무서운 힘이 되어 노량해전의 승리의 밑거름이 되었다. 어쩌면 이순신의 생애와 임진왜란·정유재란의 흐름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김한민 감독의 영화 <노량>(2023년 개봉)에서 이순신이 막내아들 꿈을 꾸는 장면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비 이순신을 이해할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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