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함을 가르쳐주던 목련이, 봄의 화사함을 보여주던 서부해당화가, 수줍음에 붉게 웃음 짓던 미산딸나무가, 진한 향기로 유혹하던 라일락이 이제 내년을 기약한다. 지금은 가야 할 때라고.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후략) 
- 이형기, '낙화' 


가야 할 때를 아는 아름다움

이 시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이다. 친구가 교과서에서 배우지도 않은 시를 읊으며, 얼마나 멋지냐며 나에게 말한다. 여자 친구와 이별한 뒤 이 시구절로 자기를 위로한 모양이다. 나는 당시 연애와 문학에 대해 전혀 눈을 뜨지 못한 어리숙한 아이였다. 그런데 친구는 일찍 이 세계에 눈을 떴다. 친구가 멋있어 보여 친구 옆에 붙어 다니며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수십 년이 흘러 교사 정년퇴임을 앞두고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 것인가 보다 '어떤 마음'으로 살 것인가를 먼저 생각했다. 그때 이 시구절이 떠올랐다. 삶의 큰 틀이었던 직업을, 싫든 좋든 이제 내려놓아야 할 때이다.

직장은 개인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이고, 가정 경제의 바탕이다. 나는 정년퇴임 하는 날까지 교사라는 직업이 버거워 힘들었지만 그래도 교사인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 어디에서도 교사라는 직업으로 주눅이 들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의 직장이 우리 집 경제의 유일한 원천이었다. 아내의 지극한 검소함으로 아들과 딸의 뒷바라지를 큰 무리 없이 했다. 그리고 가끔 외식과 여행으로 소소한 행복도 누렸다.
 
그런데 이제 물러나야 한다. 나의 의지로, 열정으로 어떻게 할 수 없다. 교사로서 자부심만 있었지, 부족한 능력으로 교사 역할을 충분히는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지 말고 학교를, 교사를 내 삶에서 완전히 잊어야 한다.

누군가가 말했다. 지금까지 아이들을 지도해 왔으니, 퇴임 후 '이것도 해보지', '저것은 어때'. 나는 그 말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가야 할 때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고 하지 않는가?
 
주말마다 1년 6개월 동안 한 일

하나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길로 들어설 수 있는 것은 축복이다. 새 길을 시골에서 찾았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시골 오지에 조그만 집을 마련했다. 시골살이는 몸을 움직여야만 한다. 지금까지 못 하나 박은 적이 없고, 형광등 교체조차도 할 줄 모르는 내가 이 길을 택했다.
 
집을 마련하고 먼저 한 일이 잔디밭 정리이다. 집 둘레가 잔디밭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햇볕이 들지 않은 그늘진 곳의 잔디는 제대로 자라지 못하여 보기도 흉하고, 비가 오면 다니기조차 힘들었다. 사람들은 잔디 가꾸는 것이 힘이 드니 잔디를 걷어내고 돌을 깔든지 아예 시멘트로 마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을 보탠다.

그래서 잔디를 걷어내고 쉼터로 만들었다. 그 작업을 주말마다 1년 6개월 동안 하였다. 몸이 정말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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