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국어 교사로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 6년을 살았다. 그 기간 작은 내 방에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책이 쌓여 갔는데, 책장을 놓을 공간이 없어 박스에 책을 쌓아두고 지냈다.

게다가 축구와 헬스를 즐기고 패션에도 관심을 두면서 짐은 끝도 없이 늘어났고, 내 방은 창고에 사람이 누워 지내는 느낌으로 변해갔다. 박스에 쌓아둔 책이 넘쳐 쏟아질 때면 독립해서 큰 책장에 책을 가득 꽂아두고 싶었다. 내 형편에 드레스룸을 가질 수 없다면 넓은 원룸이라도 구해서 옷을 위한 공간이라도 따로 만들어 놓고 싶었다.
 
내 방을 꾸미다

일하는 학교도 가까운데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다며, 미루고 미루던 독립을 작년에 갑작스레 하게 되었다. 그것도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 교사 채용에 합격하게 되어 부산을 완전히 떠나게 되었다. 매일 책에 파묻혀 지내고, 온라인 공부 모임을 하느라 퇴근만 하면 창고 같은 방에서 노트북을 놓고 울고 웃는 나를 부모님은 언제나 '특이하다'고 했다.

서울에서 살아보겠다고 했을 때는 굳이 그렇게 피곤하게 살아야겠냐고, 내 아들이지만 내가 참 독특한 애를 낳은 것 같다고 말하셨다. 그럴 때 나도 부모님과 내가 분명히 유전자로 이어져 있는데 인생의 초점과 욕망이 이렇게나 다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서울 성북천이 흐르는 조용한 동네에 9평 정도 되는 분리형 원룸을 구했다. 서울의 공공자전거 '따릉이' 정류장이 코앞에 있었고 자전거로 10분이면 새로운 학교로 출퇴근할 수 있는 곳이었다. 개학하기 한 달 전 미리 이사를 했고, 그때부터 내 방을 꾸미기 시작했다. 꼬박 2달을 넘게 방을 꾸미는 데 시간을 썼다.

나는 부산에서 살며 품었던 모든 희망 사항을 실현했다. 크고 튼튼한 책장을 사서 박스에 있던 책을 모두 꽂았다. 커다란 원목 테이블을 책장 옆에 놓았다. 6년 동안 일하면서 모은 돈을 퍽퍽 쓰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렇게 페르시안 카펫이 깔려있고 원목 가구로 가득 찬 내 방을 완성했다. 침대 위에는 무늬 없는 짙은 초록색 이불을 깔았고, 책을 읽거나 멍때릴 때 좋은 1인용 소파도 샀다. 방 한쪽에는 바다와 푸른 나무가 함께 있어 마음이 편안해지는 커다란 사진 액자를 놓았다.

'이제 방이 완성됐구나.' 그런 느낌이 왔던 날, 괜히 소파에 앉아 방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책이 가득 꽂힌 책장을 손으로 쓰다듬기도 했다. 모든 걸 완성하고 나니 어쩌다 내가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는지, 어쩌다 교사가 되었고 서울까지 왔는지, 이런 공간을 꾸미고 싶은 욕구는 어디서 생긴 건지 여러 생각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자취의 외로움과 자유로움을 오가며 여름을 보내는 동안에도 그날 책장을 만지며 떠올린 의문들을 종종 생각했다.

그해 추석 연휴에 부모님이 서울로 오셨다. 서울살이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셨고, 평생 경상도에서만 살면서 말로만 듣던 서울을 아들 덕에 구경해보고 싶다고 했다. 직접 만든 식혜와 냉동 오리 불고기를 바리바리 짊어지고 온 부모님은 내 방에 들어서자마자, "누구 아들래민지 참 잘 꾸며놓고 사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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