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깊이 사랑하던 연인에게 이별을 고하고 돌아서는 사람의 뒷모습처럼 쓸쓸한
11월. 겨울 추위를 앞둔 한해의 끝자락에 마음은 가을걷이가 끝나고 텅 빈 들판처럼 헛헛하다. 

그래서 11월에는 순천만에 간다. 삽상한 가을바람 한 자락이 지나가면 드넓은 갈대밭이 출렁인다. 출렁이는 은빛 갈대밭에 서면 헛헛한 마음이 시나브로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세계 5대 연안습지 중 하나이며 우리나라의 유일한 흑두루미 서식지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순천만은 거대한 갈대군락과 광활한 갯벌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순천만의 S자형 수로는 사진작가들이 선정한 10대 낙조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무진교를 지나 갈대밭 사이로 만들어 놓은 데크길을 걷는다. 갈대는 보통 9월 말쯤 꽃을 피워 꽃에 솜털이 차오르는 10월 말에서 11월 중순까지가 가장 아름답다. 또한 갈대는 물가에서 자라며 키가 크고 줄기가 텅 비었으며 수술의 양이 많고 갈색을 띤다.  
 
  
 
갈대축제는 끝났지만 아직도 사람들의 발걸음은 잦다. 평평한 길이 끝나는 곳에
'용산전망대 1.3㎞, 왕복 40분'이라고 써놓은 표지가 서 있다. 전망대로 가는 길은
그다지 힘들지 않다. 전망대에 서면 동그랗게 여러 개의 원을 이룬 갈대밭과 물길이 만들어 놓은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와온 앞바다에 떠 있는 솔섬과 이제는 붉게 변한 칠면초가 보인다. 전망대에 한참 머물며 자연의 혜택을 마음껏 누린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해룡면 농주마을로 칠면초를 보러 간다. 갈대밭과 달리 찾는 사람이 별로 없고 칠면초를 알리는 표지도 없기 때문에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논길을 어렵사리 들어가서 조그마한 공터에 차를 세웠다. 
 
  
 
조금 걸어 들어가니 붉은 칠면초가 나타났다. 칠면초는 한해살이풀로 처음에는 녹색이었다가 차츰 붉은색으로 변한다. 칠면조의 얼굴처럼 붉어진다 하여 이름이 그렇게 붙었다고 한다. 어린순은 나물로 먹기도 하는데 지난해 증도에 갔다가 어린 순으로 만든 튀김을 먹은 기억이 난다. 솔섬과 조화를 이룬 칠면초의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여행정보]

- 농주마을로 가는 길 : 순천시 해룡면 농주리 522-3번지
- 근처에는 짱뚱어탕을 끓이는 집도 있고 지금 제철인 꼬막요리를 만드는 식당들이
있어 별미로 맛을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절기상 입동이 지나고, 소설이 다가온다. 가을도 이제 뒷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가을의 뒤태는 여전히 현란하다. 단풍으로 물든 산하는 마지막 화염을 불태우고 있다. 하얀 손 흔드는 억새와 바람에 춤을 추는 갈대도 애틋하다. 칠면초가 활짝 핀 갯가, 주홍빛 단내를 머금은 곶감이 익어가는 산골 마을 풍경도 아름답다.
 
산자락이 빨갛게 물든 지리산 기슭의 구례 산수유마을로 간다. 지난 봄날, 왕관처럼 생긴 노란 산수유 꽃으로 수 놓였던 마을이다. 지금은 산수유나무가 빨간 열매를 매달고 있다.
  
   
 
산수유 열매는 조그맣게, 빨갛게 익어간다. 크기가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 하거나 그보다 조금 작다. 흡사 루비처럼 생겼다. 이 열매가 지리산 단풍이 진 자리에서 빨간 선홍 빛깔로 우리의 시선을 붙잡고 있다. 강렬하면서도 애잔하다. 화려하면서도 수수한 멋을 뽐내고 있다.
 
산수유 열매 수확도 한창이다. 산수유 열매는 벼 수확이 끝날 무렵 익기 시작한다. 수확은 11월 말까지 계속된다. 지난봄 산수유꽃의 자태에 취한 도회지 연인들이 밀어를 속삭이던 그 돌담길에서, 지금은 산골 마을 사람들이 산수유를 따느라 부산하다.
  
겨울밤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까던 그 열매
 
   
 
산수유 열매는 일일이 손으로 따야 한다. 일손이 많이 들어간다. 산수유나무 아래에 벼나 콩 같은 것을 말릴 때 쓰는 그물망을 깔아놓고 긴 대로 나뭇가지를 때려 열매를 털어낸다. 사람이 나무에 올라가서 흔들어대기도 한다. 마치 우박이라도 쏟아지듯, 지리산이 품은 빨간 보석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이파리를 빼고 열매만 솎아내는 것도 일이다. 예전엔 손으로 골라냈다. 지금은 농약살포기 같은 것으로 바람을 일으켜 이파리를 날리고 열매만 골라낸다. 열매의 씨앗을 빼는 일은 기계로 한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씨앗을 하나하나 손으로 발라냈다. 긴긴 겨울밤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서 했다.
  
   
 
구례 사람들은 그렇게 까서 판 산수유로 자식들을 학교에 보냈다. 산수유나무를 '대학나무'라 불렀다. 그때는 산수유 값이 좋아서 가능했다. 지금은 재배면적이 크게 늘면서 가격이 많이 내려갔다.
 
지리산골에서 이어온 산수유 농업이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됐다. 4년 전, 2014년의 일이다. 농사지을 땅이 부족한 산골 마을 주민들이 생계를 잇기 위해 심은 산수유나무였다. 마을 어귀는 물론 산등성이, 돌담길, 논두렁밭두렁에 심은 산수유 재배가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지역 고유의 삶과 문화를 만들었다.
 
지난해 말 구례의 산수유 재배면적은 300㏊. 재배농가는 1400여 가구에 이른다. 생산량은 전국의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산수유 열매는 우리 몸에 좋다. 갖가지 유기산과 비타민이 풍부한 산수유는 건강식품이다. 당뇨와 고혈압, 관절염, 부인병, 신장계통에 좋다. 원기를 보충해 주고, 강장제로도 활용된다. 여성들의 건강과 미용에도 좋다.
 
산수유는 떫고 신맛을 낸다. 대개 술로 담그거나 차로 끓여 마신다. 차는 한두 시간 달여서 마신다. 취향에 따라 설탕이나 꿀을 첨가하기도 한다. 감초 등 다른 약재와 섞어 끓이기도 한다. 술로 담글 때는 다른 과실주와 매한가지다. 씨를 제거하고 깨끗이 씻어 담근다. 나중에 열매를 빼고 술만 마신다.
  
   
 
구례 늦가을 여행법

산수유마을을 둘러본 뒤에 가볼 만한 곳도 여러 군데다. 지리산이 품은 소박한 절집 천은사가 가깝다. 얼마 전 끝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촬영 배경지였다. 감로수가 있다고 감로사(甘露寺)였다. 스님이 구렁이를 잡은 뒤로 샘이 숨어버렸다고, 천은사(泉隱寺)가 됐다.
 
그 뒤로 불이 자주 났다. 동국진체의 완성자인 원교 이광사가 물이 흐르는 듯한 글씨체로 '지리산 천은사'를 써서 현판을 건 뒤로 화재가 잠잠해졌다는 절집이다. 절집 옆 계곡을 따라 이어진 소나무 숲길도 멋스럽다. 300살 된 소나무를 만날 수 있다.
  
   
 
최근 전라남도의 민간정원으로 지정된 쌍산재도 좋다. 200년 된 옛집을 둘러싼 1만6500㎡의 정원을 품고 있다. 사랑채와 안채, 바깥채, 사당 그리고 장독대가 올망졸망하다. 비밀의 정원으로 이어주는 대나무와 차나무 어우러진 길, 동백나무 터널이 멋스럽다. 곡식이 나지 않는 춘궁기에 어려움을 겪는 이웃들을 위해 곡식을 채워둔, 안채에 딸린 나눔의 뒤주도 애틋한 옛집이다.
 
절벽 위에 들어앉은 암자 사성암의 늦가을 풍경도 아름답다. 암자에서 내려다보는 섬진강과 구례읍내 풍경이 아늑하다. 꽃으로 그린 환상적인 그림, 압화를 만날 수 있는 구례압화박물관도 좋다. 지리산 성삼재에서 뱀사골로, 정령치로 드라이브를 하는 것도 늦가을 여행법 가운데 하나다. 
 
갑자기 바다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서울에서 전철을 타고 바다에 갈 수 있는 곳은 안산의 오이도, 인천의 무의도 등이 있다.

13일 인천의 무의도, 그 속의 소무의도에 다녀왔다.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서 내려 1여객터미널 7번 게이트 앞에서 2-1버스(매시간 50분), 222번 버스(매시간 20분)를 타고 잠진도 선착장으로 간다.

인천 제1여객터미널에서 잠진도 선착장으로 갈 때 공항자기부상열차를 타고 용유역에서 내려 바닷길을 잠시 걸어 잠진도 선착장으로 가는 방법도 있다. 자기부상열차는 무료이다.

잠진도 선착장에서 무의도로 가는 배를 탔다. 요금은 왕복 4천 원이다. 평일이어서 배를 탄 여행객은 10여 명 정도이다. 무의도 선착장에서 내려 바로 소무의도로 가는 버스를 탔다.  
 
   
   
   
   

무의도에 오면 대부분 호룡곡산 산행을 하는데 이날은 소무의도 바다누리길을 걷기로 했다.

우리와 같이 버스를 타고 온 60대 여성 다섯명도 소무의도 바다누리길을 걷는다고 한다.

바다는 썰물 때라 바닷물이 멀리 물러 갔다. 다리를 건너 소무의도로 들어간다. 아내와 나는 먼저 계단으로 된 산을 오른다. 5분 정도 오르면 정상이다.

집에서 늦게 출발하여 지금 시간이 정오를 넘었다. 정상에 있는 정자에서 점심을 먹을까 했는데, 정자에는 다른 여행객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

우린 조금 내려가 해녀섬이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는다. 아래 바닷가 바위 위에서는 한 낚시꾼이 낚시를 하고 있다.

여유 있게 점심을 먹고 차까지 한잔 마시니 기분이 상쾌하다. 아내가 "올 가을 여행 중에 가장 즐거운 여행이다"라고 한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천천히 바다길을 걷는다. 바닷가에는 곳곳에서 작은 고동을 줍는 사람들이 보인다. 넓은 바위 위에서는 여행객들이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바닷가 바위 위에 누군가 형형색색의 깃발을 달아 놓았다. 예술적 표현인지, 무속인이 의식으로 만들어 놓았는지 알 수가 없다.

해안을 돌아서니 마을이 나온다. 해안에 언두꾸미라는 표지가 있다. 

'소무의도는 언둘그물을 매는 적지로 과거 150칸을 설치할 정도로 대 성황을 이루었고, 언둘그물이 변해 언두꾸미가 되었다. 언둘그물은 조수 흐름을 이용하여 갯벌에 참나무를 세우고 그물을 쳐서 물고기를 잡는 방식을 말한다.'

해안에는 작은 박물관도 있어 소무의도를 알아 볼 수 있도록 했다. 마을을 지나 언덕에 올라서면 바다 건너 송도가 보이고 인천대교도 보인다.

다리를 건너 무의도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많은 여행객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바로 옆에는 관광차로 온 여행객들이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하고 있다.
뉴스에서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서울 식물원이 임시 개방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간을 내서 가 보아야지 생각하다가 지난 14일 오후 2시, 서울 식물원에 다녀왔다.  공원속의 식물원으로 잘 조성된 정원을 걷는 것도 즐거움이다.

서울 식물원은 크게 열린숲, 호수원, 습지원, 주제원으로 구분할 수 있다. 열린숲, 호수원, 습지원은 연중 무휴로 개방하고 주제원은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주재원 개방시간은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이다.
 
   
   
   
   
   
서울 식물원은 전철 9호선, 공항철도 마곡나루역에서 내려 3번 출구로 나오면된다.  광장에 올라서면 서울 식물원 방문자센터가 보인다. 

넓은 식물원(50만 4000㎡)으로 진입 광장에서 한강 전망데크까지 다녀오면 운동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잘 조성된 길을 걷다 보면 주제원 입구가 나온다.  주제원은 각종 정원과 온실, 마곡문화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먼저 온실을 찾았다.

온실은 열대관과 지중해관으로 이루어졌는데 지중해관을 지나면 온실 위로 걸으며 관람할 수 있는 스카이워크로 올라갈 수 있다.

지중해관을 돌다 보면 바오밥나무를 볼 수 있다. TV에서 보던 바오밥나무를 실제로 보니 기분이 좋다. 바오밥나무는 아프리카에서 자라는데 2000년 이상 생육이 가능하다고 한다. 성장한 바오밥나무는 몸통에는 3톤가량의 물을 함유하고 있어 가믐이 극심한 건기에 나무의 줄기에 꼭지를 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온실을 찾은 많은 사람들이 기념 사진을 찍기도 하며 즐거워 한다. 온실을 나오면 선물가게, 카페 등이 있어 휴식을 취할 수도 있고, 도서관을 이용할 수도 있다.

온실을 나와 물가 가로수길을 걸어서 마곡나루역으로 돌아간다. 아직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공사하는 곳이 많다. 내년 5월에 정식 개원이 되면 가족끼리, 연인끼리 찾아와도 좋고, 자녀들 학습을 위해 찾아와도 좋은 명소가 될 것이다.
15일은 수험생들이 오랜 학업의 결실을 맺는 수학능력시험날이다. 매년 수능시즌이 다가오면 유통업계는 수험생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하여 이목을 끈다. 대한민국 정통 아웃도어 브랜드 레드페이스(대표 유영선)는 올 겨울 예보된 한파에도 끄떡없는 롱패딩을 경품으로 하여 그 동안 고생한 대한민국 수험생을 응원하는 ‘수능 대박 기원 이벤트’를 진행한다...
파리는 걷기에 아주 좋은 도시다. 어딜 가나 길이 곧고 평평하며 널찍한 인도가 따로 나 있다. 소르본대학 위쪽에 있었으나 지금은 폐쇄되었다는 레스토랑 '와트(Watt)'의 차양 천막엔 "마시고, 먹고, 수다 떨고, 즐기고, 걷는다(boire, manger, bavarder, s'amuser, flâner)..."는 글자가 적혀 있었는데, 거기 등장하는 플라네르(flâner)가 파리를 걷는 데 어울리는 단어다.
 
보통 '산책'으로 번역하지만 감정 중립적인 프롬나드(promenade)와 달리 플라네르는 영어의 스토롤(stroll)처럼 '한가로이 걷다', '어슬렁거리다'는 뜻으로 우리처럼 여기저기 구경하며 걷는 관광객에게 어울리는 단어다.
 
미술품 같고 유적 같은 파리의 건물들을 보면서 한가로이 걷고 있던 아빠가 '녹색길(La Coulée Verte)'을 한번 걸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다. 이때 걷는 것은 '플라네르'가 아니라 '프롬나드'다. 그래서 '녹색길'의 원래 이름을 '프롬나드 플랑테(Promenade Plantée)', 즉 '초목(이 심어진) 산책로'로 붙였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아빠가 덧붙이셨다.
 
뉴욕 하이라인파크의 원조

'녹색길'의 풀 네임은 '쿨레 베르트 르네-뒤몽(Coulée verte René-Dumont)' 곧 '르네-뒤몽 녹색길'이다. 위치는 이미 가본 일이 있는 12구역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바스티유역에서 내린 뒤 동남쪽으로 내려가면 도메닐가(Avenue Daumesnil)를 만나게 된다. 그 거리와 나란히 뻗은 고가 산책로가 바로 녹색길이다.
 
 
오페라 바스티유 부근에서 시작되는 녹색길은 파리 동남쪽 외곽의 벵센느 숲(Bois de Vincennes)까지 총 4.5㎞인데, 도심의 건물들 사이로 놓인 고가 산책로 1.5㎞ 정도를 왕복하는 것으로 목표를 세우고 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입구에 파리 시청에서 세운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개를 데리고 걸어도 안 되고, 롤러스케이트나 보드를 타도 안 되며, 자전거를 타도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오직 사람의 산책만 허용되는 길이다. 과연 여기저기 걷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산책로의 모양은 다양했다. 장미덩굴이나 아칸서스 또는 라벤더가 심어진 꽃길 형태도 있고, 등나무나 담쟁이덩굴로 덮인 아치형 길도 있으며, 대나무, 단풍나무, 살구나무, 라임나무 등의 가로수가 심어진 길도 있고, 건물과 건물 사이로 난 육교 위에 널빤지를 깐 길도 있으며, 잔디가 심어진 구름다리나 적교형 길 또는 터널 길도 있었다.
 
 
약 9m 높이의 공중에 들어 올려진 녹색길은 본래 버려진 철도였다. 바스티유광장에서 파리 동남쪽에 있는 마렌느 셍모르까지 철도가 놓인 것은 1859년이었고, 이 노선이 폐쇄된 것은 1969년이었다.
 
그로부터 도심의 흉물로 남게 된 폐철도를 처리하기 위해 여러 방안이 모색되었는데, 수년간의 토론 끝에 얻은 결론은 버려진 철도를 고가공원으로 재생시키자는 것이었다. 세계 최초의 고가 산책로였다. 그래서 초기 이름은 '초목 산책로' 곧 '프롬나드 플랑테'였다. 1988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1994년 완공했다.
 
말없이 걷고 계시던 아빠가 입을 여셨다.

"마르코 폴로라고 들어봤지? 아버지를 따라 원나라에 갔다가 그곳에서 17년 동안 관리생활을 했던 베네치아 사람. 그가 고향에 돌아올 때 가져온 물건 가운데는 국수가 있었다. 이 국수를 응용해서 만든 게 마카로니야."
"그래요?"

 
아니라는 설도 있지만 일단은 그렇게 보신다면서 아빠는 그 비슷한 사례로 화약을 드셨다. 원래는 악귀를 쫓기 위한 폭죽으로 사용되던 건데, 서양에 넘어가선 총과 대포가 되어 중국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다. 녹색길을 보니 뉴욕의 '하이라인파크(High Line Park)'와 서울역 앞의 '서울로7017'이 생각난다고 하셨다.
 

"아, 알겠어요. 뉴욕 하이라인파크가 파리의 녹색길을 모방하고, 서울로7017이 뉴욕 하이라인파크를 모방했다는 얘기죠?"
"그래, 태양 아래 새로운 건 없다. 서로 베끼고 모방하면서 발전하는 거지. 그런 의미에서 문명은 전달이다."

  
   
나는 버려진 철도를 산책로로 만든 뉴욕의 하이라인을 보고 감탄한 일이 있었는데, 그게 파리의 녹색길을 모방한 거였다는 사실에 약간 충격을 받았다. 역시 파리는 만만치 않은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파리는 날마다 축제
 
녹색길을 걷던 아빠는 파리 시내 어디라도 블록마다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된 쓰레기통을 손으로 가리키셨다. 쓰레기통이라기보다는 둥근 철사에 끼운 비닐봉투였다. 녹색길과 더불어 거리의 비닐 쓰레기통이 파리의 재치를 느끼게 하지 않느냐고 하셨다. 던져 넣기도 쉽고 다 차면 청소부가 거둬가기도 쉽고.
  
   
"그러고 보니 파리의 재치를 느끼게 한 것이 또 하나 있어요. 화장실이요. 보통은 플러시를 누르는 지렛대나 버튼이 변기 뒤쪽에 달려 있는데 이곳은 플러쉬 버튼이 사람 허리 높이의 깨끗한 벽에 따로 설치되어 있어요. 팔만 뻗으면 편히 물을 내릴 수 있도록. 그것도 대소변 따로따로. 거리의 쓰레기통이나 화장실의 플러쉬 단추도 언젠간 서울에 전해지겠죠?"
"그러지 않을까? 문명의 전달이란 관점에서."

 
 
"일주일간 파리 여행의 소감이 어떠세요?"
"헤밍웨이는 이런 말을 했다. '당신에게 충분한 행운이 있어 젊은 시절을 파리에서 살았었다면, 파리는 '이동축제일'이니까, 어디를 가든 남은 일생 파리는 당신과 함께하게 될 것이다(If you are lucky enough to have lived in Paris as a young man, then wherever you go for the rest of your life, it stays with you, for Paris is a moveable feast)'."
 
"무슨 뜻이에요?"
"파리에 대한 추억은 크리스마스 같은 '고정축제일(immoveable feast)'처럼 정기적으로 나타나진 않더라도 해마다 날짜가 달라지는 부활절이나 추수감사절 같은 '이동축제일(moveable feast)'처럼 예기치 않은 순간에 당신의 삶 속에 불쑥 나타나게 될 거라는 그런 얘기다."

 
"헤밍웨이가 쓴 책 < A Moveable Feast >를 <파리는 날마다 축제>라고 번역한 책이 있어 좀 의아했어요. 어떻게 날마다 축제가 있을 수 있나 하고. 날마다는 아니지만 이동축제일처럼 예기치 않은 순간에 불쑥 생각나는 파리..."
 
"어느 정도 인생을 살아온 아빠가 요즘 와서 느끼는 것은 인생 자체도 한번 뿐이지만 사실은 매 순간이 마지막이라는 깨달음이다. 같은 사건, 같은 인물, 같은 환경, 같은 느낌은 다시 되풀이되지 않더라. 그래서 너와의 이번 여행이 아빠의 남은 삶 속에서 이동축제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너는 어떠냐?"
 
"다시 오고 싶은 생각이 드는 도시에요. 전 꼭 한번 다시 올 거예요."
"어떤 점이 그런 생각을 들게 하더냐?"


나는 핸드폰에 저장해두었던 글을 클릭했다.
 
파리의 뒷골목, 예술, 문학, 요리... 아니 프랑스의 문화 전반에 대해 당신이 들어온 그 화려한 신화들은 어떤 형태로 전달되었든 모두 진실일 것이다. 한때는 '누구나의 제2 조국(le deuxième pays de tout le monde)'이라고도 불리던 프랑스. 그 수도인 파리는 오늘도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은 도시이며 또 보고 나면 누구나 저마다의 형용사를 간직한 채 돌아가게 되는 곳이다. 지성과 사랑과 자유의 도시라던 세계인의 파리.
 
얼마쯤 감동의 이미지가 오버랩 되어오지 않는다면 당신은 분명 나이 어린 세대에 속하고 있을 것이다. 간접적이나마 파리의 명성을 알고 있는 세대에게 있어서, 한 줄기 노스탤지어가 없을 수 없음은 아마도 '도시의 원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파리에 존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19세기에 프랑스인이 처음 만들어 내었던 섬세하고도 현란한 도시적 문명. 파리는 그 본바닥이었다.
 
"이건 뭐냐?"

아빠가 조금 놀란 표정으로 물으셨다. 39년 전 아빠가 파리를 방문하시고 나서 언론 매체에 발표하고 책으로 출간하셨던 글의 일부다. 일주일 동안 파리를 여행한 총체적 소감은 아빠가 느끼셨던 당시의 소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진정한 여행이란
 
  
"아니, 난 네가 느낀 소감을 듣고 싶은 거다."
"파리는 아름답죠. 하지만 그런 상투적 표현을 넘어서는 뭔가 묘한 매력 같은 게 있어요. 사실 파리를 여행하는 동안 머릿속에 자크 프레베르의 시가 자꾸 떠올랐어요."

 
수천 년 수만 년도 Des milliers et des milliers d'années
충분친 않을 거야 Ne sauraient suffire
그 영원의 짧은 순간을 Pour dire
말하기에는 La petite seconde d'éternité
네가 내게 입 맞춘 Où tu m'as embrassé
내가 네게 입 맞춘 Où je t'ai embrassèe
어느 눈부신 겨울날 아침 Un matin dans la lumière de l'hiver
파리 몽수리 공원에서 Au parc Montsouris à Paris
파리에서 A Paris
지상에서 Sur la terre
우주의 한 별 위에서 La terre qui est un astre.
 
파리를 여행하는 동안 어떤 시점부터는 그 영원의 짧은 순간을 포착한 듯한 기분이었다. 내가 포착한 순간이란 새로운 생각과의 입맞춤이다. "발견의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데 있다(Le véritable voyage de découverte ne consiste pas à chercher de nouveaux paysages, mais à avoir de nouveaux yeux)"는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처럼.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새로운 생각을 공급해주는 샘(泉)이고 삶의 자신감이다. 내가 깨달은 것은 인생은 단 한 번밖에 볼 수 없는 책인데, 나는 너무 띄엄띄엄 읽어왔다는 점이다. 이제부터라도 찬찬히 읽어보자.
 
그런 각오와 다짐은 쳇바퀴 돌듯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실타래같이 뒤엉켜 어디가 시작인지도 모를 스트레스와 공허감으로부터 빠져나올 용기와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강력한 충전이다. 우주의 별인 지구 위에서, 지상에서, 파리에서, 파리 거리의 한 모퉁이에서, 나는 속도감 있게 축소돼 진주처럼 영롱해진 나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날 오후, 공항으로 달리는 우버 안에서 옆자리를 보니 아빠는 연일 계속된 강행군으로 피로하셨던지 깜빡 잠이 들어 계셨다. 어릴 때 부모는 아이들의 우주다. 하지만 내 우주였던 아빠는 이미 연로하셨다. 그렇게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핑 눈물이 돈다.
 
차가 흔들리면서 무릎에 놓였던 아빠의 손이 떨어졌다. 그 손을 붙들어 무릎에 다시 올려놓았는데 아빠는 눈을 감은 채 내 손을 꼭 잡으셨다. 의외로 따스하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여행 중에 가장 만나고 싶었던 '아빠'를 이미 만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차창으로 보이는 파리의 하늘은 오늘도 도착하던 날처럼 맑고 푸르렀다. 나는 나를 발견하고 아빠를 만나게 해준 파리에 작별인사를 고했다.

"Au revoir Paris(안녕, 파리)!"
 
 
잡다한 섬이 3000여 개인 하롱베이, 그러나 제대로 볼 수 있는 섬은 1970여 개라고 합니다. 이런 하롱베이가 지금은 전 세계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황금시장이 되었습니다. 농사를 지을 때 작물 성장을 돕기 위해 밭에 비료를 뿌리듯, 베트남 하롱베이에도 누군가가 하늘에서 무언가를 뿌려 이런 아름다운 섬들이 만들어졌나 봅니다.
 
날씨가 구름이 많이 끼고 흐려 멀리 있는 섬들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고, 흐리게 보여 너무 아쉽습니다. 언제 한번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그때 또 날씨가 안 좋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또 갑자기 하늘이 파랗게 금방 맑아지기 시작합니다. 참 알다가도 모르는 하롱베이 날씨입니다.
 
   
하롱베이에는 섬들이 옹기종기 친구처럼 붙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많이 보았던 그리고 비슷한 모습을 한 섬들이 있습니다. 키스바위에서 멀리 보이는 섬을 바라다보면 쌍둥이 섬이 보입니다. 앞과 뒤 섬 모습이 흡사 쌍둥이 형제 같습니다.
  
 
날씨가 흐려 멀리 있는 섬들의 모습이 까만 돌섬처럼 보입니다. 섬들로 엉켜있는 오른 편에 가까이서 보니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처럼 생긴 섬이 보입니다. 또 중앙에는 둥근 부분이 베트남 3대 명물인 농 모자의 윗부분같이 생겼습니다. 농 모자와 비슷하게 생겨 이름을 지어 준다면 농바위로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많은 섬들 중에 유난히 못생긴 섬들도 있습니다. 이런 섬들은 어디 내놓아도 쳐다보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롱베이 섬안에 있어 아름답게 보일뿐입니다.
 
   
하롱베이 섬들은 관광객들이 서로 이름을 붙인 곳이 많은데 여기 보이는 섬은 한자 산(山)과 같은 모양입니다.
 
   
여기 아름다운 하롱베이 섬들은 베트남이지만, 여기서 한 시간을 가면 바로 중국이라고 합니다. 하롱베이는 경관도 좋지만 여기 해저에 과학적인 연구 가치가 있는지 과학 지구로도 정했다 합니다. 여기는 바닷물이 빠지면 섬과 섬을 걸어서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붙어 있습니다.
  

중간에 보이는 섬 위에 정자처럼 보이는 게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정자가 아니고 정자처럼 생긴 섬의 모습입니다.
 
   
섬 주위에 있는 이 집은 목선들이 운행 중 급한 일이 있을 때 신고하는 곳이라 합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사람이 기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보화시대 위급하면 유무선으로 연락하면 될 터인데, 바다 속 하롱베이 날씨는 예측할 수 없어 이렇게 특별한 시설을 해두었나 봅니다.
  
 
하롱베이 섬들을 운행하는 목선들이 보이는데, 저런 목선들이 하롱베이에만 2천 척이 넘는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섬입니다. 중국 장가계를 여행했을 때 육지에서 이런 섬들의 모습과 같은 산들을 보았는데 정말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하롱베이 섬들은 깎아지른 절벽이라 사람들은 올라가지 못하는 곳입니다,
 
   
우리 일행들은 목선을 타고 관광을 하지만, 일행 중에도 몇 분은 크루즈선에 많은 관심을 보입니다. 크루즈선에서 1박을 하며 하롱베이 섬을 관광하려면, 하롱베이 가기 전 여행사에 별도 상품으로 미리 예약을 하여야 합니다.
 
현지 가이드 말로는 하노이에서 하롱베이까지 크루즈 1박 비용 포함하여 모든 비용이 인당 17만 원부터 30만 원, 그 이상까지 다양하다고 합니다. 낭만을 즐기시는 분들은 한번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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