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의료기관에서 작업치료사로 일한 지 13년이 됐다. 열정 하나만으로 뛰어든 사회초년생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선배의 위치가 됐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때는 '작업치료사'라는 직업이 생소했던 탓인지 만나는 사람마다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보기 일쑤였다. 일일히 생각하고 대답하기 번거로워 어느 순간부터 멘트를 외우게 됐다. 

"목적 있는 활동을 통해 장애인의 일상생활을 돕고, 더 나아가 사회복귀를 도모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제시한 시간에 맞게 그리고 제한된 공간 내에서 할 수 있는 몇 가지 치료활동이 고작이었다. 그런데다 우리나라 민간의료기관 대부분이 그렇듯이 수익을 무시 못해 치료의 질이냐 양이냐를 고민해야 하는 딜레마까지 갖고 있다.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민간의료기관에선 치료의 양에 치중하는 일도 다반사다. 장애인의 삶을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이렇게 치료의 질이 중요한지, 양이 중요한지 고민하는 일 자체가 있어선 안 된다. 그것도 제한된 공간과 시간 내에서 말이다. 

지역사회로 돌아가지 못하는 중도장애인

얼마 전 대학원 은사님을 만나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교수님께선 장애인의 지역사회복귀 비율은 얼마나 되는지 내게 물어보셨다.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요양병원들을 전전하는 '재활 난민'이 많기 때문에 그 비율이 궁금하셨던 것이다. 지역사회복귀를 돕는 게 내 직업인지라 자연스레 그리고 자신 있게 높은 수치로 대답했어야 했는데, 결국은 주관적인 기준으로 10%로 내외라고 대답해 버리고 말았다. 재활난민 현상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그간 치료했던 장애인분들을 머릿속에 떠올려봤다. 수년이 지나도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을 전전하는 경우가 많았고, 집에 돌아가더라도 요양보호사 혹은 가족의 도움 하에 집에만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적은 경우에서 활동지원사와 함께 일부의 사회활동을 하는 분들과. 극소수로 직업에 복귀해서 생업에 종사하는 몇몇 장애인 분들이 떠올랐다. 

중도장애인이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요양병원과 요양원을 전전한다는 건 지역사회기반 시설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역사회기반 시설이라 함은, 지역 내에서 아플 때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의료기관과 장애인들끼리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말한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휠체어 탄 장애인들이 이용하기 어려운 의원(의료기관)이 많고, 설령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해도 장애를 이해하는 의료진을 만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그래서 요즘은 지역사회에서 장애인들이 어떻게 하면 잘 적응하며 살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이런 고민과 맞물려 현재 정책적으로 장애인 주치의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고, 지역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산다는 '커뮤니티 케어'도 보건복지부에서 추진하고 있다. 추진되고 있는 정책들이 중도장애인이 안심하고 지역사회로 돌아갈 수 있는 마중물이 되길 바라고 있다.     

함께 살아가는 것

날씨가 화창한 지난 19일 토요일. 지역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것을 모토로 활동하고 있는 '함께걸음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건강걷기대회를 주관, 실시했다.

서울, 경기 각지의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장애, 비장애 조합원들이 '북서울 꿈의 숲'에 모여 건강걷기 대회를 함께 한 것이다. 이날 100여명의 조합원들이 모였는데, 맑은 날씨만큼 참가자들의 표정도 밝아 보였다. 무엇보다 휠체어 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준비운동도 하고 같이 걷는 모습까지 보여주면서 주위 방문객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우리 일행은 '북서울 꿈의숲'을 크게 한 바퀴 돈 후, 전망대까지 함께 올랐다. 휠체어 탄 장애인이 다니기에 불편함 없는 공원이었지만,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땐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

전동휠체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문이 닫히지 않도록 잡아줘야 했고, 그 과정에서 전동휠체어와 다른 방문객이 물리적으로 부딪히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시설만 갖춰지면 무엇이든 다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막상 이렇게 함께 다녀봐야 무엇이 불편하고 필요한지 알게 된다. 그리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배려를 배우게 된다.  


필자와 건강걷기를 함께한 장애인 분들은 괜시리 내게 미안해하셨다. 휠체어 탄 장애인 신경 쓰느라 고생했다는 의미였다. 전혀 고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지만, 왠지 모르게 그분들 마음속엔 비장애인에 대한 '불필요한 미안함'이 자연스레 자리 잡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천천히 느리게 가도 된다. 대신 함께 가면 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간다는 개개인의 마음가짐이 정부가 추진하는 '커뮤니티 케어'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리라.

함께 걷기 프로그램을 마치고 오면서 현재 의료기관에서 시행되는 좁은 의미의 '재활'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능회복도 중요하지만, 지역사회로 돌아왔을 때를 가정하여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다양하고 실제적인 일상생활훈련이 꼭 필요하다.

의료기관만의 특수한 치료환경이 중도장애인에게 오히려 사회적응의 걸림돌로 작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도장애인이 사회에 안착하려면 무엇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간다는 인식을 갖도록 많은 이들에게 알리는 과정이 우선돼야 하겠다.